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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pr 22. 2021

[지리산인] 다정한 원주민

지리산인 2020년 가을호


삼색 고양이가 또 왔네.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달이 뜨면 슬렁슬렁 와서는 마당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는다. 먹을 것을 찾지도 않고, 딱히 관심을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가 보거나 말거나 그냥 누워서 쉬다 간다. 그날은 별도 달도 밝았다. 마지막 입주한 친구의 이삿짐을 나른 뒤, 친구들과 나는 마당에서 재잘대고 있었다. 삼색 고양이는 우리를 심드렁하니 보고는 마당에 기대 누웠다. 꼭 제집 같다. 하긴 저 고양이가 우리보다 여기 훨씬 오래 살았을걸. 그 날은 이 집을 ‘들레네’라고 이름 붙인 날이기도 했다.


매동 마을의 빛바랜 파란 대문 집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내가 들어오고 이주 뒤에 한 명이 더 오고, 다음 주에 한 명이 더 오고, 그 다다음 주 두 명이 또 오는 식이었다. 왜 이런 식이었냐 하면, 다들 오기 싫어했으니까. 이 낡은 집은 쉽게 말하자면 유배지였다. 우린 산내 인드라망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생명평화대학에 다니던 신입생들이었다. 학생들과 공동체와의 갈등이 깊어져, 공동체는 결국 학생들에게 거리를 두자고 했다. 생명평화대학은 중단되었고, 학생들은 대학숙소에서 쫓겨났다.


올해 봄, 떠돌이 백구 ‘들레’를 실상사에서 처음 만났다. 민들레가 필 무렵이라 이름이 들레가 되었다. 들개라는 이유로 실상사와 대학숙소에서 모두 쫓겨났던 개였다. 학생들과 퍽 친했는데, 지금은 행방을 모른다. 그때 학생들은 ‘공동체에서 사람을 쫓지 않는 것처럼, 개도 쫓아서는 안 된다’라고 했었는데, 지금은 사람도 쫓겨난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공동체는 이주 안에 대학숙소에서 짐을 비워달라고 했고, 그 대신으로 이 집을 내주었다. 대학숙소에서 한 달을 가까이 버티던 학생들까지 압박에 못 이겨 모두 들레네로 온 날이다. 우리가 꼭 들레 같았다.


도대체 죄명이 뭐길래 유배를 당한 거니? 이 사태를 궁금해하는 마을 분들이 많은데 다들 윤곽을 모른다고, 마을에 오래 산 청년들이 이를 전해주었다. 마을에 학생들 사정을 알리고, 도움을 구하는 자리를 마련해보자는 제안을 해주었다. 마을에 오래 살면서, 해마다 공동체를 떠나는 청년들을 내내 안타깝게 지켜보던 친구들이었다. 인드라망 공동체는 산내에 청년들이 유입되는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대학 졸업생들도 신입생들을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다. 결국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앞으로 살 집도 필요하고, 가을 농사를 지을 땅도 필요했으니까. 간담회의 이름은 “우리 산내에서 살 수 있을까?”였다.


학생들과 공동체와의 대립은 청년-기성세대의 차이기도, 이주민-원주민 간의 갈등이기도 했다. 늘 인력난에 시달리는 ‘대안 판’의 진부한 문제이기도 했다. 신입생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기존의 위계적 질서들이 있었다. 이를 문제 제기했을 때 ‘일단 순응하라’는 답변이 따랐다. 신입생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공동체는 해결하고자 여러 시도를 해주었다. 그러나 공동체 활동가들은 이미 자신들의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학비도 받지 않는 대안 대학에 애써 투자할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대학을 중단하고 학생들을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간담회를 열고 싶지 않았다. 대학을 중단하는 것과, 숙소에서 나가는 것을 원한 신입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의 의견을 일절 반영하지 않고 또 수직적인 결정을 내린 공동체가 미웠다.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질서를 존중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선 깊이 뉘우치고도 있었다. 간담회에서 할 말들이 정리도 안 된 상태였다. 이제 막 마을 살이를 시작하는데, 서러운 이야기로 마을 분들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았다(대학숙소는 마을과 동떨어진 위치에 있었으나, 들레네는 마을에 있다). 무엇보다, 정말 우리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의문이 컸다. 아무도 안 올까 봐, 그냥 우리끼리 졸업식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다.


괴상한 장마가 길어지고 있었다. 마을에 오래 산 친구들이 홍보를 맡았다. 졸업생들은 여는 공연과 사회를 해주기로 했다. 신입생들이 다과, 발표자료, 포스터 등등을 나누어 준비했다. 간담회 당일에도 비는 내렸다. 내 예상과는 달리, 간담회는 북적였다. 남원의 한 청년협동조합에서도 촬영을 하러 왔고, 산청과 해남 등 멀리서도 찾아왔다. 대부분은 마을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도 몇 분이 와 주셨다. 신입생들은 아쉬움 없이 실컷 말하기로 했다. 몇몇은 눈물도 찔끔 흘렸다. 신입생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기에 졸업생들도 발언을 했다. 간담회는 예정보다 훨씬 지체되었다. 



대부분 사람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말을 들어주셨다. 뒤풀이 후원금까지 거하게 쥐어주고 가셨다. 앞으로 마을에선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말하는 자리도 마련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간담회는 페이스북에 라이브로 방송을 하고 속기록도 올렸다.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마을 분들도 그 긴 라이브 방송을 다 보시고 격려를 해주시곤 했다. 나는 좀 얼떨떨했다. 우리가 뭐라고 이렇게 다정하실까. 보답을 바라시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산내에서 함께 살자는 게 다였다. “우리 산내에서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질문밖에 없었는데.


장마가 끝나고도 태풍이 여러 차례 왔다 갔다. 하늘은 맑은가 싶다가도 자주 흐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색 고양이는 맑은 날에만 왔다. 비가 오면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서늘하게 마른 마당에 눕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공동체에선 올해까지만 이 집을 빌려주었다. 겨울이 지나면 또 다른 들레네를 찾아 떠나야겠지. 삼색 고양이는 오래오래 여기 살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마당 한가운데 은은한 달빛조명이 내린다. 우릴 내쫓지 않는 무심하지만 다정한 원주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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