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BTS의 새로운 신곡을 보며 필자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놀랐을 것 같다. 그렇다! BTS는 한복을 입고, “얼쑤!” 하며 국악을 넣은 신곡 "IDOL"을 들고 나왔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이질적인, 신나는, 두근거리는 느낌!
익숙해서 낯설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꼈던 것 같다. 대중, 평론가 모두 “한국적 콘셉트”을 한 BTS에게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왜라는 질문은 묻지 않았다. BTS는 왜 한복을 입었을까? 왜 그 글로벌 라이징 슈퍼스타는 그 시점에 한국적 콘셉트를 들고 왔을까?
BTS의 한복을 이해하기에 앞서, 비슷한 두 가지 케이스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CASE 1 ) 빅뱅
- "BAE BAE"
2015년 빅뱅 10주년 앨범에 수록된, 추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를 받은 노래다. 가사 중 “우리 궁합이 찹쌀떡”이란 표현이 있는데, 뮤비에서 이 부분을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 설화와 연결시킨다. 빅뱅 멤버들이 달나라에서 예쁜 여인들과 함께 희희낙락 여흥을 즐기는 씬에서 멤버들은 물론 여자 모델들 모두 한복을 입고 있다. 당연히 모던하게 변형된 한복이지만 각 멤버들의 스타일에 맞게 세련되게 디자인되었으며, 한복 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는 모습은 꽤나 멋지다.
- "FANTASTIC BABY"
짧게 나왔지만, 2012년 나온 FANTASTIC BABY에선 GD가 익선관을 삐딱하게 쓰고 등장하고, 마지막에 사자탈춤을 추는 사자탈이 두 개 나온다.
CASE 2) Jay Park (박재범)의 “SOJU”
박재범이 미국의 대형 기획사, Roc Nation과 계약한 후 나온 정식 미국 데뷔곡이다. 그래서 박재범이 아닌 Jay Park다. 래퍼답게 자신을 스웨그 넘치게 표현하고, 유흥에 대해 이야기하는 노래다. 다만, 그 주제가 ‘소주’인 것이다. 뮤비 시작 전 짤막하게 소주의 사전적 정의가 화면에 표시된다. 그리고 Jay Park가 미국에서 소주 문화(한식 안주, 좌식 룸, 러브샷 등)를 즐기는 모습이 나온다. 피처링한 2 Chainz 또한 함께 이 문화를 즐기는 것을 보는 게 재밌다.
힙합 뮤비에서 소주를 보니 참 아담(?)하다.
빅뱅, Jay Park, 방탄소년단 모두 뮤비에서 다분히 한국적인 요소를 사용하였다.
차이점이라면 빅뱅과 방탄은 보다 직관적으로 '전통문화'라 인식되는 요소를 활용한 반면, Jay Park는 현대 한국 문화 중 미국 시장과 같지만(술) 다른(소주, 안주 차림, 분위기) 모습을 표현했다.
여기서 한국적 요소들은 자신감 넘치는 “나”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이 세 음악 모두 실제로 그 가수를 세계적으로 가장 잘 표현해야 하는 시점에 나오기도 했다. Jay Park의 “SOJU”는 그가 박재범으로서 국내외 성공을 거두고 미국에서 정식 데뷔를 하는 시점. 빅뱅의 "BAE BAE"는 K POP이란 장르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한 장본인들의 오랜만에 컴백하는 10주년 앨범 타이틀 곡 중 하나로. 그리고 BTS의 “IDOL”은 빌보드 어워드 두 차례 수상 후, “LOVE YOURSELF”라는 앨범 트릴로지 중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서 나왔다. "IDOL" 곡 자체도 “나는 나를 사랑해!”라는 내용이다. 그들은 업계 속 우뚝 선 본인들을 인식했을 거고, 한번 더 어필하기 위해 자신을 만드는 것,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언지에 대해 고민을 했을 것이다.
"LOVE YOURSELF ; ANSWER"의 타이틀곡 IDOL
이럴 때 본인의, 나아가 가수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한복과 같은 ‘한국적 요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이들처럼 낯선 문화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하게 해야 할 경우, 한국적 이미지는 그들을 특별하게 하는 요소이자, 오로지 그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혹자는 IDOL을 보고 결국 BTS도 국위선양이란 부담감을 넘지 못했다고 비판을 할 수 있다. 유독 세계의 인정에 목마른 한국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국악과 추임새, 한복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누군가의 말도 있다.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선 그들이 국위 선양을 했다고 봐야 하지만, 필자는 그 이상을 생각하고 싶다. BTS를 비롯한 이들의 음악 속 한국 문화는 “국가 속 나”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는 문화”의 관점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비단 해외에서 성공하는 아이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에게 ‘전통’이 핫한 키워드로 떠오른지는 꽤 되었다. 한옥 가득한 익선동은 핫 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고, 10대들이 많이 소비하는 텀블벅 상단에는 '전통'을 키워드로 한 제품이 빠지질 않는다. 현재 10대, 20대야말로 과거와 상대적으로 경제적, 문화적 풍요에서 자라 본인의 삶과 정체성에 깊게 고민하게 된 첫 세대가 아닌가. 나의 삶과 정체성을 찾는데에 있어서 본인 문화의 뿌리, 즉 ‘전통적, 한국적 요소들’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은 무척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익선동은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등장해 14년만에 재개발지역서 해제되었다.
다만 한계라면, BTS, 빅뱅을 비롯해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정체성의 표현으로 끌어오는 이미지가 한정적이라는 것이겠다. 빅뱅 2012년 "FANTASTIC BABY"에서 나온 사자탈은 2018년 BTS "IDOL"에서 비슷하게 나온다. 한복, 호랑이, 한옥 등 국가 기관에서 내세우는 이미지들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래서 국위선양이라는 프레임으로도 쉽게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돌들의 탓, 혹은 국가의 탓도 아니다. 그저 지금까지 우린 우리의 문화를 깊게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래픽으로 만든 사자들이지만, 마지막 군무 씬에서 쌍으로 등장해 무대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은 FANTASTIC BABY와 거의 비슷하다.
한계는 극복할 수 있는 법. Jay Park의 "SOJU"가 그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주 문화가 BTS나 빅뱅이 직관적으로 표현한 만큼 ‘전통적인 한국 문화’인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우리의 것”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문화 중, “them green bottles (저 초록 병들)”는 없었다.
문화를 돌보고 가꿀 여유가 없었던 한국의 급성장. 그 배경에서 탄생한 소주는 우리가 멋지게 생각하는 '전통문화'와는 무척 다르다. 하지만 분명하게 현 한국 모습 중 큰 면을 차지하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다. 박재범을 비롯한 자존감 높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젊은 세대에게 좁은 골목 속 즐비한 술집과 초록 병들 또한 멋진 ‘나’를 만들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국가란 개념을 넘어, 나는 어떤 문화에 소속감을 느끼며 그것이 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나아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나 답게' 표현하는가? 이런 질문들이 젊은 세대는 물론, BTS 또한 본인들에게 물어봤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만드는 것이 한복과 같은 한국적인 것만은 아닐 테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가치를 다시 주목하고 본인의 것으로 새롭게 해석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한다.앞으로 또 어떤 익숙한 것들이 누군가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요소로 재탄생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