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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 Project Aug 19. 2019

실이 엮여 매듭이 되기까지

매듭장 박형민 선생님이 알려주신 매듭 공예의 풀림과 엮임


전통에 취하다, 전통을 취하다.

취 프로젝트는 전통 공예 장인 선생님들과 협업하여 현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제작하는 한국 전통문화 플랫폼입니다. 장인 선생님의 기술과 이야기, 재료의 고유함이 현대인들의 삶 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합니다.


취 프로젝트의 제품을 소개하고자 하면 단연 "매듭 DIY 키트"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취 프로젝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1220%를 달성한 제품. 많은 분들이 취 프로젝트란 이름을 아시게 된 계기이자 지금까지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제품입니다.



매듭 DIY 키트를 통해 한국 전통 매듭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후 리뉴얼 제품, 매듭 팔찌, 그리고 행잉 플랜트까지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취 프로젝트 모든 매듭 제품들의 탄생에 함께 한 분은 바로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이수자 박형민 선생님이십니다.


취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 하셔 지금까지 든든한 협력자이자 지원군이 되신 선생님. 오랜만에 선생님을 서울에서 뵌 날, 자리를 마련해 선생님의 매듭에 대한 철학과 취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이수자 박형민이라고 합니다. 이수자 지정은 2009년에 되었습니다. 작품 활동, 기관 활동 등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이수자 박형민 선생님


전통 매듭이라는 공예를 하고 계세요. 매듭 공예는 무엇을 만드는 기술이며,
전통 매듭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가요?   


매듭 공예는 실을 염색, 가공해 끈을 짜고, 그 끈으로 매듭 제품을 만드는 과정 전체를 말합니다. 매듭은 주로 여성분들 노리개, 아니면 장식품, 벽걸이, 발걸이, 상여 유소 등에 쓰입니다.  과거에는 공예 공정이 분업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매듭 공예도 실을 짜는 사람, 꼬는 사람, 만드는 사람 등, 분야별로 따로 있었습니다. 생활 속 존재했던 직업이었으니까요.


요즘은 공예가 사장( 死藏)된 게 많죠. 즉, 이젠 사람이 없으니까, 매듭 공예라면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하는 것입니다. 결과물에 비해서 과정이 너무 커지니까 과정이 벅차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박형민 선생님의 낙지발 삼작 노리개


이런 매듭 공예를 선생님께선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실 집안 대대로 4대째 매듭 공예를 하고 있습니다. 모친께선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선생님이시고, 형제들도 다 매듭 조교나 이수자이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매듭 일을 보고 도우며 자랐습니다. 회사를 다니다가 15년 전부터 이 일에 관심을 가져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녔던 회사가 섬유, 액세서리 쪽이었기 때문에, 매듭을 현대적으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3년 정도 고생을 했는데, 그 시간 이후 매듭으로도 현대적인 감각의 장신구, 제품, 작품 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매듭 공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매력은 재료를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상하는 매듭에 따라서 재료가 달라진다는 것이죠. 매듭을 하나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실의 두께, 밀도, 길이, 색 배합 등 모두가 고려 대상입니다. 아무리 잘해도 원 재료의 특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퀄리티 좋은 제품이 나오려면 재료가 좋아야 합니다. 매듭을 만드는 데는 정해진 규칙이 있지만, 재료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실은 몇 가닥 넣고, 속심은 몇 가닥 넣고... 조절하며 재료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컨트롤하면서 제품을 만들면 추구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죠.  저는 (활동 초기부터) 끈을 제가 직접 제작해 기존 제품들보다 더 경쟁력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저는 20년 전부터 기계를 사용하기도 했어요. 아주 빨랐죠. 소비자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만들 땐 기계를 사용해 단가를 맞춥니다.     


다회 치는 과정. 다회는 손으로 짜는 끈, 혹은 그 끈을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취 프로젝트는 어떤 계기로 만나게 되셨나요?  


김은비 대표가 대학원 졸업생일 때 대학 연계 프로그램으로 무형유산원 통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매듭에 관심이 있고, 졸업 작품으로 하고 싶다 해서 몇 번 컨택도 하고, 졸업 작품에 도움을 줬죠. 그리고 내가 예전부터 매듭 키트를 하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해야 될지 구체적으로 구상을 못하고 있었어요. 마침 김은비 대표가 매듭 키트를 상품화시키고 싶다고 해 같이 만들었죠. 취 프로젝트에서 구성을 잘했습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왔습니다.   


DIY 키트와 행잉 플랜트를 함께 하셨어요. 그중 행잉 플랜트는 기존에 없었던 모양을 매듭을 만들어 내셔야 했어요. 행잉 플랜트의 탄생 비화가 궁금합니다.  


행잉 플랜트 아이디어는 취 프로젝트에서 제시를 했습니다.  마크라메처럼 “행잉 플랜트를 전통 매듭으로 해보면 좋겠다”하고 해서 불가능한 건 아니라 생각하고 진행하게 된 거죠. 샘플을 몇 개 만들어 보냈는데 너무 좋다 해서 그대로 진행을 했어요.      



기존에 없던 형태를 만들 때 어려웠던 점들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매듭 행잉 플랜트의 사용 화보


맞아요.  한국 매듭은 끈을 서로 넣었다 빼며 모양의 틀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좀 (끈이) 딴딴해야 하거든요. 사용했던 광목은 느슨해서 모양을 잡거나 작업하는 공정에서 힘들었죠.

