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치원 Mar 08. 2024

우리는 더 이상 스토리보드를 작성하지 않습니다.

AI가 바꾼/바꿀 기획자와 PM의 일상

최근 IT 현장에서 접하는 AI에 대한 담론은 서로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일부는 꽤 장기적인 전망을 다루는(강인공지능이 나오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 반면, 다른 일부는 표층적입니다(예: 프롬프팅은 어떻게 하나?).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후자의 소식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지만, 이러한 정보를 지속해서 접하고 변화를 체감하는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2년이든, 중장기적으로 5년이나 10년 후든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어떤 변화가 올지 계속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Dr. Know" 박사야말로 지금의 생성AI와 참 닮았습니다. 출처 : A.I. (2001)


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서비스 기획자입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저는 유저 스토리나 PRD(Product Requirements Document)를 작성하고, 개발자나 디자이너와 소통하며 제품을 만듭니다. 프로덕트 오너로서도 업무를 수행해 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백로그 관리죠. 대게 한국에서는 업무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Figma를 사용하여 저밀도 와이어프레임을 시각화하고, 디스크립션을 추가합니다. 때로는 프로토타이핑까지 진행하죠. 즉, 제 업무는 제품 발견 과정(Product Discovery)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포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 1년 사이에 제 업무는 많은 부분에서 변했습니다. 발견 단계에서 도출하는 산출물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산출물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비스의 전체 기획서를 벡터 데이터베이스로 변환하고, 이를 RAG 기술을 활용해서 챗봇에 통합시켰습니다. 챗봇은 서비스의 전반적인 명세를 파악하고 있죠. 그리고 우리는 각 문서 생성에 최적화된 챗봇 페르소나를 생성했습니다. 챗봇에게 과업에 대한 약간의 정보만 제공하면, 서비스를 이해한 상태에서 산출물이 지켜야 하는 양식을 철저히 고수한 문서를 생성합니다. 가령 기능명세서를 Wireframe 챗봇에 입력하면, 서비스의 레이아웃을 숙지하고 기능명세를 바탕으로 한 저밀도 Wireframe을 작성합니다. 기획자는 더 이상 화면을 그리지도, 상세한 디스크립션을 작성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문서를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문서의 필요성이나 중요도에 대해서 우리가 단정지었던 많은 결정들을 재고해 봐야 합니다. 더 이상 문서 작성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자일 방법론에서 문서 작성을 경계했던 이유 중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이제 풍부한 문서는 장점이자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문서가 풍부해질수록 AI는 더욱 영리해지기 때문입니다. 구현(서비스)과 문서 사이의 괴리로 인해 문서를 계속해서 최신화해야 하는 스트레스도 사라집니다. 자연어로 수정 요청을 하거나 이미 구현된 코드를 제공하기만 해도 문서가 최신화됩니다. 문서가 그리는 설계도와 구현된 서비스가 일치하고 상응하게끔 유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출처 : Richard Ngo @RichardMCNgo


최근 Gemini 1.0 Ultra와 Claude 3가 출시되었습니다. 이제 GPT-4가 만들었던 기술적 해자가 점점 좁혀지는 것 같습니다. OpenAI가 배후에서 어떤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점은 앞으로 생성 AI가 더 많은 컨텍스트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AI가 기획서 전체를 관리하고 응답할 수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올 AI는 코드베이스 전체를 관리하고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설계하고, 코딩하고, 디버깅하고, 배포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는 마치 생태계를 만들고 관찰하는 게임을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제 조만간 우리는 그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OpenAI에서 AI 거버넌스를 연구하는 Richard Ngo와 몇몇 학자들은 이러한 서비스가 2025년 말까지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치 인간처럼, AI가 자신이 신경망임을 이해하는 메타인지가 가능할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먼 미래가 아닙니다. 1년, 2년 남짓 남은 미래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인간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논의는 여전히 현실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AI의 자율성과 책임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여기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간에 AI가 인간을 대체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기간에 우리는 철도 기관사가 될 것입니다. AI의 발전과 자율성은 피할 수 없는 미래고, 우리는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단지 관찰하고 따라가야만 합니다. 프롬프팅 엔지니어링을 배우는 것과 같은 노력마저도 AI가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가치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AI의 행동과 결과에 책임을 질 사람은 필요합니다. 네, 우리는 조만간 철도 기관사가 될 것입니다. 온/오프 스위치를 누르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것입니다.


출처 : DALL-E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