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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May 26. 2022

참신함이 마음껏 드러나고 수용되는 시대를 기다리며

5월 수요단편극장을 다녀오다


2021년 영화제 화제작을 모아볼 수 있는 ‘5월 수요단편극장’에 다녀왔다. 단편 영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연출, 스토리 그리고 연기자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단편 영화에서 장편 영화로 디벨롭되어 성공한 작품이 종종 있고 ( 대표적인 예로 ‘검은 사제들’) 단편 영화로 데뷔한 감독들이 이를 발판 삼아 커리어 발전을 이룬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포문을 연 작품은 박선용 감독의 ‘끝내주는 절벽’이었다. 굉장히 독특하고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 작품이다. 자살을 돕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 있고 여기에 방문하여 자살을 하는 사람들, 이를 취재하는 사람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영화이지만 희곡적인 작품이다. 무대 위처럼 많은 배경들이 삭제되어 있고, 배우들인 실존하지 않는 공간을 실존하는 것처럼 대하면서 연기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취재원이 사진을 찍으면 비로소 이 거세된 배경들이 드러나면서 실제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시도는 연극적이면서도 동시에 영화적이다. 시각적 표현으로 많은 함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화나 자세한 배경 설명, 세트 등으로 구구절절하게 많은 것을 드러내지 않지만 응축된 화면 하나로 많은 것을 설명한다. 이것은 다른 매체가 할 수 없는 영화 매체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조명을 통해 공간의 시간성,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에는 나름의 반전도 있다.  반전이  영화를  독특하게 만든다.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보고 실험한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것이 얼마나 내용과 호응하는지는  살펴볼 문제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영화를 발전시키고 풍성하게  나가는 작업은 여러모로 유익하다고 믿는다.


두 번째 작품은 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은 작품이자 나도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양재준 감독의 ‘보속’이다. 보속은 고해성사 이후에 죄를 사하기 위해 받는 일종의 숙제인데, 세 작품 중에서 가장 난이도 높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죄에 대한 개인적 고민을 풀어내는 작품이었으며 죄를 무화시킬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고 한다. 영화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 사이에서 관계 맺음을 통해 서서히 죄가 쌓여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보속'은 흑백영화로 당시 양재준 감독이  라이트하우스라는 영화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은 각 캐릭터 고유의 양면성도 있었지만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서도 양면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각 캐릭터가 일관적이지 않으므로 영화를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데 이런 복합적인 측면이 오히려 리얼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복합성을 드러냈다는 자체가 새로운 시도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보통 창작자는 자신의 주인공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는 측면이 있어서 그 사람이 가진 결점을 적게 드러내거나 극복하는 서사로 흘러가게 만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어떤 측면에서 주인공이 이해가지 않고 짜증 나는 인물로 그리기도 한다. 그래서 과연 이 주인공을 관객이 미워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사랑하게 만들고 싶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마침 질문이 채택되어 감독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감독의 말에 따르면 미워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연출자로서 이 부분이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선의의 행동이 악을 행한 것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밀하게 계산하여 어떤 점에서는 주인공이 밉게, 어떤 점에서는 불쌍하게 보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의 많은 고민이 묻어난 답이었다. 영화가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주제의식이나 흑백의 연출 등을 생각해보면 한번 더 봐야 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작품은 이상민 감독의 ‘돌림총’으로 의장대에서 돌림총을 돌리다가 부상을 입은 현규가 다시 돌림총 마스터가 되어 의장대에 서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플롯이 단순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편안한 작품이었다. 기본적인 스토리 작법(주인공의 도전, 성공에 대한 희망, 좌절, 이를 극복하는 의지 그리고 성공 등)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낯선 느낌이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익숙한 서사이기도 하고 돌림총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소개할 뿐만 아니라 총을 돌리는 볼거리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총이 허공에서 날아와 현규의 손에 닿기까지의 긴장감이 생각보다 엄청나다.


배우들의 연기도 가장 돋보인 작품이었다. 현규 역할의 엄준기 배우, 그와 대립하는 진우 역할의 김상흔 배우의 연기가 특히 인상 깊었다. 보통 영화를 보고 배우가 각인되면 연기를 훌륭히 수행한 것이라고 감히 믿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그런 느낌이 들어서 배우들의 필모를 찾아보기도 했다. 앞으로의 이들이 만들어갈 작품도 매우 기대 된다.


밤늦게 영화를 보고 돌아왔지만 다음날인 오늘까지도 영화에 대한 잔상이 계속 남아있다. 마침 아침 뉴스에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 칸에서 최고의 평점을 받았다는 소식이 적혀있다. 박찬욱 감독의 뒤에도 많은 감독들이 대기하고 있고 그들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매우 고무적이었고 나 역시 자극을 받았다. 진부한 말이지만 한국 영화의 미래가 꽤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더 다양하고 더 새로운 시도가 과감히 인정받고 관객들 역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영화의 시대가 오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그 시대로 향해 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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