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맑은 날이 많았다. 산 아래부터 시작된 녹음이 하늘을 향해 번져갔다. 새순만 겨우 돋았던 나무가 울창해져서 못알아볼 정도였다. 방랑길에 오른지 한달이 되었다. 겨우 한달이라니! 하루가 유난히 길고 느리게 흘렀다. 새로운 일들이 가득해서였을까. 매 끼를 탁발을 하고, 매일 조금씩의 걸음을 옮겼다. 매일 다른 곳에서 잠이 들고, 매일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그냥 좀 재워주세요'해서는 안되고, 매번 초심처럼 정중하고 간절해야 한다. 한가롭고 게으르게 스쳐간 것 같은데, 사실은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먹고 자는 것만도 큰 과제이지만, 방랑단들의 주요 할일은 이야기 채집이다. 지리산권 마을을 돌며, 사라지는 숲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다. 절기마다 돌아오는 기억산책 코스를 정하는 일이다. 사람들을 어딜 데려가면 좋을지 장소를 정하고, 그 장소를 방랑단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마음을 모았다. 재밌는 숲놀이를 고민하고, 사람들에게 코스를 공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랑단의 하루를 일기로 기록하고, 사진을 정리해서 SNS에 업로드를 한다. 시시때때로 놀러오는 새로운 방랑단들을 맞이하는 일까지! 한달을 석달처럼 산 기분이랄까.
사진_아영
방랑단원들은 세명이었다가, 일곱명이었다가, 다시 다섯명이 되곤 했다. 방랑단원 중 차라는 한달이 개근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 볼일이 있어 방랑을 잠시 멈춘 적이 있는데, 차라는 꼬박 한달을 내리 걸었다. 그런 덕인가. 차라의 탁발실력(?)은 일취월장이었다. 몸에 어디 버튼만 누르면 방랑단 소개멘트가 줄줄 나온다고 했다. 매일 짐을 쌀 적마다 칫솔 하나 빠뜨리는 법도 없었다. 걷는 체력도 좋아지고, 얼굴빛도 건강하게 그을렀다. 쌀밥 한 공기에 배추김치만으로 행복하게 먹는 방법도 배웠다. 차라는 방랑 일주일만에 쉬고 싶다고 선언한 친구이기도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반나절을 곰곰이 고민한 끝에, 마저 방랑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달이 훌쩍 지난 거였다. 한달이면 벌써 두번의 기억산책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기억산책을 한번만 끝내도 방랑단들은 녹초가 되곤 했다. 나는 차라더러 좀 쉬어야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놀랍게도 차라는 잘 쉬고 있다고 했다.
사진_칩코
차라는 생각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당장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쉬지 못할 때 더욱 힘들어진다고 했다. 이는 반대로,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금은 쉬는 때가 아니구나' 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얼마간의 기다림 끝에 거짓말처럼, 쉼의 시기가 찾아왔다고 했다.
쉬지 않는 열차, 쉬지 않는 산
남원을 걸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산악열차'였다. 어느 마을에 가도 다들 산악열차 이슈는 알고 계셨다. 남원시가 무려 3,330억원의 막대한 예산을 잡고 산악열차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육모정에서부터 정령치까지, 정령치를 넘어서 달궁과 천은사까지 이어지는 도로 위에 철로를 놓겠다는 계획이다. 이 사업은 경제적으로나 법적으로나 무리한 면이 많았다. 거금을 들여서 산악열차를 놓더라도, 열차를 굴려서 나는 수익으로는 이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보고서 마저 국비지원이 필수라고 써놓을 지경이었다. 또한 이는 자연공원법을 개정해야만 가능한 사업이었다. 열차의 노선 중에는 자연을 보존하고 개발을 제한하는 1등급 권역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자체로 위법이라는 뜻이었다. 산악열차를 짓겠다는 이유로는 주민들의 교통편익을 내세웠다. 겨울철에 도로가 결빙되면 정령치로 버스가 못다니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달리는 열차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자주 다니는 도로는 따로 있었다. 굳이 산 하나를 넘어 달리는 정령치 도로가 필요하지 않았다.
사진_아영
우리의 화두는 '쉼'이었다. 도로가 결빙되는 겨울마저 산 정상을 오를 필요가 있을까? 겨울은 어떤 계절인가? 봄이면 땅 속 깊은 곳에서부터 두근거리는 기운이 올라온다. 여름이 되면 그 기운들이 주체할 수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가을이면 부드러운 포물선으로 휘어져 내린다. 겨울은 그 모든 기운들이 안으로, 안으로, 각자의 내면으로 수렴하는 시기. 뱀과 다람쥐도 깊은 잠에 들고, 나무들도 잎을 떨구고 느긋한 속도로 물을 마신다. 계절의 흐름은 우리를 쉬게 만든다. 겨울을 잘 쉬어야 비로소 봄을 맞을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쉼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기계마저 쉼이 필요한데, 지구의 어느 존재가 쉬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정령치 도로는 산 정상과 양쪽 사면을 깎아서 만들어졌다. 그 위로 차의 진동과 소음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굽이치는 길목에서는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났다. 바이크족들이 우르릉 엔진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달렸다. 정령치 길은 일제강점기에는 목재를 수탈해가는 운송도로로, 한국전쟁 때는 군사도로로, 올림픽 이후에는 관광도로로 사용됐다. 겨울만이 아니라, 길이 난 이후로 한 순간이라도 정령치에 쉼이 있었을까 싶었다.
