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시현 Jul 29. 2022

헤친자 모여라!

N회차 관람 후기, 헤어질 결심 (feat. 달라진 생각)

세 번째 관람이다.  헤친자’의 대열에 합류한 것 같다. 마침 박해일 배우의 ‘한산’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헤결’대사 패러디가 유행하는데 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보는 것 같다. 그만큼 이 영화의 말맛과 대사의 특별함이 크다는 것이겠지?


세 번 보니깐 느낀 점, 숏이 보인다. 숏을 구성하는 미장센, 프레임 그리고 와이드한(시네마스코프인지는 모르겠는데) 화면, 각종 시점숏과 부감숏 등등.. 흔히들 촬영감독과 감독은 부부 사이와 같다고 하는데 왜인지 알겠다. 촬영 감독은 감독의 마음을 읽고, 감독의 시나리오 안에 담긴 최고의 숏을 찾아 관객에게 보여줘야 한다. 아주 감각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미적 감각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김지용 촬영감독이 이번 영화에 함께 했다고 한다. 안개라는 느낌을 물리적으로 혹은 감각적으로 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음은 물론이고 시점숏을 통해 훔쳐본다는 은밀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고 한다. 역시.. 영화는 모든 장면이 의도적이다(이 부분이 영화에 미치게 하는 수백 가지 이유 중 하나) 의미를 화면에 집약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이 기울어지는 작업이다. 촬영감독뿐만 아니라 미술감독, 음악감독도 그 한 장면을 위해 고심하고 고심하면서 선택의 순간을 겪였으리라 생각하면 영화는 그야말로 ‘예술’의 집약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보니 ‘서래’라는 인물도 더 자세히 보였다. 처음에는 어떤 미결의 사건으로 영원히 박해일의 가슴속에 남기 위해 마지막 선택을 결단했다고 보았는데 다시 보니 그 선택이 희생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계속해서 박해일의 자부심을 갉아먹고,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에 기꺼이 사라져 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동안 박 감독님이 만들어온 여성 캐릭터와 서래가 이런 점에서 다르다고 하는데(자기희생적 관점에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박 감독님의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돌이켜보면 사랑과 우정에 의리가 넘치는 타입인데, 서래 역시 그런 사람이라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결단을 했다고 본다. 


그런데 그 감정이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그 남자에게 영원한 미결이 되고 싶어 결단을 했다고 하면 이해가 가는데, 너무 사랑해서 지켜주고 싶어 결단을 내렸다는 건.. 좀 어색하다. 서래는 꽤 꿋꿋하게 살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생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생각되지 않았는데( 험한 배를 타고 한국까지 왔고 살기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던가?) 해준을 위해 그런 선택까지 했다는 건… 뭐랄까? 아직 내 이해력 밖이다. 어쩌면 서래가 말했듯이 ‘목숨을 걸만큼’ 그 남자를 사랑했는지도...,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녀에게 남은 게 이제 해준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해준이 더 이상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 수가 없다. 시마 초밥에서 핫도그로 바뀌어버린 그의 태도(마음이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에서 그녀가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상실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가족도 없고, 그들의 유골도 다 뿌렸고, 더 이상 질이 나쁜 사람을 만나 사랑할 힘도 없다. 그렇다면 마침내 그 순간이 와야만 하는 게 아닐까?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탕웨이 배우를 한국에 굴러들어 온 복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서 N회차 관람이 가능한 영화이다. 볼 때마다 느껴지는 생각도, 감각도 매우 다르다. 숨소리가 굉장히 에로틱하다고도 느꼈고, 이미 서래를 처음 보는 순간부터 해준의 동공이 흔들렸다고도 느꼈다. 그의 감각을 더욱 자극하기 위해 향수를 뿌리는 서래를 보고 그 향수 냄새가 문득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시마 초밥을 다 먹고 정확한 호흡으로 뒤처리를 하는 해준과 서래의 모습은 또 어떤가? 휴지가 시마 초밥 박스 안으로 정확히 들어가는 소리에 뜻 모를 쾌감도 느껴진다. 여러모로 감각을 깨우는 영화다. 의미도 의미이지만…


결국 각본집도 사버린 헤친자 1인. 글 자체로 곱씹어 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대사의 박자감, 리듬감, 단어의 어색하지만 정확한 선택 등… 소장하고 공부할만한 각본이라 배송을 기다린다..

작가의 이전글 더럽히고 싶은 욕망, 파괴하고 싶은 욕망= 사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