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5월호
“지리산 방랑단이 뭐여?”
내가 이를 잘 설명할 날이 올까, 생각하는 사이 다른 질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래서 학생이여?”, “취준생? 그것도 아녀?” 봄쑥 나는 4월, 방랑을 시작했다. 지갑 없이 집을 나서는 점에선 산책과도 닮았다. 산책이 옥수수 익는 7월에 끝난다는 점이 조금 다를까. 사개월 간 얻어 자고, 얻어먹으며 지리산을 떠돌기로 했다. 사라지는 숲이야기들을 채집하며 말이다. 마을을 돌며, “하룻밤만 재워주세요.” 부탁을 하노라면, 어르신들은 ‘어디 사는 누구인고’하는 표정을 지으신다. “옛날엔 저 산이 어땠어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하면 더 알쏭달쏭 표정. 내가 지리산 방랑단을 가장 잘 설명한 때는, 방랑단 회의에서도 아니고, 탁발할 때도 아니었다. 친구 J를 만났을 때였다.
올해엔 굴로 들어갈 계획이었다. 진짜 굴은 아니어도 비슷한 어디든. 진지하게 수행을 해보고 싶었다. 작년은 하동을 알프스로 만들겠다는 산악열차 계획이 지리산을 날카롭게 스쳐 간 해이기도 했다. 어깨너머 소식은 들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사람들’ 운영위원들이 하동주민들과 함께 많은 애를 쓴 한 해였다고. 사업이 연기된 후 발등의 불은 끈 시점, 운영위원 두 분이 내가 사는 남원을 방문했다. 불씨가 남원으로 옮겨갔다는 말을 전하며, 같이 불을 끌 친구를 만들러 왔다고 했다. 나는 홀린 듯이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바로 후회했다. 지리산에서 오래 살지도, 산에 대해 해박하지도 않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다만 그들이 도인들 만큼이나 멋져서 따라 해버린 어이없는 심정이었다. 내가 지리산에 받기만 했다면, 그들은 뭐라도 돌려준 것 같았다. 부채감을 뒤로하고 숨을 굴도 없었다. “선 중의 선은 요중선이에요.” 굴 밖에서 그들이 말했다.
숲이야기를 구하자고 굳이 무전 방랑을 선택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첫째, 나는 지리산은커녕 내가 한 해 동안 산 남원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종이책보다는 사람책이 좋으니까, 구석구석을 쏘다녀보겠다고 생각했다. 둘째, 쏘다니는 동안에는 무효율을 추구하기로 했다. 더 빠르고 편하게 가자고 숲을 없애니까, 우린 더 느리고 불편하게 걸어보려 했다. 셋째, 독수리를 이해하려면, 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했다. 독수리의 눈을 상상하는 데 돈이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넷째는 ‘뭐라도 되겠지’ 느낌의 막연한 기도였다. 지극하게 고생하면 지리산이 나를 좀 가여워하지 않을까. ‘이걸 배우려고 떠돈 거였어!’ 같은, 나도 몰랐던 방랑의 이유를 선물해주지 않을까. 이토록 무모한 ‘지리산 방랑단’ 기획을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지리산 사람들’은 묵묵히 응원해줬다.
호기롭게 방랑을 시작한 지 고작 닷새만의 일이었다. 전화기 너머 J의 목소리는 꼭 심지가 닳아가는 촛불 같았다. 밥을 자주 거른다고 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다고, 자살이 꼭 나쁜 거냐고 물음도. 나는 방랑을 중단하고, 친구 J가 있는 인천으로 떠났다. 함께 방랑하던 동료들에게는 5일 후에 오겠다고 했다. 나는 이상한 확신에 차 있었다. 오래 우울증을 앓던 친구 J를 꼭 지리산에 데려오겠다고 생각했다. 지리산에 오면 J가 괜찮아질까? 방랑하는 게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5일 만에 그를 설득하는 게 가능할까? 나는 J가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할 줄 아는 건 별로 없었다. 내가 아는 용한 치료사는 지리산뿐이었으므로. J는 고민했다. 지리산에 가고는 싶으나 걱정되는 일들이 많았다. 나는 거의 외판원처럼 방랑단에 대해 설명했다.
