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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 Project Mar 28. 2017

한글의 아름다움, 그리고 서예와 캘리그래피

우리말을 예술로 승화시키다

언제부터인가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정형화된 글씨체가 아닌, 자유분방하게 풀어진 캘리그래피를 사용한 간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폰트로 제작되거나 정확하게 비율에 맞춰 제작된 글씨체들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쓴 듯한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혼이 담긴 것들이 확연히 많아지고 있다. 이를 알아챈 것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많은 이들이 캘리그래피와 손글씨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여가 시간에 취미 활동으로 손글씨를 쓰는 이들이 많아진 것은 SNS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해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로 '#캘리그래피'나 '#손글씨'를 검색해보면 캘리그래피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한글 글씨체를 쓰는 이들의 게시물을 볼 수 있다.


영문 캘리그라피의 예


사실상 캘리그래피라는 표현은 그 어원이 그리스어에 있으며, 손으로 그린 그림 문자라는 뜻이며,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한다. 그렇기에 ‘이것은 캘리그래피이고 저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명확한 구분점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의 손글씨가 아무리 윤고딕 폰트와 유사해 보인다고 한들, 그 또한 캘리그래피로 분류되는 셈이다.


캘리그래피(영어: calligraphy, 그리스어: κάλλος kallos '아름다움' + 그리스어: γραφή graphẽ '쓰기')는 손으로 그린 그림 문자라는 뜻으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을 뜻한다. 넓은 의미의 캘리그래피는 펜 또는 브러시, 나아가서는 새로운 도구에 의한 육필 문자 및 그 기술을 가리킨다. 또한 해서, 행서, 초서 모두를 포함하며, 나아가 고전적 서풍에서 창작, 전위적 서풍까지를 모두 포괄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고전 형태의 캘리그라피



캘리그래피는 처음으로 14~16세기 북부 이탈리아의 서풍을 이어받아 시작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사실을 조금 더 덧붙이자면 캘리그래피를 부흥시킨 사람은 영국의 서체 디자이너 에드워드 존스턴이며, 캘리그래피라는 용어 자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기욤 아뽈리네르라고 한다. 밋밋하고 정형화된 글씨체들과는 달리 캘리그래피는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감성적인 표현이 가능하기에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른 캐릭터가 보이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는 캘리그래피의 특징 6가지에 대한 설명이다.



가독성: 글자가 정확히 보이고, 문장의 내용이 쉽게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추가 설명이 없어도 읽고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주목성: 어느 특정 부분에 시선이 집중되어야 한다. 디자인 공간 영역에서 중심 내용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중심 내용에 고정될 수 있도록 공간 안에서 차별을 두어야 한다. 캘리그래피가 시각적인 디자인에서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다.

율동성: 글자에서 보이는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리듬감을 포함해야 한다. 타이포와 같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는 글씨가 아닌, 손글씨의 불규칙함을 장점으로 가져야 한다.

조형성: 캘리그래피 자체가 조형적 요소이기 때문에 선의 움직임과 형태가 아주 중요하다.

독창성: 글씨를 쓰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글씨체로 새로운 느낌을 표현해 낼 수 있다.

협업성: 글씨를 쓰는 사람과 디자이너와의 교감과 협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물론 이 모든 특징을 고려하여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는 이들은 많지 않겠지만, 마케팅이나 디자인업계에서 캘리그래피에 주목하는 이유가 이에 근거하여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시각적인 요소의 변형을 통해 정형화된 방식으로는 표현될 수 없던 함축적인 감정과 정서가 전달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아름다운 형상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 캘리그라피의 예시



그중에서도 주목할 점은 캘리그래피라는 개념이 한글로 옮겨왔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손글씨가 광고와 상품 제작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면서 ‘펜으로 손글씨 배우기’, ‘누구나 할 수 있는 한글 캘리그래피’와 같은 홍보 문구를 내세우는 캘리그래피 수업들이나 홍보 카피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한글과 손글씨의 매력에 푹 빠진 이들이 하루하루 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서양의 언어를 비롯한 해외의 다양한 시각적 트렌드에 집중되어있던 대중의 관심을 생각해보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럼과 동시에 전통 서예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이 둘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는 것이 서예를 기초 삼아 캘리그래피를 배운 필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다.


