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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Dec 17. 2021

스타 이즈 본, 사랑하는 각자의 방식

사랑이 주는 폭발적인 환희, 슬픔, 비극과 메소드 연기의 시작

내면의 공허함을 가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세상을 선물해주고 여자는 그 사랑에 보답하듯이 스타가 된다. 그리고 모두가 외면한 남자를 끝까지 사랑한다. 스타 이즈 본이 말하는 사랑은 어쩌면 상대방의 인생을 이해하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어떤 경로에 있는지, 그 경로에서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이해한다면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고 그것이 곧 매력이 된다. 잭슨과 앨리는 서로에게 이런 매력을 발견한 건 아닐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도 이러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캐릭터의 인생, 아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 들에 매료되는 것 말이다. 그게 캐릭터로 연기하는 메소드 연기의 시작인 것 같다고 느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잭슨은 앨리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털어놓고, 앨리는 그런 잭슨을 감싼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채워주기 위해 노래를 만들고 그를 지지해준다. 잭슨 역시 앨리를 위해, 앨리의 인생에 도움이 되기 위해 기꺼이 슬픈 방식이지만 떠나 준다.     


음악과 영화 스토리의 조화도 좋았던 작품이다. 노래 가사가 결국 이들의 스토리가 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노래하면서 교감하는 모습,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 무대에서 나가는 앨리의 모습, 점점 치쳐가는 잭슨의 모습 이 모든 연기가 노래를 부르는 퍼포먼스에 담겨 있는 점도 좋았다. 원작과 비교하자면 잭슨은 조금 덜 위험해진(?) 느낌이고, 로맨틱한 면이 한 스푼 더 추가된 거 같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원작보다 앨리에게 덜 해로운 느낌, 덜 위험한 느낌이라 앨리를 위해 죽는 것, 자신의 삶에 대해 비관을 느끼며 삶을 마감하는 잭슨의 선택이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연기적 측면에서 보자면, 잭슨을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는 한마디로 "너무 멋있었다." (이렇게 마무리 짓고 감상문을 그만 쓰고 싶을 지경이다) 그가 가진 원초적인 매력,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모두 융합되어서 관객을 매료시킨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작은 역할을 하여도 심지어 이 영화에서처럼 상대방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여도 브래들리 쿠퍼의 존재감은 전혀 작아지지 않는데,  그게 그가 배우로서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셀 수 없는 그의 매력 중에서 가장 이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지점은 '눈빛'이라고 생각한다. 깊고 우수에 찬 눈빛, 사랑에 빠진 처연한 남자 잭슨 그 자체였다. 그는 잭슨이 되기 위해 필라델피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애리조나 하위 계급의 사투리 영어를 구사하고, 실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남부 출신의 아픔을 가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팝스타로 빙의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 느낌이다.     


연기 기술적 측면에서도 놀라운 지점이 많았다. 누군가의 부탁으로 노래를 할 때에 실제로 무슨 노래를 할지 정해져 있을 테지만 시선이 위로 올라가면서 그 순간에 진심으로 노래를 고르기 위해 고심한다. 연기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지점이 미리 예측해서 반응하는 척하는 것인데 그런 게 아니라 상황에 몰입하여 예측하지 않은 것처럼 아니 예측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말의 박자감, 행동의 정형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브래들리 쿠퍼는 많은 변주를 주는데 이게 더 일상과 가깝다고 느껴진다. 정해진 형태대로 준비해서 하는 느낌이 아니라 캐릭터 그 자체로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대사를 할 때에도 기침을 (지문에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도 하고 말도 안 되게 발음을 날리기도 한다.      


