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이제 내게는 그토록 갈망하던 것들이 주어졌다. 쫓기듯 눈을 뜨지 않아도 되는 한없는 시간, 그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무엇이든 결정할 수 있는 완벽한 선택의 자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다시 내게 묻는 듯했다. "자, 이제 네 마음대로 해봐. 어디로 갈래? 무얼 할래?" 그러나 내 대답은 여전히 침묵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에너지의 소모처럼 느껴졌고, 다시 어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18살 이후로 내 인생의 핸들을 너무 꽉 쥐고 살아온 탓일까. 이제는 핸들을 놓는 법은 알겠는데, 다시 돌리는 법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가장 좋은 것은 그저 멍하니 있는 것이었다.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혹은 방 안의 정적 속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그 '멍함'이야말로 내가 평생 처음으로 맛보는 진짜 자유였다. 누군가의 기둥이 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유능함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 텅 빈 진공 상태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무기력이라 부르겠지만, 내게 그것은 영혼의 안식이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나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내 삶을 채웠던 화려한 성취와 뼈아픈 이별들이 그 멍한 시간 속으로 서서히 녹아내렸다. 인생은 참 드라마틱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정적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강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선택하지 않을 권리를 마음껏 누리는 시간. 나는 그렇게 무한한 자유라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닻을 내린 채, 길고 긴 멍함의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