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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Jun 30. 2022

더럽히고 싶은 욕망, 파괴하고 싶은 욕망= 사랑.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을 보고(2022.06.29)

박찬욱 감독의 신작을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다. 칸에서 호평이 들려왔던 만큼 그의 오랜 팬으로서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보는 내내 역시 ‘배운 변태 박찬욱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레다 히로카즈의 브로커와 달리 기대에 부응하는 만족스러운 영화였고  여러 비유들과 미학적 구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N 관람이 필요한 영화라고 느껴졌다.




박해일이 연기한 장해준은 여태껏 본 적 없던 형사 캐릭터이다. 형사임에도 불구하고 정갈한 슈트를 입고 이상한 표현이지만 깔끔하게 뛰고 깔끔하게 일한다. 더러움과 거리가 멀다. 일도 섹스도 오염된 부분이 하나도 없는 느낌이다(박해일의 착장에서 왠지 모르게 박찬욱 감독의 평소 스타일이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이 깔끔한 남자가 점점 중국에서 온 송서래 때문에 더럽혀지는 건 이상한 쾌감을 준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망치고 싶은 것, 그것이야 말로 가장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


장해준(박해일)은 더러움을 자처해서 다루고 이를 깨끗하게 만드는데 능숙한 사람이다. 그의 직업이 형사인 것도 세상의 때를 깔끔하게 처리함으로써 얻는 쾌감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내(이정현)와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는데, 자처해서 생선 내장을 빼고 요리를 하고, 아내의 결점과 모자란 점도 나서서 모두 정리해준다. 장해준(박해일)은 이런 식의 청소로 존재의 이유를 찾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송서래(탕웨이)가 등장하면서 그의 청소 작업도 흔들리고 존재의 이유도 흔들리게 된다.


 박해일의 마스크, 그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연기 스타일을 고려할 때  탁월한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한다.


송서래는 박찬욱이 그리는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돌하고 솔직하게 그리고 계획적으로 상대방의 틈을 파고들어 무력화시킨다. 그 지점이 탕웨이의 연기력과 합쳐져서 정말 매력적이다. 왜 장해준이 속수무책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서사가 자연스럽게 부여된다고 할까?


송서래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노래 ‘안개’와 같은 여자이다. 뿌옇게 존재하지만 결코 걷어지지 않는 어떤 지속적 불편함, 송서래 역시 장해준에게 그런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그에게 영원히 ‘청소’되지 않는 미결의 사건이 되기 위해 의문형으로 남기 위한 모든 준비를 한다. 살해 피의자가 되기도 하고 땅 밑으로 꺼지기도 한다(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하겠다). 결코 발견될 수 없는 그의 발아래, 하지만 안개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버려진 차, 이 모든 게 깔끔한 장해준을 미치게 만들 것이다.


박찬욱 감독, 류성희 미술감독의 시그니처와 같은 독특한 배경이 돋보인다. 탕웨이 역시 탁월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정말 미친 사랑이다. 집착과 광기로만 표현되지 않는 어떤 집념의 사랑을 이 영화는 담고 있다. 탕웨이, 로맨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만추와 같은 결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헤어질 결심은 그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영화이다. 일상과 같은 리얼이 아니라 마법과도 같은 리얼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집념과 광기는 우리의 본성 깊숙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찬욱이 다루는 마법과도 같은 리얼에 빠져들 수 있다. 분명 우리안에 내제된 모습이기도 하니까. 다만 영화 속 인물과 같이 발현되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에게 송서래와 같은 마음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장해준을 위해 수영장 피를 마구잡이로 닦는 송서래의 미친듯한 몸짓과 모습에서 우리가 깊고도 신비로운 로맨틱함을 느끼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파도가 넘실 거리는 바다. 바다와 땅이 확연히 구분되는 시간에서 그 경계마저 흐려지는 시간으로 향해갈 때 망망대해에 놓인 두 인물의 처절한 욕망. 영원히 기억되기 위해 소멸하는 사람과 찾아서 마음의 찝찝함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해 기어이 그녀를 찾고 싶은 사람의 대립이 풍경을 통해 보인다.


수면 위와 아래는 중요한 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송서래는 장해준이 분명히 사랑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는데 장해준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우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는 글자 그대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를 걱정해서 무언가를 하고,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말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표면 위로 사랑이라는 말을 내뱉지 않아도 그 저변에는 사랑이 깔려있다.



사랑은 사실 표면보다는 저변에 위치하며 미묘한 은유에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걸 끄집어 올리는 사람은 송서래였고 그녀는 강박적일 정도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하면서 장해준에 대한 마음을 되새긴다. 하지만 장해준은 양심의 가책인지 무엇인지 계속해서 덮고 또 덮고 도통 꺼내어 놓지 못한다. 장해준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송서래와의 관계에서 도망갈 틈을 만들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의 저변을 깨닫지 못한 남자는 결국 수면 아래에 묻힌 여자를 수면 위로 꺼내 올릴 수 없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것이 장해준이 가진 한계이고 이 영화의 결말인 이렇게 흘러가는 이유이다.


영화 제목이 헤어질 결심인 이유도 의미심장하다고 느꼈다. 송서래는 딱 한번 장해준에게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 그것은 사랑의 파괴적 속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이다. 사랑하는 마음이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죽이기 위해 어떻게 보면 자멸에 가까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 특히 송서래가 장해준과 상반되는 위험하고 악독한 남자를 대체로 선택한 것은 더욱더 자멸에 가까운 행태이다.


송서래가 ‘마침내’(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이다) 장해준과 재회하였을 때 그녀는 완전한 헤어짐을  결심한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이 자멸하는 것이다. 그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멸망한다. 미해결, 찝찝함 이것들은 영원히 장해준을 괴롭히고 안개처럼 자욱이 그를 따라다닐 것이다.


연출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던 영화다. 일단 속도감이 이전 박찬욱 영화들보다 훨씬 더 빠른데, 불친절하리만큼 많은 서사가 생략된 채로 바로 넘어간다. 심지어 넘어가는 장면도 매우 신선하다. 인물이 겹친 채로 다음 서사로 넘어간다거나 어떤 행위를 모방하다가 그 행위가 겹치는 지점으로 다음 장면이 넘어가기도 한다. 같은 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이 마치 같은 곳에 있었던 것처럼 구성하는 연출이나 관객을 불안하게 만드는 구도로 인물을 촬영하는 등 여러 도전적인 시도들도 돋보인 영화였다.


트렌치코트, 말러 교향곡, 당돌하고 치밀한 여자,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의 상징이 이 영화에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박찬욱 감독만의 지문과도 같다고 느껴진다. 그의 영화에는 그만이 할 수 있는 시도, 이야기, 연출들이 있어서 항상 다채롭고 좋다. 늘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건 탁월하고 존경받을 만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박쥐에 이어 박찬욱이 그릴 수 있는 파괴적인 사랑 이야기가 ‘마침내’ 나온 것 같아 매우 반갑다. 이전의 영화들보다 폭력이나 섹스 장면의 묘사 면에서 훨씬 더 마일드해졌지만 그 깊이는 전과 다름없다고 느껴진다. 마침 개봉일이 생일이라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팬으로서 큰 생인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말러교향곡 5번을 들으면서 다시 한번 이 영화의 느낌을 불러오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여운도 깊고 흥미로운 영화였다. (모두들 영화관에서 꼭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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