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결국, 마음속에 소리 없이 커지던 그 거대한 구멍이 내 삶 전체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색채로 변해 있었다. 아니, 모든 색이 사라진 무채색의 진공 상태였다. 의사는 내게 ‘무기력’과 ‘우울증’이라는 차가운 병명을 쥐여주었지만, 그것은 어떤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파산 선고였다.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력이 남들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하게 나를 끌어내리는 기분이었다. 어제까지 유창하게 내뱉던 언어도, 거침없이 몰던 자동차 핸들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것조차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과제가 되어버렸다. 일상의 모든 기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텅 빈 껍데기만 남았다. 가장 지독했던 것은 슬픔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엉엉 울 수라도 있다면, 누군가를 붙잡고 원망의 말이라도 쏟아낼 수 있다면 나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모든 감정의 샘은 바짝 말라붙어 있었다. 눈물은 고이지 않았고, 가슴을 치는 통증조차 무디게 다가왔다. 기쁨도, 분노도, 심지어는 절망조차 거세된 기괴한 평온함 속에 나는 갇혀버렸다. 18살부터 쉼 없이 달려오며 나를 움직였던 그 뜨거운 야망도, 첫사랑을 떠올릴 때면 찾아오던 그 아릿한 전율도 한순간에 전원이 꺼진 것처럼 사라졌다. 아무런 감정도, 아무런 온기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 그것은 내가 나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정서적 탈진의 정점이었다. 아마도 내 영혼은 너무 오랫동안 과부하 상태로 버텨온 나머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감정의 문을 걸어 잠근 것 같았다.
"왜 눈물조차 나지 않는 걸까."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운전대를 잡을 수도,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을 수도 없는 마비된 육체보다 더 나를 공포스럽게 만든 건, 내 안이 통째로 텅 비어버렸다는 실감이었다. 큰 집의 고립보다 더 지독한 고립은 바로 내 자신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이었다. 슬퍼하기엔 너무 지쳤고, 아파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더 이상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세포가 남아있지 않았다. 더 이상 남의 시선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나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 18살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던 나의 시계가 마침내 태엽이 끊어진 채 멈춰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가장 화려한 시절에, 가장 초라하게 무너져 내렸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자에게 주어진 형벌은 죽음보다 더 지독한 ‘정지’였고, 나는 그 침묵의 방 안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깊이 침전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