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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 Project Dec 30. 2019

밤낮으로 부는 대피리 소리, 선비의 마음을 흔들다

우리 과거 속 대나무에 반영된 사상을 알아보다

[한국의 향] 프로젝트는 한국의 지역과 자연,
그리고 그곳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한 취 프로젝트의 향 라인입니다.

그 중 담양의 댓숲에 영감받아 만든
"바람이 불어오는 대나무 숲"향과 "비가 내리는 대나무 숲"향을 제작하며,
전하고 싶었던 우리 문화 속 대나무 이야기를 글로 소개합니다.


한국의 대나무와 취 프로젝트가 인연을 맺은 시간을 일년 남짓이지만, 어느 덧 향과 공예, 그리고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사무실이 가득 채워져 익숙한 친구가 된 기분입니다. 함께 협업하는 한창균 죽공예 선생님의 혜안 넘치는 말씀과 같이 - 이제 길에서든, 백화점에서든 대나무가 보이면 참 반갑습니다.


곡성에서 만난, 한창균 선생님의 대숲은 높고 푸르렀습니다.


사실 그 크기와 심플함이 도시 생활에서 자주 보이는 조경 식물들과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 혹은 그런 이유 때문에 - 참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조금만 돌아보면 우리 곁에서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대나무. 우리 모두와 깊은 인연을 품고 있는 대나무는, 과거 우리 문화에선 어떤 의미로 곁에 두었을까요?




가까운 과거,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 고려와 조선의 유교 사상 속, 대나무는 대표적으로 사군자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술 시간에도 많이 그리는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말합니다. 이 네 식물은 유교적으로 도덕적 이상에 달성한 군자의 성품을 닮았습니다. 그 중 대나무는 추운 겨울에 모든 식물의 잎이 떨어진 후에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그 모습이 곧기 때문에, 뜻을 굽히지 않는 성품을 상징합니다.

명 대에 완성된 사군자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음과 함께 고려 말기부터 한반도에서도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書畵同源(서화동원), “글과 그림은 같다”라는 표현과 같이, 과거 동양 사회에서 글과 그림은 둘 다 의사를 전달하는 기호였습니다. 사군자의 대나무 또한 지식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상징으로 사랑받으며,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종이 위에 표현 되었습니다.




위 그림은 조선 12대 왕, 인종이 세자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김인후에게 직접 그려 선물한 대나무 그림입니다. 그 아래 김인후는 시를 지어 왕의 뜻에 답했습니다.  


根枝節葉盡精微
뿌리, 가지, 마디와 잎새, 모두 정미하다.

石友精神在範圍
굳은 돌, 벗의 정신이 깃들었네.

始覺聖神모造化
조화를 바라시는 임금의 뜻을 이제 깨닫노니,

一團天地不能違
천지에 한결 같으신 뜻을 어길 수 없도다.


대나무의 상징은 그림을 넘어, 실제 생활 속에서도 선비들이 자신의 마음을 비출 수 있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15세기 문인이자 뛰어난 화가, 강희안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원예서를 저술해 예로부터 사람들이 완상(玩賞)하여온 꽃과 나무 몇 십 종의 재배법과 이용법을 설명했습니다.


문인의 식물들인 만큼, 그는 여기서 꽃과 나무의 품격을 구분해 이를 아홉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 대나무는 매화, 국화, 연꽃과 함께 1품을 차지했습니다.


강희안은 유유자적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고사관수도〉의 화가입니다. 이 그림 좌측 하단에도 대나무가 보입니다.


조선시대 선비 정원의 정수라 불리는 소쇄원의 입구 또한 대숲입니다. 이 숲의 이름은 자죽총(紫竹叢)인데, 소쇄원의 48경 중 하나라 뽑습니다.