특히나 유년시절에 겪었던 힘겨운 기억들을 털어놓을 때면 그는 힘겨운 척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별일 아닌 것처럼 툭툭 내뱉고, 정말로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이야기하는데 그게 관객으로 하여금 더 울컥하게 만든다. 슬픔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놓는데 역설적이지만 이게 더 그를 슬프게 보이게 만들고, 잭슨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녀와 함께 마지막으로 시간을 보낼 때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도 인상 깊다. 침대 위에 누워서 그녀의 이야길 분명 듣고 있음에도 속으로는 '내가 그녀를 위해 이제 떠나 줘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마지막 선택을 상상하면서 울컥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고 그 순간에 그녀에게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침을 꼴깍꼴깍 삼키기도 한다. 이런 디테일들이 너무나 좋았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를 보면서 시선 처리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볼 수 있었는데 그의 시선처리는 현실의 모습을 잘 반영한 것 같다. 현실에서와 같이 상대방과 대화할 때 매 순간 상대방 눈에 집중하지 않는다. 디폴트 값은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이 아닌 반면 상대방에게 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을 때, 강조하고 싶을 때,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상대방을 뚫어져라 응시한다.


레이디 가가 역시 마찬가지여서 처음 만남에서 쑥스러움을 느끼고 상대방과의 벽이 거둬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선을 피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들을 때, 본인이 어떤 상황을 설명하면서 억울함을 토로할 때는 상대방을 또렷하게 응시한다.     



레이디 가가의 연기도 브래들리 쿠퍼와 마찬가지로 인상적이었다.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에 노미데이트된 이유를 알 것 같다. 행동 하나하나에 진심이 담긴 느낌이었다. 잭슨에게 처음 반했을 때 눈은 뜨겁게 그를 응시하지만 입은 살짝 벌어져 있다. 처음 잭슨의 공연장에서 노래를 부를 때 움츠러든 어깨가 그녀의 긴장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노래를 부르겠다고 결심하고 무대로 나서는 순간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당당히 걸어 나간다. 그녀의 몸짓에 그녀가 의도하는 상태가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특히 퍼포머라서 그런지 노래를 할 때 이러한 디테일한 상황, 의도, 상태, 감정들이 다 드러난 것 같다. 일상에 가까운 연기는 (특히 영화 연기)는 감정을 들키는 게 목표일 만큼 이것들을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면, 노래란 것은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깊은 감정들을 토해내는 측면이 있어서 이 영화에서도 앨리의 진짜 상태, 속마음, 감정 등이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잘 드러난 것 같다.


Shallow를 부를 땐 앨리의 긴장과 잭슨에 대한 설렘이 그와 노래를 부르는 거리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완전히 사랑에 빠졌음을 그녀가  Always remember us this way를 부르며 추억과 감정을 떠올리듯이 노래 부를 때 우린 알 수 있다. 이러한 지점들에서 레이디 가가 외의 대체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고 그녀 외에 누가 앨리를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잭슨의 형인 바비를 연기한 샘 앨리엇도 인상 깊었다. 특히 잭슨이 "내가 사실 닮고 싶었던 건 형이었다.:"라고 고백하였을 때 빨개진 눈으로 후진하는 그의 모습이 바비라는 캐릭터, 바비의 심정, 바비가 잭슨에게 느끼는 감정, 기억들을 전부 보여준다고 느낄 만큼 대단했다. 잭슨에게 느끼는 원망, 질투 유년시절 돌봐주지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 안쓰러움 잭슨의 진심을 통해 느껴진 고마움 등이 그의 빨개진 눈 외에 무엇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 상황에 정말로 몰입한 눈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잭슨과 앨리 중 누가 더 상대방을 사랑한 것인지 토론한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앨리를 위해 마지막 결단을 내린 잭슨이 그녀를 더 사랑한다고 대답했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앨리도 잭슨을 많이 사랑했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를 뿐.


앨리는 잭슨과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그리기 위해 자기 자신에게 에너지를 쏟은 것뿐이다. 누군가를 향한 열병 같은 마음만으로 사랑이 완성되지 않기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삶을 살아내고, 그를 보살폈다.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관리한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잭슨에 대한 관심을 결코 놓지 않았던 앨리.


심지어  앨리는 ‘Always remeber Us This way’ 부르며 굿바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작별이 힘들다는    없는 미래를 상상할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잭슨은 앨리를 떠나기로 결심하면서 그가 없는 앨리의 미래를 그렸을지 몰라도 앨리는 잭슨 없는 미래를 그리지 않았다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각자의 방식, 그 속에서 오는 절절함, 비극, 환희를 폭발적으로 그린 영화. ‘스타 이즈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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