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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꼬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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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칩코 Apr 11. 2019

연약한 곳으로 물길을 내고

꼬리의 시에서 인용

그림. 꼬리


어느 남철학자는 사랑은 꽃이라고 했다. 한 순간 아름답게 폈으면 결국 지는거라고. 꽃이 지는 순간엔 아프게 보내주어야 한다고 했다. 연인 간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라고 했다. 우리가 결국 죽을 걸 알고도 사는 것처럼, 실로 많은 연인들이 이별을 기약하고 사랑했다. '둘중 하나가, 혹은 둘이 서로를 사랑하는 걸 멈추면 우리 남이 되자'라고 들리지 않게 약속하면서. 사랑엔 꼭 끝이 있어야 한다니. 그런 사랑이라면 난 꼬리와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꼬리가 좋았다. 나는 주황색을 닮은 사람을, 턱을 살짝 드는 습관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살아온 삶도, 살아갈 삶도 같아서, 삶의 어느 순간을 이야기해도 눈을 깊이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과 입맞추고 섹스하고 싶다면 끝을 기약해야하는 관계가 된다니. 이별할 사이가 될 바에야, 그냥 평생 자위하고 살면서 '친구'라고 불리는 관계로 남는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좀 억울했다. 너무 입맞추고 싶은걸!


나와 꼬리가 사랑하다가, 꼬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면, 그럼 결국 우린 헤어져야 한다는 걸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꼬리가 그냥 나랑도 계속 사랑할 순 없는걸까? 나를 증오하지 않는다면, 꼬리 곁에 남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꼬리가 사랑하는 그 타인을 질투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 사람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리스트를 만들어가며 한없이 못나질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내 욕심이 꼬리를 힘들게 한다면 그건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꼬리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사랑을 나눈다는 이유로 나와 이별하는 게 슬프다고 했다. 그 사람에 대한 내 집착이 그를 괴롭히는 것도 고통스럽다고 했다. 사랑은 나눌수록 빈곤해지는 것 따위가 아니니까. 꼬리가 함께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늘어난다면 그걸 기뻐하는 게 사랑하는 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위해 내가 더 나 자신과 화해하는 것, 내 못난 질투심과 집요하게 마주하는 것이 사랑 아닐까.


나는 울보라 울면서 얘기했는데, 꼬리는 따라 울었다. 이 관계를 위한 단어가 다행히 있었다. 폴리아모리! 지리산엔 누가 심지도 않은 야생화가 지천에서 자랐다. 꽃이 져도 다음 봄엔 또 다른 모습으로 피어나니까 괜찮다. 강처럼 자유로운 관계가 되자. 변하고 흩어지면서도 마르지 않는 강처럼 사랑하자. 이젠 억울하지 않았다. 꼬리에게 입맞추면서도 이별을 향해 달려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꼬리는 책의 한 문장 문장마다 대화가 주렁주렁 열려서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더딘 독서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꼬리랑 남쪽으로 갔다. 우리가 나란히 요가를 하거나, 과일과 살짝 익힌 채소로 아침을 먹거나, 정오의 해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곳. 꽃이 핀 섬진강변과 아무곳에나 앉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지리산으로. 꼬리는 수취인이 있는 시를 썼다. 꼬리의 시를 읽고 있는데, 하필 좋아하는 노래구절이 흘러나오고, 꼬리가 노래에 맞춰 몸을 움직이다가 그 구절을 따라 부르는 바람에 나는 자주 울어버렸다. 우리의 마주봄을 나는 너무 사랑해서 연습이 필요하다.


2019년 4월 5일, 지리산 여행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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