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믿음보다 의심을 선택한거죠.

영영 궁금해 하지 않겠습니다.

by 이시현

당신을 대접하기 위해 샀던 탁자는 글을 쓰는 책상으로 탈바꿈되었고

당신을 위해 샀던 집기류는 온전히 제 것이 되어 맛있는 요리를 담아 먹고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는 동안 온통 세상은 당신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당신과의 마지막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세상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이별은 몇 번을 거듭해도 참 익숙해지지 않네요.

하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슬퍼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는 걸 여러모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애써 슬프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슬프지 않냐고 묻지만 저는 그냥 웃어요.

의미가 없잖아요. 달라질 게 없으니까. 울고 싶지 않아요.

어찌 보면 이런 내가 냉정한가요?


당신을 잃는 게 두려웠을 때 매일을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아쉬워할지 마음이 아플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온전한 제 삶이 저에게 비로소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오롯이 돌아오고 있어요.

당신에게 초점 맞추어져 있던 인생은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제 자신의 요구보다 당신의 요구를 앞서서 생각했습니다.

그 불안하고 허덕이는 마음을 가늠한 적이 있나요?

당신에겐 작은 투정 같았겠지만 나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30대가 되고 연애를 쉰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매번 상처를 빨리 잊기 위해,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지나치게 빨리 타인을 만났어요.

당신도 그랬습니다. 지난날의 연애가 실패 같아서 하루빨리 그걸 덮고 싶었어요.

제 상처가 오롯이 제 몫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싶어서

정말 혼자가 되기 싫어서 당신에게 의지했던 거예요.

하지만 제 상처는 오직 제 몫이었다는 걸, 여러 번 거듭하고 나서야 마침내 알게 되었네요.


당신은 이게 사랑인지 모르겠다고 했죠?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사랑이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었어요.

한동안은 사랑을 모르는 당신이 무척이나 야속하기도 했죠.


그런데.. 저도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사랑을 몰랐던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외롭고 싶지 않아서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게 사랑인가요? 다시 당신에게 되묻고 싶어요.

다시 되물을 수가 없어서 수없이 제 자신에게 묻지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잃고 싶지 않은 집착이 사랑일 순 없는 거잖아요.


이게 사랑이라고 당신 앞에서 단언한 건 대단한 착각 같다고 느껴져요.

당신 말처럼 단언할 순 없는 건데...

모르겠어요. 근데 한참 시간 이 흐른 후에 이게 사랑이라고 깨달을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사랑이라면 이토록 어려울 필요가 있나요?


안타깝지만 당신은 어려운 길 대신 쉬운 길을 선택했고

믿음보다는 의심을 선택해서 쉽게 관계를 쉽게 놔버린 거죠.

우리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도 있었을텐데

당신은 너무나도 쉽게 모든 기회를 버렸네요.

당신에게 사랑은 싸워서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짧은 낭만적 감정에 불과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지막, 이별이라는 단어가 제 마음속을 후벼 파요.

그치만 서서히 적응하면서 나아지고 있어요.

서서히 깨닫고 있거든요. 이 마음의 정체에 대해서..

어쩌면 내가 이걸 사랑으로 당신에게 강요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미안하다고 수없이 말했으니깐 그 말은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이기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내 상처를, 불안한 마음을 온전히 당신이 받아주고 감당하길 원했으니까요.


이제는 누구일지도 모를 다음 차례를 위해서 이 굴레를끊어볼 작정이에요.

얼마 남지 않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면서

당신과 만나면서 못했던 많은 일들을 해보려고요.


당신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면서 말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저는 많은 것을 알면서도 안다고 할 수 없어 모른척했죠.

하지만 제 가슴속엔 타오르는 불꽃이 있었고 이 불씨는 호기심을 자양분 삼아 줄어들지 않고 늘 타고 있었어요.

당신도 그 불꽃을 느꼈나요?

이 불꽃 때문에 당신과의 관계를 나 역시 진전시킬 수 없었어요.

여전히 세상에 궁금한 것도 알고 싶은 부분도 경험할 세상의 크기도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신과의 미래를 그리며 설레어야 하는데 저는 이 불꽃을 애써 줄여가면서 당신과 만났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과의 미래가 설레지 않았어요.

행복할 자신이 없었죠.

우리가 그렸던 미래는 한방향이 아니라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당신도 느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타올라야 할 불빛을 몸이 아파가면서까지 손으로 누르고 있었어요.

쉽게 이 관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지키고 싶었어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당신을 만나고 성장하길 멈추었어요.

좋아하던 책도 손에 잡을 수가 없었고 글도 완전히 멈췄죠.

그랬으면 안 되는데 그러고 말았어요.

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없어서 도무지 명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었어요.


당신과 만날 땐 많은 부분이 솔직하지 못했는데 이제야솔직해지고 있네요.

우리는 조금씩 솔직해질 즈음 결국 놓아버린거네요.

많이 아쉬워요. 정말 우리의 노력은 여기까지가 한계인걸까? 당신은 정말 그런가요? 제가 몇 번을 되물었잖아요.

제가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었을 때 당신은 문을 닫고 나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아파요.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급하게 만들었나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제 자신을 숨기면서 살지 않을 거예요.

비겁하고 나답지 못했어요.