이를 찬사한 김인후의 시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千竿風響(천간풍향)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已向空邊滅(이향공변멸)
하늘 가 저 멀리 이미 사라졌다

還從靜處呼(환종정처호)
다시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는 바람

無情風與竹(무정풍여죽)
바람과 대 본래 정이 없다지만

日夕奏笙篁(일석주생우)
밤낮으로 울려 대는 대피리 소리


대나무의 소리를 고요 속 음악으로 표현하며, 자연을 벗삼아 살기 위해 만들어진 소쇄원을 방문한 선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쇄원 가는 길.


불교에서도 대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이로움과 깨달음을 주는 식물입니다.

대승 불교의 경전, 《화엄경》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바로 “일체유심조”입니다. 즉, 모든 일은 오로지 마음이 자아낸다는 뜻으로, 마음이 평화로운, 즉 잡념과 번뇌가 없는 상태를 “무심”이라 합니다. 무심의 상태는 득도를 한 것과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대나무의 빈 속을 무심의 상태와 비유합니다. 이와 같이, 위 아래로 마디가 있는 모습 또한 절도 있는 생활태도로 연계해 가르칩니다.


이와 같이 생활 태도를 거울 삼는 대나무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진 것인진 모르겠으나, 불교에서 수련하는 수행자들을 경책하는 도구 또한 대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죽비(竹毗)는 대나무 두 쪽을 합쳐 만든 막대기로, 큰 소리를 냅니다. 곧, 무명을 깨뜨리는 지혜의 도구인 셈입니다. 재밌게도, 현재 죽비를 검색하면 불교식 수행 도구는 물론, 여러 일상 생활 속 다양한 깨우침(?)을 위한 효자손, 사랑의 매로도 판매가 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텅 빈 대나무 속의 모습.


사상 속 대나무를 넘어, 우리의 일상 속 대나무는 빼놓을 수 없는 전통 공예 재료입니다. 대나무 장인인 죽장(竹匠)은 서울의 장인인 경공장으로, 공조와 선공감에 소속되어 있어 나무를 다루는 목장, 소목장과 구분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죽공예를 이해하기 위해 죽장만 볼 수는 없습니다. 발을 제작하는 염장, 갓의 양태를 제작하는 양태장, 부채를 제작하는 선자장, 우산을 제작하는 우산장 모두 대나무를 다루는 장인들입니다.


윤규상 장인의 지우산. 출처: 네이버 디자인프레스
궁궐에서 왕의 영역을 드리우는 "발" 또한 대표적인 대나무 공예 제품입니다.




사상, 정치, 교류 방법, 조경과 공예까지 - 영향이 미치는 곳이 없던 대나무는 현재 주변에서 조경으로 드문 드문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사람들에게 대나무는 보이는 것 그 이상이었습니다. 빈 속에서 지혜를 알려주고, 불어오는 바람에서 노래 불러주는 존재가 바로 대나무였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 일상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대나무 - 오랜 시간 우리 곁을 지켜주는 존재였던 만큼, 많은 관심과 애정으로 오래 오래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출처:
사진) 소쇄원 가는 길, http://blogs.chosun.com/pts47/2016/06/29/%EC%A1%B0%EC%84%A0-%EC%B5%9C%EB%8C%80%EC%9D%98-%EB%AF%BC%EA%B0%84%EC%A0%95%EC%9B%90-%E7%80%9F%E7%81%91%E5%9C%92%EC%86%8C%EC%87%84%EC%9B%90/

자료)
"조선 최대의 민간정원 瀟灑園(소쇄원)", http://blogs.chosun.com/pts47/2016/06/29/%EC%A1%B0%EC%84%A0-%EC%B5%9C%EB%8C%80%EC%9D%98-%EB%AF%BC%EA%B0%84%EC%A0%95%EC%9B%90-%E7%80%9F%E7%81%91%E5%9C%92%EC%86%8C%EC%87%84%EC%9B%90/

"인종 '절친' 김인후 "국정농단세력이 내린 관직은 받지 않는다", 이기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310941001&code=9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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