그 외에도 마크라메는 주욱 늘어뜨려서 똑같은 패턴으로 엮는 반면, 고정된 매듭 기법 몇 개로 만들어야 하다 보니, 하나하나 따로 만들어 부속품을 서로 연결해야 해요. 그래서 작업을 하는데 더 복잡했어요. 몇 번 시행착오를 통해 간격이라든지, 어느 부분에 어떤 매듭이 있어야 하는지 만들어본 후 지금 상품이 나왔죠.   


그렇게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선 합이 잘 맞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한다면 그쪽에선 어떻게 예쁘게 보일 수 있을지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선생님은 손으로 실현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요.  


협업을 전통 공예인 분들, 현대적 디자이너 분들이랑 다양하게 해 봤습니다. 각자 다 개성이 있는 것 같아요. 전통 공예는 서로 잘 알지만, 다 자기주장이 꽤 센 성향이 있어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전통하시는 분들이 캐릭터가 꽤 강한 편이에요. 디자이너 분들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공예가들을 끌어들이려 할 때가 있고. 취 프로젝트와도 처음에 할 땐 조금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서로 할 수 있는 분야를 이해하니 윈윈 할 수 있는 영역과 분위기가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서로를 위해 양보를 하고 이해하고 있음이 느껴져서 진행이 더 잘 된 것 같아요.    


박형민 선생님과의 워크샵을 통해 DIY 키트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취 프로젝트와 협업은 기존에 하셨던 협업들과 어떻게 다르셨나요?  


즐거웠어요. 기존에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을 대신해서 해주는 그런 귀하신 몸들이 나타난 것이지. (웃음) DIY 키트도 어떻게 만들까 고민도 수도 없이 하고, 실제로 해보기도 했는데 너무 엉성한 거예요. 공예가인 우리가 잘하는 건 만드는 거예요. 하지만 만든 것을 소비자에게 가기까지 하는 걸 잘 못하는 거죠. 그 이후 단계인 홍보, 패키징… 그걸 전부 취 프로젝트에서 해주니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예쁘게 만들고 그 이후론 맡겼습니다. 그 이상은 취 프로젝트의 몫이라는 것이지. 결국 잘 조화가 되어서 결과물이 잘 나오기도 했고요.  



기존에 하셨던 많은 협업들은 작품을 같이 만드셨다면, 취 프로젝트를 통해선 상품을 만드는 협업이란 면에서 다르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작품 협업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려요. 상업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천천히 하는 편이죠. 반면에 상품은 빨리 나와야 하는 특성이 있죠. 경제적인 부분도 생각해야 하고요. 그래서 취 프로젝트랑 함께 했을 때 굉장히 재밌었어요. 가격은 어떻게, 색상은 어떻게… 전화 통화하고, 미팅하고, 정보를 갖고 만나는 긴장감 넘치는 과정이 새롭고, 재밌기도 한 것이죠. 밤새고 손 아파도 그 진행속도가 빠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보이니까. 이런 식으로 상품을 제작해본 적은 없었죠.   



처음 키트 펀딩을 했을 때 1220%나 달성하셨죠. 그때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호응이 너무 좋아서 무척 놀랐어요. 취 프로젝트도 당시엔 사업 초기였으니까 걱정이 많았었는데 펀딩이 아주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놀랐었죠. 주문량이 많아서 어떨 땐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새벽 한 시에 들어갈 때도 있었어요. (매듭) 팔찌 만들기가 무척 어렵거든요. 생쪽, 가락지, 도래매듭… 시간 엄청 오래 걸려요. 그때 작업실이 에어컨 없는 지하실이었는데 여름에 무척 고생을 했죠.      



선생님이 보시기에 취 프로젝트와 협업해서 만드는 제품들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취 프로젝트는 내가 제작 공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나머지 부분을 다 관리하고. 저는 작업에 집중해서 더 좋은 퀄리티의 물건을 만들 수 있고. 그렇죠. 영역이 확실하게 정해지는 것 같아요. 영역이 지켜지지 않을 때 협업이 잘 안되거든요. 그 지점에서 서로 양보가 잘 됐던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어떤 작품들을 하고 싶으신지, 향후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몇 년 전에 개인전을 하긴 했는데, 시간이 가기 전에 개인전을 한번 더 해보고 싶어요. 취 프로젝트가 전시도 잘 만드니까 전시를 하게 된다면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작품 중에선 - 만드는 모든 게 다 작품이지만 -  상여에 들어가는 큰 유소 같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협업으로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박형민 선생님은 현재 꾸준한 강의와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매듭과 취 프로젝트 대한 이야기를 나눈 그 자리, 선생님의 눈빛은 젊은 공예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루는 기술에 대한 감각과 자부심, 재료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좋은 작품을 위한 고민과 열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장인(人). 숙련된, 뛰어난 기술로 대체 불가한 무엇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장인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취향에 근거한 소비가 더 대두되는 요즈음, 장인 본인과 그들이 시간을 통해 만들어진 기술은 더욱 각광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장인의 결과물을 주변에서 쉽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숙련된 기술로 만들어 낸 제품이라 그 가격의 문턱이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경로와 어떻게 소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예시가 부족한 부분도 있지 않을까요. 슈트를 맞추는 테일러가 멋있게 미디어를 통해 소개되고, 취향의 발견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처럼, 한국 고유의 장인들과 그들의 제품 또한 더욱 쉽게 발견되고 소비되길 바랍니다.



사진의 모든 저작권은 취 프로젝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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