지리산을 방랑하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었다. 해가 뜨면 닭이 홰를 치고, 달이 뜨면 호랑지빠귀가 울었다. 새순들이 모여 산 전체를 얼마나 아름다운 연둣빛으로 물이 드는지, 쌀밥 한 공기만 탁발해도 얼마나 향긋한 봄나물 비빔밥을 먹을 수 있는지, 말로는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정자에서 잠을 잘 때면 고양이들이 벗이 되어주고, 찬 새벽이 지나면 아침 햇살이 어김없이 찾아와 몸을 녹였다. 지리산을 향한 부채감이 나를 길 위에 세웠는데, 정작 방랑하면서도 지리산은 늘 주기만 했다. 우리에게 잠자리나 밥을 내어주시는 사람들은 한결같은 말을 했다. “감사함을 어떻게 보답하죠?”라고 물으면, “저에게 말고, 도움이 필요한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세요.” 지리산 품에 살면, 지리산과 같은 품을 갖게 되는 걸까. 내게 온 과분한 선물 같은 하루하루를 J도 느낄 수 있다면, 불안한 미래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텐데.
나는 말들을 우다다 쏟아 내놓고 기다렸다. 지리산과 J가 인연이 있기를. 이때도 ‘뭐라도 되겠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J는 별명을 ‘오늘’로 정했다. 오늘치만큼만 살자는 의미였다. 걱정하던 모든 일을 정말 5일 만에 정리하고 지리산행 표를 샀다. 허리께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달라고 했다. 지리산에 가면 너처럼 밀어버릴 거니까 대충 잘라도 돼, 라고도 했다.
우리 이상이 되는 산책
방랑단이 마냥 걷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개월 동안, 절기마다 ‘기억산책’을 한다. 그간 모은 사라진 숲 기억을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1박 2일 산책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라진 숲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용유담 인근 도로에서는 계곡이 잘 안 보인다는 이유로 숲을 지웠다. 강청리에서는 돌산을 밀고 관광용 대규모 튤립밭을 조성했다. 수동면에서는 죽염공장을 짓느라 물살이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오도재에서는 특화 단풍숲을 만들기 위해 축구장 80개 면적의 땅이 허허벌판이 되었다. 현장에서 공사 중인 사람들과 만나곤 했다. 그들은 대개 나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었다. 내 머리로는 나무를 베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들이 알 수 없는 용어를 써가며 해주는 설명을 듣고 나면 입이 다물어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정말 논리일까? 숲의 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숲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었다. 선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숲이 있다면, 나는 귀 한쪽만 들어가고, 누군가는 발목만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돌산을 밀어냈다고, 벌들이 튤립을 미워하지 않았다. 잡목이 있던 자리에 단풍나무를 심는다고, 바람이 야박하게 구는 일도 없었다. 방랑단은 아는 건 적지만, 느끼는 건 많은 사람들이었다. 지식이 아니라 몸의 직관으로 받아들이는 것들은 자신이 있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건 그른 일이에요’ 같은 구호가 아니라, ‘여기 아픈 마음들이 있어요’였다.
