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가늠할 수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불행히도 나는 아빠를 너무나 많이 닮아 있었다. 아빠가 실패의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세상 밖으로 자신을 지워버렸듯, 나는 무기력의 늪 아래로 나를 침잠시켰다. 엄마와 동생은 또다시 가장의 역할을 하던 이의 감정적, 실제적 부재를 느껴야 했다. 아빠의 실종 때 겪었던 그 막막한 상실감이 나라는 존재를 통해 두 번째로 그들을 덮친 것이다. 아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사라지는 대신 침대 위에 화석처럼 누워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나는 가족들에게 살아있는 유령이나 다름없었다. 주변에서는 매일같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상담을 받아봐라", "이런 약이 좋다더라", "일단 밖으로 한 걸음만 나와봐라." 하지만 그 어떤 말도 내 귀 뒤로 넘어가지는 못했다. 모든 제안은 내 마음의 벽에 부딪혀 소리 없이 흩어졌다. 나는 타인의 언어를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조차 내어주지 못한 채, 오직 나만의 지독한 정적 속에 고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었다.
현실의 감각은 마비되었는데, 잠든 사이 마주하는 무의식의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살아 움직였다. 나는 정말 거짓말처럼 꿈속에서 자주 그 바닷가를 거닐었다. 내가 버렸던, 혹은 나를 붙잡고 있었던 그 검도록 푸른 바다가 꿈결마다 넘실거렸다. 그리고 또 다른 꿈에서는 예전처럼 이름 모를 아기들이 쉴 새 없이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오직 나에게만 전적으로 기대야만 하는 그 생명들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서 꿈속에서도 숨이 막혔다. "저리가!". 꿈속에서 조차 난 그 책임감이 싫었다. 세상은 나를 포기한 듯했고, 나 역시 나를 포기한 채 죽은 듯 누워 있었지만, 나의 꿈은 끈질기게 나를 따라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