사진_아영
곡우의 기억산책 첫째날.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곡식에 알맞은 비가 내리는 절기라던데, 반가운 비일까. 몇겹의 옷을 껴입고도 으슬거리는 날씨였다. 고기삼거리에서 정령치 도로를 오르기로 했다. 가파른 도로길을 두시간 넘짓 걷는 코스다. 날씨 탓인지 차량이 적긴 했지만, 그래도 차가 지나갈 때마다 긴장을 해야 했다. 미끄러운 빗길에도 오토바이들은 귀가 울리는 소음과 함께 몰려다녔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빗발이 괴상해졌다. 스티로폼 같은 우박이 날리고, 새벽의 바닷가처럼 희뿌연 안개가 코앞마저 가렸다. 정령치에 도착했을 때는 한층 더 을씨년스러웠다. 우린 모두 휴게소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몸이 젖으니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피곤했다. 다시 마을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정신이 아득해질만큼 까무룩 잠이 들었다. 운좋게 한 펜션에서 잠자리를 내어주셨을 때, 다들 얼마나 환호했는지! 그 펜션이 아니었다면 감기를 피할 수 없었을 거다. 따뜻한 잠자리로 몸을 회복하고, 기억산책 다음날을 맞았다.
사진_아영
첫째날은 힘차게 정령치 도로를 오르고, 둘째날은 아주 쉬어버리자! 이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궂은 날씨로 도로길이 훨씬 고되었던 탓에, 다음날의 쉼이 극적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둘째날은 정령치로 가는 나지막한 산길을 걸었다. 고리봉을 넘어서 가면 찻길을 지나지 않고도 정령치로 향할 수 있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모두에게 숲놀이 미션을 하나 주었다. 마음에 드는 돌멩이를 하나 찾는 것이었다. 다들 주변의 돌들을 시선으로 더듬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나는 나처럼 작은 돌을 찾았는데, 손바닥 만한 큰 돌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하나로 모자라 두 개를 고르는 이도 있었다. 15분을 걸었을까. 우리는 멈추어서 둥글게 모였다. 서로의 돌멩이를 내놓아보았다. 돌멩이를 두 손으로 꼭 안은 채, 눈을 감았다. 각자 ‘쉼’이 필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가도 좋고, 바로 어젯밤을 떠올려도 좋았다. 가파르게 달려오다 긴 한숨을 내쉬는 순간들. 그 순간을 돌멩이에 담았다. 지금만큼은 돌멩이를 내 삶의 동반자라고 여기기로 했다.
사진_아영
우리는 돌멩이를 머리 위에 얹고 걸음을 뗐다. 가벼운 무게감이 정수리에 닿았다. 찌릿, 동반자와 연결되는 느낌. 그와 발맞추어 걷는 것이 오늘의 숲놀이. 돌멩이를 떨어뜨리지 않을 수 있을까?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돌멩이를 머리에 올리면 절로 자세가 펴진다. 허리와 어깨를 세우게 된다. 시야는 더 멀리, 더 넓게 보게 된다. 빠르게 걷거나 몸을 흔들거리며 걷는 것은 동반자에게 실례다. 옆사람과 잡담을 하다가도 떼구르르 떨어질 수 있다. 내 속도와 자세를 알아차리는 산행. 마음이 딴 길로 샐 틈 없이 내 몸에 와 있다. 잡생각이 사라지는 편안한 휴식의 상태가 된다. 우리는 아주 느린 걸음을 걸었다. 추월도 이탈도 없이 나란하게 걸었다. 어느새 다들 고요해졌다. 사람들의 침묵 속으로 청설모와 새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어왔다. 어제 도로에서는 안보이던 것들이 보였다. 거미줄마다 물방울이 걸렸다. 비를 머금은 풀들은 더욱 생기가 돌았고, 흙과 나무의 색도 불그스레 선명해져 있었다. 돌멩이와 동반자가 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돌멩이가 언제부터 이 숲 속에 있었는지 몰라도, 나보다 숲의 속도를 잘 아는 것이 틀림없었다.
쉬지 않는 시기
어느새 비구름이 개고, 가느다란 햇살들이 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서 있었다. 숲놀이를 마친 사람들의 표정이 맑았다. 잘 쉰 이들의 얼굴은 이토록 빛이 났다. 쉼은 아름다움을 회복하게 해준다. 하얀 쉼표의 계절을 잘 지난 후 눈부신 봄이 오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쉼의 순간이 담긴 돌멩이들을 한 곳에 모았다. 도로 아래에 깔린 존재들이, 봄이 오면 응당 모든 존재들이 그렇듯이 숨을 뱉으며 올라올 수 있기를. 언제 도로가 있었냐는 듯이 두 팔을 벌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기를. 그러나 돌멩이를 뒤로 하고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저 멀리 양쪽 사면이 도로로 덮인 정령치는 봄이 절반만 와 있었다. 정령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뜬 눈으로 어떻게 지내왔을까? 도로를 오가며 봤던 동물들이 떠올랐다. 차에 치여 어질어질 잘 날지 못하는 나비, 내장이 항문으로 쏟아진 다람쥐, 몸이 굳어 잠들어 있던 새. 바퀴들이 지워 온 수많은 핏자국들이 있었다.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났다. 차라가 그랬듯이, '지금은 때가 아니구나'하고 마음을 내려 놓아보았다. 이는 반대로, 우리가 쉬지 않고 행동할 기회가 아직 남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거짓말처럼 쉼의 시기가 찾아오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