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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쥐덕션 Jan 19. 2024

'돈' 달라는 말은 늘 어렵다

프리랜서의 기본도 못 갖추고 일 할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입 밖으로 ‘돈’ 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작업료 oo만큼은 받아야 겠어요”

“인센티브는 oo%로 해 주세요”

“이번 달 안에 결제 해 줄 수 있나요?”

일을 잘 맡아 놓고, 돈 달라는 말은 차마 미안해서 꺼내지 못한다. 이것은 성격이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의심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이만큼을 받을 자격이 될까? 매뉴얼대로 기계를 돌리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머리를 돌리는 ‘인건비’라 딱 정해진 시세는 없다. 능력의 가치를 직접 판단해 금액으로 요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나는 머리가 나빠 공부를 진득하게 하지도 못했고, 그래서 좋은 직업도 가지지 못했다. 가끔 기사에 나오는 3-40대 평균 연봉에 못 미친 월급을 그나마 규칙적으로 받고 살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에는 그마저도 불규칙적으로 수입의 질은 더 떨어져버렸다. 위안은 월급쟁이와 달리 말 그대로 ‘내가 한 만큼 그대로’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한 만큼’ 이란 물리적인 시간이나 작업에 들이는 공력 뿐만은 아니었다.     


  프리랜서는 돈에 훨씬 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우선 착수 전에 페이를 협의하고 가는 게 첫 번째 자세다. 그리고 나는 작업분량과 업무범위에 따라 받을 페이의 합당함을 고용주에게 제시해야 한다. 기획안만 쓸 것인지, PT까지 직접 할 것인지, 수주 후 관리까지 포함할 것인지에 따라 페이는 달라진다. 또한 프로젝트의 규모와 작업기간에 따라서도 미세하게 조정될 수 있다. 이렇게 책정될 수 있는 페이를 그저 “알아서 챙겨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라고 했다가는 여우같은 고용주에게 헐값으로 내 능력을 팔아 넘기는 상황이 쉽게 발생한다. 서로가 어려워 이 부분에 입 다물고 시작 했다가는 고용주는 고용주대로, 나는 나대로 짐작하는 페이와 업무범위가 달라 진행과정에서 충돌할 수도 있다.     


  나는 첫 번째 협상에서부터 애를 먹는다. ‘페이‘는 어떻게 할까요? 이 말 한마디를 꺼내는 것이 그렇게도 무거울 수가 없다. 지난 10년 넘은 사회생활에서 적어도 적합한 태도라는 것을 배웠을 텐데 왜 바보처럼 이럴까. 갑, 을 관계의 어려움 보다 더 정확한 이유는 돈 앞에서 구길 수 없는 체면 때문인 것 같다.     


  커리어가 바닥에 가까웠던 신입 때는 열정을 돈으로 치환해서 요구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불경스럽다고 생각 했었다.

“너가 하고 싶어서 이 일 선택한 거 아니야?”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 할 때마다 친구들, 회사의 상사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니 그 정도는 참고 일할 수 있잖아. 대강 이런 뜻이었나.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니 열정은 돈의 가치로 따질 수 없어 라는 이상한 생각이 어릴 때는 자부심으로 포장되어 경제관념을 지배 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조연출로 일했던 첫 회사가 1년이 넘도록 임금을 체불 했을 때도 생글거리며 내 청춘을 갈아 일했고, 교육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시나리오 50편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몇 달동안 페이를 받지 못해 속 앓이를 했어야 했다.     


  “이번 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페이를 받을지 기획자님이 기준을 세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일을 막 시작하면서 어리벙벙한 나에게 한 고용주가 조언 했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프리랜서의 기본적인 조건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월급쟁이와 가장 다른 부분이 바로 기준을 협상할 수 있다는 점이니까. 그 기준은 느슨한 내게 채찍이 되기도 할 거고, 일에 회의적인 순간에는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더 당당히 ‘돈’에 대해 언급 하고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야한다. 고용주가 페이를 지급하는 것이 아깝지 않도록. 내 요구가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내가 고용주 입장이라도 퀄리티 떨어지는 작업물을 가져와 돈 이야기부터 꺼내는 사람과는 손 잡고 싶지 않을 거다. 회사 밖에서 일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내 브랜드와 가치를 스스로 키워가는 일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프리랜서가 가져야 할 정말 중요한 ‘돈‘의 능동적인 두 번째 자세 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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