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
이번 겨울은 이상했다. 사는 게 별 재미가 없었다. 매일 하던 명상이랑 요가도, 옆집 개랑 하던 산책도, 불 피워서 밥 짓는 것도 다 귀찮기만 했다. 평생 ‘열정’이나 ‘부지런함’은 과하면 과했지 없던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공허해지긴 처음이었다. 1월 한 달 간은 명상일랑 팽개치고 실컷 놀기만 했는데, 어떤 게 노는 거더라 헷갈릴 만큼 썩 신이 나진 않았다. 별안간 재난처럼 찾아온 ‘만사 노잼’ 사태였다.
하나 곤란한 게 있었다. 안식월을 핑계로 명상이야 관두면 그만이지만 방에 구들불은 넣어야 했다. 게으르게 이불만 뒤집어 썼다간 차갑게 아랫목이 식어버렸다. 털레털레 일어나 장작과 불쏘시개를 모으고, 구들 앞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들을 쌓아올린다. 귀찮아 죽겠네. 하루는 평소보다 불쏘시개 양이 훨씬 적었지만 냅다 불을 붙였다. 불이 잘 붙을 리가 없었다. 15분이면 마칠 일을 40분을 넘게 씨름했다.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염병.
그놈의 불쏘시개 5분 더 줍는 게 귀찮아서 이 사달을 내다니. 내 잘못이니 어디 화낼 곳도 없었다. 거 참 하루쯤 대충 할 수도 있지, 그거 한 번을 안 넘어가고 이렇게 불이 안붙기냐. 어디에 대고 하는지 모를 윽박도 냅다 질렀다. 성가시니 알아서 불 붙으라는 어처구니 없는 심보다. 실컷 씩씩거린 후엔 다시 장작을 모조리 꺼냈다. 하나하나 불쏘시개를 충분히 쌓아올린 후 불을 붙였다. 약속처럼 활활 타올랐다. 이제서야, 염병.
꼬리는 이번달부터 출근을 시작했다. 지난 3년간 심리학 공부를 마치고 올해부터 청소년 상담사 자리로 취업을 노렸다. 취직하고 나니 어째 상담 빼고 다 하는 방과후 돌봄교사 일이었지만, 꼬리는 3년은 진득히 일해보겠다고 했다. 꼬리는 그야말로 ‘열정 과다 사회초년생’이었다. 매일 퇴근 후에 조잘조잘 일과를 들려주었는데 말의 절반이 후회와 자조였다. 학생들 이름을 못외우겠어. 나도 웃긴 선생님 되고 싶어. 코미디언들 부럽다. 오늘 너무 나댔어. 나 텐션 높아지면 목소리 크기 감당 안되는 거 알지. 아 오늘은 운전하다 바퀴가 도랑에 빠졌는데…
꼬리는 매일 자기 찡얼대는 걸 들어준다고 고마워하지만, 난 재밌었다. 난 만사 노잼 사태 중에도 꼬리랑 떠드는 것만은 재밌었다. 꼬리는 내게 시도때도 없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한 고민을 늘어놓았고, 잠들기 전 심리학 관련 에세이를 읽거나, 주말이면 심리학 인터넷 강의를 찾아 들었다. 밤늦도록 코미디 유튜브를 보는 건 이제 웃긴 선생님이 되기 위한 이론공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꼬리는 어떻게 저리 열정적일까? 하기사 열정이 있으면 재미도 생긴다. 퇴근하고 나서도 일 생각하는 셈이지만, 그래도 재밌을 테다. 나도 4년 전쯤엔 불 처음 붙여보는 게 무지 재밌었는데. 그땐 나무를 잘 말려야 타는 지도 모르고 생나무로 아둥바둥하거나, 대나무 타는 소리가 요란한 줄도 모르고 ‘떽!’ 소리에 놀라 자빠진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땐 겨우 붙은 불이 고마워서 염병 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낼름낼름 얄밉게도 타오르는 구들불을 들여다보자니, 불이 딱밤을 한 대 때리는 것 같았다. 대충 할 생각 마. 안 봐줘. 온기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야.
2월 중반, 입춘의 끝무렵 신기하게도 나는 조금씩 삶의 흥미를 다시 느꼈다. 해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큰봄까치꽃이 이리 반가울 줄이야. 더욱 요란해진 딱따구리 드러밍이나 한층 물이 불어난 개울도 마음이 근질근질 설렜다. 산책이 재밌는 걸 보니 드디어 이상한 겨울이 갔구나. 꼬리와 보내는 입춘의 주말, 작년 한 해 묵은 똥퇴비를 텃밭에 뿌려주고 작두로 잘게 낙엽을 잘라 덮어주니 간만에 땀이 다 났다. 어느새 봄볕은 꽤 더웠다. 역시, 온기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