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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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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pr 11. 2019

저녁이 가는 곳


꼬리에게 <죽은 숙녀들의 사회>를 추천받았다. 꼬리는 예술가들의 비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여성들에겐 아내나 정부나 어머니의 배역만 주는 잘난 남성예술가들의 이야기에 지친 그가 뽑아들었을 법한 책이었다. 작가가 다루는 죽은 숙녀들은 '숙녀'였기 때문에 역사에 가난한 정보만을 남겼다. 그 공백을 작가는 조심스러운 상상력으로 채우기도 했고, 대개는 그들과 평행한 자신의 여행기로 채웠다.


문장은 지나치게 밀도가 높고 함축적이었다. 잠시라도 딴 생각을 하면 다음 문단을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작가가 재촉하는대로 죽은 숙녀들의 궤적을 조급히 쫓았다. 작가가 쏟아낸 단어와 감정을 퍽 성실하게 줍다보면 황홀한 문장들이 보답으로 돌아왔다. 꼼짝없이 지하철 소음 속에서 읽는 건 포기하고 새벽에만 책을 들었다. 한국을 지나친 저녁이 꼬리가 있는 곳으로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2019년 3월 17일, 꼬리 터키 여행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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