기억산책 날, 우리는 오도재로 향했다. 기존 방랑단 다섯에, 열명 이상의 사람들이 함께 해주었다. 서울, 광주, 목포 등에서 사전 신청 후 모인 분들이었다. 함께 짧은 자기소개를 나누었지만 나는 약간 긴장한 채였다. 어떤 분들일까? 우리가 준비한 기억산책이 잘 맞으실까? 데면데면한 채로 산을 올랐다. 다행히 사람들은 오도재 벌목지에 오래 눈길을 보냈다. 오도재는 막 아스팔트를 벗겨낸 땅 같았다. 새로 심은 어린 단풍나무들이 가까스로 서 있었다. 봄이 놀라 뒷걸음질 친 듯이, 연두빛이라고는 작은 새싹 하나 없었다. 가느다란 단풍나무를 바람으로부터 지켜줄 큰 바위도, 비가 오면 흙을 붙잡을 풀뿌리도 없었다. 인부들은 베어진 나무들을 ‘잡목’이라 불렀다. 늙어서 산소를 정화할 수 없고, 예쁘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어린 단풍을 ‘그른’ 존재로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했다. 우리는 그곳을 지나쳐 더 깊은 숲으로 갔다. 간식도 나누어 먹고, 숨이 차오르면서 서로 조금은 가까워져 있었다.
방랑단이 숲놀이를 준비했다. 숲이 되어보는 역할놀이였다. 오도재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우리는 가로수처럼 마주 섰다. 서로의 사이에 길이 나도록. 한쪽은 ‘잡목’, 다른 쪽은 ‘단풍’ 역할. 내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저곳엔 잘린 나무 밑동과 어린 단풍이 함께 있어요. 시간이 다를 뿐 잡목과 단풍 모두 같은 공간에 있어요. 제가 호흡을 뱉으면 그 공기를 여러분이 마시며 우리 존재가 섞입니다. 사라진 듯한 나무들도 다른 존재와 섞인 모습으로 오도재에 남아있어요. 그들을 느끼며 오롯이 나무가 되어보아요. 길 끝에 있는 사람부터 나무가 되어 길 안으로 걸어갈게요. 길을 만드는 이들은 어떤 존재든 될 수 있어요. 나무가 지나갈 때 해주고픈 말이나 몸짓을 보여주세요. 나는 설명을 마치고 눈을 떴다. 아직 눈을 감은 사람들이 보였다.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또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나무가 느끼는 감각을 우리에게도 주세요.
단풍 한 그루가 길 사이로 걸어가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기저기서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베어진 나무야. 나에게 놀러 오던 존재들이 있었어. 그들을 잘 부탁해.” 단풍도 울고 있었다. 역할놀이를 어색해하던 사람들도 이내 숲에 스며들었다. “낯선 곳에 엉겁결에 자리 잡게 되었구나. 와줘서 고마워.”, “나는 숲에서 살던 새야. 당분간은 어렵지만 언젠가 너에게 와서 노래를 부르겠지. 서로 기다려주자.” 몸짓으로 서로의 체온이 오고 갔다. 잡목 한 그루도 길 위에 올랐다. “난 네 간지럼을 태우던 바람이야. 네가 없으니까 너무 허전해.”, “나는 단풍나무야. 여기 온통 단풍나무들뿐이야. 내가 잘 자랄지 너무 두려워.”, “아프지 말아줘. 돌고 돌아서 우린 또 만날 거야.” 잡목도 벌건 얼굴로 안겨 울었다. 해가 그림자를 늘리고, 우리는 우리 이상이 되어있었다.
숲놀이를 마치고, ‘오늘’은 혼자 걸어 내려갔다. 혼란스럽고 진이 빠졌다고 했다. 잡목이 되었을 때, 자신이 쓸모없어 잘려나간 느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긴 여운을 추스르고 ‘오늘’이 말했다. 환경 문제가 진지한 화두로 다가왔다고 했다. 나는 나를 굴 밖으로 끌어낸 부채감을 떠올렸다. ‘오늘’도 그걸 느낀 걸까. 어떤 당위나 판단이 아니었다. 매 순간 역동하는 생명력으로 지리산은 내게 말했다. 너와 나를 나눌 필요는 없어. 우리는 강하게 연결되어 있어. 오늘 하루를 가득 채우는 감각 말고는 무엇을 더 생각할까. ‘오늘’은 남은 단발머리를 밀었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