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텃밭 공유회 2023.01.30
“어린이들과 함께 농사지어요”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린다. 나는 올해 구례에서 살기 시작했다. 나의 정체를(특히 직업을) 궁금해하는 이웃에게 나를 소개하기에 저 대사는 나쁘지 않았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며 빠르게 신뢰를 가지기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기에 어쩐지 이미 마을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 풀이 무성한 내 마당 꼴을 보고도 유난한 생태주의자보다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교육 자료 한 페이지’ 정도로 넘어가준다.
초등학생들과 생태텃밭을 가꾸는 일은 정말 낭만적이기도 했다. 사실 이웃 어르신에게 ‘수상쩍은 이방인’ 신세를 탈출하기 위함보다는, 어린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난 어린이들과 좀체 인연이 없던 사람인데, 어린이들과 텃밭을 가꾼다고 하니 농사 공부보다 어린이 공부를 더 많이 할 정도였다. 난 어린이들이 내 빡빡머리와 타투를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엄마가 타투하면 안된댔어요’라면서도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다른 타투가 더 있나 궁금해하는 것이 어린이였다.
어린이들은 내 타투만큼이나 텃밭에서 작은 곤충들을 잘 발견했다. 꼭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했다. 어느 날은 텃밭에서부터 자신을 따라온 방아깨비가, 급식실까지 따라 들어가 밥 먹는 내내 손등에 앉아있었다고 자랑을 한 어린이도 있었다. 교실에서 채종하다가 열매 안에서 발견한 애벌레를 교실 바깥까지 나가서 방생하고 뿌듯해하던 어린이도 있다. 또 어린이들은 ‘내 것’을 아주 중요시한다. 모종도 자신이 심은 모종, 씨앗도 자신이 심은 씨앗은 귀신같이 잘 기억했다가 학기 내내 그들의 근황을 보러 간다.
옥수수로는 팝콘을 튀겨먹고, 수세미로는 수세미를 만들어 쓰고, 배추로는 김장을 한다는 사실을 낯설어하는 어린이들이 많다. 물론 나라고 그게 익숙하다고 볼 순 없었지만, 나는 귀촌한 후로 이웃 어르신을 보며 이미 실컷 놀란 후였다. 어르신들은 ‘어째 이걸 모르냐’하시면서 나를 되레 신기해하셨다. 어린이들은 옥수수가 팝콘이 되고, 수세미가 수세미가 되는 것을, 내가 괜히 우쭐해질 만큼 신기하고 재밌어했다. 나는 어르신들을 흉내 내며, 어린이들에게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어디 농사일에 낭만만 있던가. 웬만한 싸움은 부엌에서 일어난다. 혼자 살지 않는다면. 공동체를 이루어 살 때,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곳은 부엌이다. 저마다 부엌을 가꾸는 방식과 속도가 다르다. 설거지를 밥 먹은 직후에 하느냐, 최대한 미루어뒀다가 하느냐의 문제는 다툼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심지어 가족 구성원들이 엄마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부엌 일은 엄마가 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면 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텃밭’이라는 공간은 부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가꿔야 하는 공간이다. 저마다 텃밭을 가꾸는 방식과 속도가 다르다.
내가 가꾸던 학교 텃밭도 ‘누가 텃밭을 가꿀 책임이 있는가?’로 한 차례 몸살을 앓았다. 텃밭 수업을 하는 학년의 선생님은 고작 두 명이셨고, 두 명이서 텃밭을 가꾸기엔 역부족이다. 나 같은 텃밭 강사가 가꾸기엔 우린 한 달에 한 번 학교에 올까말까 한 외부인이었다. 학교 선생님께서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텃밭을 가꾸는 게 제일 이상적인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겨우 텃밭과 친해지기 시작한 사이였고, 다른 과목 수업을 텃밭 수업으로 응용할 만한 열정이나 재주는 없으셨다. 결국 풀밭이 너무 무성하다는 주변 민원을 잔뜩 받은 행정실이 독박을 썼다.
이후 생태텃밭은 사라졌다. 가꿀 이가 없던 까닭이다. 주무관님이 가꿀 이를 자처했다. 반달가슴곰 귀 모양을 닮은 둥그런 텃밭 모양은 자로 잰 듯 열을 맞춘 일자두둑으로 바뀌었다. 10평 남짓의 땅에 빼곡히 들어찼던 40여 종의 다양한 채소와 꽃들은 모조리 배추가 대체했다. 일은 안 하고 낭만만 누리고자 했던 농부들의 최후랄까. 학교든 외부강사든 책임을 나눠진다면 말이다. 농부들이야 아쉬움으로 끝나지만, 봄과 여름 내내 낯선 땅에 겨우 뿌리내리고 적응하던 채소들은 가을을 맞기도 전에 트랙터 바퀴를 맞아야 했을 것이다.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던 곤충들도 신세는 마찬가지일 터.
“어린이들과 함께 농사지어요”라는 말은 이제 좀 무겁게 들린다. 마냥 즐겁고 쉬운 일만은 아니다. 길을 가다가도 학생들을 마주친다. 도서관에 늘어져서 만화책을 읽는 와중에도 ‘선생님!’하며 아는 체를 해주는 어린이들. 어쩐지 만화책을 민망해하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어린이를 만나는 일은 일상을 침투한다. 좀 더 멋진 어른이되야할 것 같다. 올해 채종만 겨우 하고 작별한 텃밭 채소들이 자주 떠오른다. ‘책임감이 부족했지, 실무를 너무 몰랐어...’ 등등 따끔하게 나를 혼낸다. 좀 더 멋진 농부가 되어야지. ‘그래도 올여름 옥수수는 실컷 먹었다’ 잊지 않고 배부른 추억은 남겨준 그들에게 감사하면서.
*이 글은 <우당탕탕 생태텃밭> 책에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