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서른다섯. 이제 내 삶에는 더 이상 나를 위협하는 결핍은 없다.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공과금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낯선 이방인의 언어를 사용하며 겪어야 했던 굴욕적인 소통의 장벽도 사라졌다. 나는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며, 완벽하게 안전한 성벽 안에서, 완벽하게 풍족한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모든 결핍이 채워진 이 시점에서, 나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급격히 잃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지난 10여 년간 나를 움직였던 동력은 '분노'와 '공포'였다. 아빠가 남긴 부채를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 무시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오기, 그리고 다시는 그 크고 텅빈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존 본능. 그 시퍼런 날 선 감정들이 나를 채찍질하며 여기까지 밀어 올렸다. 하지만 적들이 모두 사라지고 성공을 거둔 성벽 위에서,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처절하게 싸웠는지 묻게 된다. 생존이라는 숙제를 끝내고 나니, 정작 '생활'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오후가 찾아오면, 나는 습관적으로 다음 재앙을 기다린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린 대가일까. 20대의 뜨거웠던 열정과 아픈 사랑, 그리고 아빠와의 처절한 작별까지 모두 겪어낸 내 영혼은 마치 수백 년을 산 노인처럼 지쳐버렸다.
"다 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을까."
화려한 쇼핑백들로 방을 채워보고, 더 높은 직급에 올라가 보아도 내장 깊숙한 곳의 텅 빈 구멍은 메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안락함이 아니라, 18살의 내가 잃어버린 '순수한 내일'에 대한 상실감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이제 시작일 서른 중반의 나이가, 내게는 이미 모든 시나리오가 끝나버린 연극의 커튼콜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완벽한 요새 안에서 길을 잃었다. 결핍이 나를 키웠다면, 풍요는 나를 방황하게 한다. 계절이 거꾸로 흐르는 이 땅에서 나는 다시 묻는다. 살아남는 것 이상의 의미를, 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20대의 나를 불태웠던 그 모든 희생의 끝에 남은 것이 이토록 서늘한 정적뿐이라면, 나는 앞으로 어떤 계절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성벽은 높았고, 창고는 가득 찼으며, 나의 언어는 막힘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의 서른 중반은 완벽한 승전보와 같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전리품들 사이에서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내가 병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았다. 마음속에 생겨난 거대한 구멍은 소리 없이 커졌다. 그것은 통증이라기보다 '부재'에 가까웠다. 무엇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무엇을 사도 채워지지 않으며, 누구를 만나도 고립된 기분. 나는 내가 왜 이런 상태인지, 이 허무의 정체가 무엇인지 질문할 기력조차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만큼 영혼이 마비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생존의 파도가 잦아든 뒤 찾아온 이 긴 정적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다. 18살의 아이를 그 거친 풍랑 속에 밀어 넣고, 20대의 청춘을 야망과 후회의 불길 속에 태워버린 대가로 얻은 이 평온함이 너무나 낯설었다. 나는 싸우지 않는 법을 몰랐고, 누군가의 기둥이 아닌 '나'로 서 있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적이 사라진 전쟁터에서 길을 잃은 병사처럼, 나는 내 마음의 구멍을 응시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낼 뿐이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했던 끝인가."
가끔 거울 속에 비친, 세련된 옷을 입고 유창한 영어를 내뱉는 낯선 여자를 볼 때면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성공했지만 행복해 보이지 않았고,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잃어버린 듯 보였다. 그 구멍 안으로 18살의 순수했던 꿈도, 20대의 뜨거웠던 사랑도, 아빠에 대한 풀어내지 못한 원망도 모두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 무감각한 시간들은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아프다는 것을 깨닫는 데만도 몇 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마음속의 구멍이 너무 커져서 이제는 내 존재 전체를 집어삼키려 할 때쯤에야, 나는 비로소 멈춰 서서 내 안의 심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 답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답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지독한 공허함 또한 내가 치열하게 살아낸 훈장 같은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뿐이었다.
계절이 거꾸로 흐르는 이 땅에서, 나는 그렇게 이름 없는 구멍을 품은 채
긴 겨울잠과도 같은 방황을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