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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Jun 13. 2022

여전히 유효하고 타당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

'이창동 전작전'과 그의 영화관(觀)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감독,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여지없이 이창동 감독님과 그의 영화를 꼽을 것이다. 영화가 무엇을 담아내야 하고 어떤 의미를 지녀야 하는가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그가 영화에 담아낸 깊은 고민과 질문을 매우 존경하고 사랑한다.


조선희 작가님과 이창동 감독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개최한 이창동 전작전은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행사였을 것이다. 특히 조선희 작가와 함께한 마스터 클래스는 전석이 매진되어서 이창동 감독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감독이 꽤 오랜 시간 영화를 만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2030인 점도 신기했다. 그가 영화를 통해 젊은 세대에게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감독의 최신작인 ‘심장소리’가 상영되었다. 유니세프 제안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30분 남짓의 단편영화로 코로나 시대의 우울을 주제로 한다. 단편영화로 플롯이 단순하지만 이창동 감독답게 현 시대상을 놓치지 않고 빼곡히 반영하고 있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하고 있는 아빠,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엄마, 가족의 슬픔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는 아이 그리고 냉담한 타인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지금을 보여주고 있다.


김건우 배우는 아직 어리지만 그의  연기는 매 순간 몰입감을 높여주었고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해내었다.


이번 영화도 그렇지만 확실히 이창동 감독의 시선은 낮은 곳에 머무는 듯하다. 그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보다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주목하고 있다.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초록물고기’부터 ‘버닝’까지 주인공들은 다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으며 '밀양'에서 중요한 테마인 양지의 빛은 락스 통과 낙엽이 뒹구는 하수구를 비추고 있다.


허름한 음지에 비밀스럽게 스며드는 빛, 밀양(Secret Sunshine)의 마지막 장면


감독이 말하길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왜 이렇게 더러운 곳을 좋아하냐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감독은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도 더럽다고 표현한 공간이 도처에 깔려 있다고 대답했다. 질문도 흥미로웠지만 대답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더러운 공간은 곧 감독이 주목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사는 공간이고 이 공간은 여전히 삭제되지 않은 채로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


외면하지 말아야  드라마들은 사실 이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낮은 곳을 바라보며  최상의 드라마를 끌고 나오는데 그가 하는 이야기의 백미는 ‘관계 다루는 깊이에서 나온다. 실제로 이창동 감독은 영화는  '관계' 다루는 매체이고 이것을 가장  드러낼  매체이기도 하다고 말하였다.  관계는 타인과  사이의 상호 관계 혹은 사회와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다.


대표작인 ‘밀양’을 통해 이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면 주인공 신애와 종찬의 관계는 곧 구원이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하찮은 사람이 신의 응답보다 빠르게 자신을 구해줄 수도 있다는 것이 이 둘의 관계가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라고 느꼈다. 신애와 살인범간의 관계도 용서와 구원의 개인적, 사회적 맥락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점에서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는 작지만 거시적이다. 한 개인에 집중하지만 이 개인은 우리가 처한 거대한 사회적 담론을 끌고 와 우리에게 질문한다. 감독은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그의 모든 영화들은 영화관 밖을 나서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안겨준다.


감독에 따르면 영화 ‘시’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었다고 한다. 예술을 하기 시작하면서 늘 고민하였던 주제로 무엇이 이 예술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게 하는가, 나 자신에게 의미를 주는가 하는 질문을 늘 안고 살았다고 한다.


더러움을 딛고 피어나는 아름다움, 그것을 담고자 하는 창작욕


문제작인(?) 영화 ‘버닝’의 경우에는 우리 사회가 가진 ‘분노’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왜 이유 없이 우리는 분노하는가, 우리의 세상은 어떠한 모호함을 가지고 있고 이것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탐구가 ‘버닝’에 담겨 있다고 말하였다.


감독이 직접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주제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또 다른 재미를 안겨주기도 한다. 영화 자체가 거대한 수수께끼라고 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기 된다. 출제자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뒤에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들이 나올 것이다.


실제로 마스터클래스 모더레이터로 참여한 조선희 작가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라고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보는 사람의 생각의 깊이도 달라지기 때문이지만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 이 시대에도 유효할 만큼 클래식하고 타당하다. 또한 그가 다루는 깊이 역시 남다르기 때문에 늘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유, 관계의 또 다른 차원과 의미 등을 발굴할 수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늘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의 말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창작물이라는 건 누군가의 지문이고
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치 판단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엔 이창동만이 할 수 있는 지문이 묻어 있고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식이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편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또 감독님의 영화를 볼 수 있길 고대하고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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