다른 게 아니라 그게 후회가 남더라고요.

내가 비겁한 선택을 한 것, 나 자신을 외면한 것.

사실 당신이 기억하는 내 모습과 원래 내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어요.

이젠 누구든 당당하게 다가갈 거예요.

쉽게 타협하지 않을 거예요.

나라는 사람의 진가를

내가 믿는 진실을, 내가 꿈꾸는 사랑과 행동양식을요.

그게 당신이 제게 준 교훈이죠.

돌이켜보면 아주 값비싼 레슨이었어요.


사랑이 고통이 될 때 몸이 아플 때 그만했어야 했는데 머리가 오히려 이 관계를 끊지 못하게 했죠.

막상 당신을 만나면 마음이 약해지곤 했어요.

당신은 날 보면서 어쩜 그렇게 강하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는지 여전히 야속해요.


모르겠어요. 산다는 게 뭔지.

어떤 일이 일어나서 우리가 이 지구에서 다시 마주할지모르겠지만

저는 무엇이 되었건 이제 이 불꽃을 제 힘으로 살려볼 요량이에요.

오직 내 인생의 구원은 나만이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당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으려고요.

그날 이후로 결심했어요. 결심은 늘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제 결심은 다행히도 여태껏 크게 흔들리는 법이 없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 잘 모르겠어요.

지나간 인연이 무엇을 하건, 누굴 만나건 제 마음이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겠죠.

시간이란 게 그렇죠. 잔인해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내가, 그리고 당신이 서로를 완전히 사랑하지 않는 시간이 오겠죠.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은 그렇게 남아 있는채로 사라지겠죠.


그래서 당신을 영영 궁금해하지 않을 요량입니다.

사실 결심하지 않아도, 요 며칠 사이 궁금하지 않았어요.

애써 감정을 누르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알고 싶지도 알게 되고 싶지도 않아요.


대신 오롯이 당신 것이었던 내 시간을 이제 놓아주고 다시 되찾으려 합니다.


비록 당신을 떠나보내지만

내가 이 무대에서 우리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애썼던 땀들과 무수한 노력들

벽에 부딪혔지만 용감하기 싸웠고 끊임없이 도전했던

담대한 용기와 순수함을 제 가슴에 남기려합니다.

그것은 언제가 이뤄낼 위대한 성취가 될 수도 있겠죠.

무엇보다 담대히 도전한 자신을 잊지 않고 영원한 자부심으로 새기려 합니다.


당신에게 말한대로

난 당신을 있는 힘껏 사랑했고

그 마음을 후회하지도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속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언젠가 당신도 깨달으리라 믿어요.

이런 노력과 사랑은 인생에서 몇번 받기 힘든 소중한 마음이거든요.

당신에게 이러한 경험을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처럼 줄 수 있어서 그래도 행복했어요.

제 마음은 부서지고 불안하고 아팠지만

당신과 같이 이 파도를 헤쳐나가고 싶었답니다.


사랑은 희생이라고 했죠?

무수한 시간 당신은 언제나 나를 위해

당신의 시간을 쉽게 희생한 적이 없었죠.

당신이 내뱉았던 많은 약속 중에 실제로 지킨 것이 이있었던가요?

저는 온 시간을 바쳐 당신의 연락을 기다리며

언젠가 입 밖으로 꺼낸 약속이 지켜지길 기도하며

나의 시간을 기꺼이 포기하곤 했었어요.

희생은 늘 저의 단어였죠.

저는 늘 당신을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고 기다렸어요.

미련하게도 당신이 돌아오리라 믿었죠.

내색은 얕은 투정으로 감추고 아픈 마음을 꾹꾹 눌렀어요.

그런데 당신은 야속하게도 마지막까지 참 이기적이었어요.

그걸 알면서도 나는 당신이 가진 단점도, 삶의 무게도 상처도 전부 내 품으로 꼭 안아주고 싶었어요.

내 몸이 당신이 가진 가시 때문에 으스러지더라도 기꺼이 안고 인생을 나아가고 싶었어요.

전 당신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은 저에게 어떤 최선을 보여줬나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제 저만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저는 그 대답을 슬프게도 알아요.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이 결론이 틀린거 같진 않아요. 저만 너무 필요 이상으로 아프잖아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여기서 멈춰있잖아요.


이 상처는 다시 꽁꽁 묻어두고

아물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서

덧나지 않을 때쯤 앞으로 나아갈거에요.

이제 제 자신보다 소중한 것은 없어요.



마지막으로 말해줄게요.

사랑은 노력이에요.

사랑은 지키고자 하는 의지에요.

한낱 감정의 변화 때문에 흔들리는 걸

사랑이라고 믿고 있다면

애석하게도 한계는 늘 더 자주 그리고 빨리 올거예요.

자신이 믿는 만큼 이룰 수 있는 법이니까요.

사랑을 딱 거기까지라고만 믿는다면 딱 거기까지만 이룰수 있을 거예요.


Adieu.

우리의 사랑이 이렇게 끝났다고 해서

내 사랑이 실패한건 아니니까.


아버지가 해준 말이 떠올라요.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내 인생에서 비켜준 거라고

기꺼이 물러나준 거라고..

언젠가 그런 당신을 저는 고마워하면서 추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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