필자는 어렸을 적 서예를 배우면서 즐거워했던 기억뿐만 아니라, 예고 시절에 기초과정으로 배웠던 동양화에 대한 추억이 많다. 이에 최근에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더해지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배우기 위해 캘리그래피 입문 과정을 3개월간 수강하기도 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이 한글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수박 겉 핥기 방식으로 펜부터 들고 유명한 캘리그래피 작가들의 손글씨를 따라 쓰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혼자 마음대로 써보는 즐거움밖에는 몰랐을 것 같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서예의 기초부터 시작해서 한글의 창제 원리까지 꼼꼼히 지도하고 기초 단계를 탄탄히 이해시켜 주시는 작가님의 수업을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의 언어에 대한 존중, 그리고 이를 창제하신 분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매 번 화선지 앞에 경건한 마음으로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한글 캘리그라피가 적용된 다양한 영화 포스터들.)



서예라는 것은 캘리그래피와 그 개념이 다르다. 이를 분명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서예는 반드시 동물의 털로 만든 붓을 사용하여 덧칠이 불가능한 1회성 필획을 연출함으로써 작가의 천성과 학문, 인품과 감정까지 한 번에 담아내는 순간 예술이다. (출처: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64310 ) 그렇게 보았을 때, 마냥 이쁘고 매력적인 시각물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글에 대한 공경과 숭고하고 바른 마음가짐이 순간적으로 응축되어 표현되는 순간 예술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직업상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같은 유형의 디자인 창작물을 만들어내더라도 영어로 작업된 것과 한글로 작업된 결과물의 느낌은 정말 확연히 다르다. 한글의 구조 자체가 초성, 중성,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알파벳 등 다른 언어의 형태에 비해 더 복잡하여 공간을 잘 활용하여 가독성을 높여야 한다. 이렇게 획이 많은 글자를 다양한 폰트로 개발하는 것 자체가 영문 등과 비교하였을 때 제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글을 사용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캘리그래피를 적용하는 것이 더욱 유용하게 느껴진다. 기존에 정해진 폰트와는 달리 내 마음대로 여백을 조정하고 길이와 폭 등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서예 작품들
붓 획의 매력이 돋보이는 서예 작품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캘리그래피와 서예는 매우 다르다. 하지만 캘리그래피라는 것이 유행하면서 그 둘의 경계가 매우 불분명해졌을 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 캘리그래피’인 셈인 ‘서예’에 대한 뚜렷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처럼 서예는 함양된 ‘그 사람’ 자체를 표출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서예는 곧 그 사람이다 [書如其人]”라고 여겨왔으며, 작품에 그 사람이 함양한 차원 높은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이 배어 있을 때 최상등의 작품으로 평가해 왔다. 문자도 안인 캘리그래피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 ‘다름’을 드러내기 위해 서예를 캘리그래피와 구분하여 ‘Chinese Calligraphy’라고 번역해 왔다. 부실한 번역이다. ‘Seoye(서예)’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서양에 알리는 게 나을 것이고, 굳이 번역해야 한다면 ‘동아시아의 서예’, 즉 ‘East Asian Calligraphy’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출처: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464310)




우리의 선조들은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의 일환으로 서예와 먹그림 등의 취미활동을 당연한 하루 일과로 두었다고 한다. 그들에겐 미적으로 훌륭한 것도 중요했겠지만, 무엇보다 그 행위를 통해 깨우칠 수 있는 또 다른 차원의 가르침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윗글에서 언급된 것과 같이, 캘리그래피의 유행으로 인해 우리의 전통과 선조들의 차원 높은 정신을 대변하는 ‘우리의 캘리그래피’, 즉 서예의 자리가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두 개념이 유사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캘리그래피를 공부하거나 배우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그랬듯이 지구 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캘리그래피 중에서 가장 차원 높은 캘리그래피가 곧 서예이다.


우리의 서예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쁘게 쓰기 위한 손글씨를 추종하고 모방하는 것은 좋다. 다만, 우리의 전통문화와 우리의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세월이 흘러가더라도 굳건히 지켜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우리 젊은이들이 명확하게 이해하고 힘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책상 위에 하얀 화선지를 펴고 시간을 들여 먹을 갈고 누군가가 정성 들여 만든 붓으로 그 먹물을 찍어 허리를 곧게 핀 자세로 무언가를 써 나갈 때. 그때서야 비로소 왜 우리의 서예, 우리의 캘리그래피가 특별한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상단 메인 이미지 출처: lovingkore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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