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갈에 이런 말이 있다. "브라가에서 기도하고, 코임브라에서 공부하고, 리스본에서 일하라." 일찌감치 고백한다. 나하고 공부 사이는 꽤 거리가 있다. "코임브라에는 여행 가는 건데 웬 공부" 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려다 딱 하룻밤만 머물기로 했다.
피오당(Piodao)에서 꾸물댄 탓에 오후가 반 토막 나고서야 코임브라(Coimbra)에 도착했다. 호텔이 마침 대학 주변이었다. 상업지역을 지나 구 시가지로 차를 몰았다. 우중충한 여느 도시와 달리 젊은이가 눈에 많이 띄었다. 미국 보스턴, 영국 에든버러, 독일 하이델베르그가 떠올랐다. 건물은 중세인데 거리는 말간 청춘들로 가득한 도시. 사람만 보면 홍대 앞이다. 코임브라. 슬며시 기대가 들었다.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코임브라는 포르투갈 중부 몬데구 강(Rio Mondego)을 끼고 있다. 리스본에서 E1 도로를 타면 2시간 거리다. 인구 40만 명. 1139년 엔리케 왕이 무어인을 쫓아내고 포르투갈을 세운 후 1260년까지 수도로 번성했다. 도시의 역사는 그 전부터 시작했다. 이미 BC 2세기에 케이사르의 원정으로 로마제국의 속주였다. 그때는 ‘아에미니움'(Aeminium)이라 불렀다. 로마가 멸망하자 무어인이 이곳을 차지했다. 878년에 레온 왕국의 알폰소 3세가 이를 되찾았다. 이때 남서쪽 코님브리가(Conimbriga)에 있던 주교가 앉는 의자, 즉 주교좌를 이곳으로 옮겨오며 이름도 같이 데려왔다. '코임브라'는 '언덕을 지킨다'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도시는 몬데구 강 요충지다. 이슬람교도와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9세기 말부터 1139년 까지 치렀다.
"코임브라에서 할 거 두 가지만 알려줘요."
"먼저 코임브라대학을 쭈욱 돌아보세요. 그리고 저녁에는 파두 공연을 봐야죠."
호텔 이븐-아리크(Hotel Ibn-Arrik)에 체크인을 하면서 물었다. 잘생긴 매니저 파울로(Paulo)의 답이 기다렸다는 듯이 돌아왔다. "코임브라대학이 포르투갈에서 제일 오래된 건 알죠? 꼭 봐야 할 게 조아니나 도서관(Biblioteca Joanina) 이에요. 18세기에 지은 가장 화려한 바로크식 도서관이죠.”
포르투갈 최초의 대학이 처음부터 이곳 코임브라에 있었던 건 아니다. 원래는 1290년 디니스(Dinis) 왕이 리스본에 세웠다. 1308년에 코임브라로 옮겼다가 다시 리스본으로 이전했다. 1537년 주앙 3세가 언덕 위에 있던 궁전을 대학건물로 바꾸면서 코임브라대학을 이곳에 영영 주저앉혔다. 그는 '대항해 시대'로 불리는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열었던 왕이다. 이후 코임브라대학은 국민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 1949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를 키워냈다.
조아니나 도서관은 1728년 주앙 5세가 건립했다. 구 대학 구내를 들어가기 위해 9유로짜리 입장권을 사서 ‘철의 문'(Porta Frrea)을 통과했다. 조아니나 도서관은 훼손을 막기 위해 20분 간격으로 한 번에 스무명씩 들여보낸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사람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식민지 브라질에서 가져온 금과 대리석, 정교한 프레스코 천장화로 꾸며놓은 화려함 때문이었다. 테이블 위에는 주앙 5세가 책을 읽다가 하인을 부를 때 썼다는 황금종도 그대로 있었다. 법학, 철학, 신학분야 라틴어 고서가 3만 권이나 된다고 했다.
도서관은 장엄홀(noble floor), 사이층(intermediate floor), 학술감옥(academic prison)이란 세 공간으로 나뉜다. “고서를 보호하기 위해 벽 두께를 2.2m로 만들어 온도와 습도를 까다롭게 조절합니다. 외부인의 출입과 사진 촬영도 제한하고요. 단 박쥐는 자유롭게 도서관을 날아다닐 수 있죠.” 귀를 의심했다. 진짜 도서관에 박쥐가 있느냐고 물었다. 낮에는 서가와 벽 틈에 숨어 자다가 밤이면 내부를 날아다닌다고 했다. 박쥐가 고서를 갉아 먹는 책벌레를 잡아 먹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도서관이 뭐 별거려나 했는데 호텔 매니저 파울로 말을 듣길 잘했다 싶었다. 도서관에 흥미를 느끼다니. 나하고 공부 사이의 거리가 한 뼘 좁혀졌다.
밖으로 나왔다. 검은 망토를 입은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는 대학이 신입생을 막 받아들인 때라 학과별로 단합을 구실삼아 거리공연에 나선다고 했다. 이삼십 명이 늘어서 가벼운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서넛은 기타를 치고, 한두 명은 깃발을 휘두르며 흥을 돋운다. 몸을 움직여 망토가 날리면 박쥐 같아 보였다. 도서관에 산다는 박쥐가 학생들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포르투갈 대학에는 대대로 이어온 교복 전통이 남아 있다. 남학생은 검은 재킷에 바지, 여학생은 흰 셔츠에 검정 스커트를 입는다. 여기에 검은 망토를 두른다. 낮에는 둘둘 말아 왼쪽 어깨에 걸치다가 저녁이 되면 양 어깨에 펼쳐 두른다. 왼쪽에 두는 이유는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신입생은 망토가 없다. 2학년이 되어야 망토를 두를 자격이 생긴다. 여학생들은 화장도 하지 않고, 머리핀도 두 개까지만 꼽을 수 있다. 구두며 넥타이, 옷에 붙은 상표는 다 떼어내야 한다.
누가 언제부터 무슨 이유로 망토를 두르기 시작했는지는 알려지지 않는다. 그저 전통이라했다. 실제 이름은 망토라 하지 않고 '트라제'라고 부른다. 그들을 보면 마치 중세 어느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조앤 롤링이 포르투갈 대학 망토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 학교 의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파두센터(Fado Ao Centro)에 도착했다. 5시 55분. 맨 앞에 줄 선 사람에게 물었더니 자기는 입장을 기다린다며 공연 티켓은 안에 가서 물어보란다. 검은 스커트를 입은 직원이 여섯 시 표는 이미 다 팔렸고, 일곱 시 표를 사서 이십 분 전까지 오면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고 했다. 삼십 명 정도가 앉는 작은 공연장이었다. 파울로가 다운타운의 클럽에서 하는 무료공연, 코임브라 파두협회에서 운영하는 이곳 파두센터, 저녁을 먹으며 보는 레스토랑공연 해서 총 세 곳을 추천해 줬다. 파두센터는 매일 저녁 6시, 7시 두 차례 50분간 공연한다. 입장료는 10유로. 인터넷으로 미리 표를 사두는 게 좋다.(www.fadoaocentro.com) 조아니나 도서관과는 천천히 걸어 7-8분, 거리는 4백 미터쯤 떨어져 있다.
코임브라 파두는 리스본 파두와는 사뭇 달랐다. 전체를 4부로 나눠 공연하는데 중간 중간에 스태프란 이름표를 단 직원이 설명을 해준다. “리스보아 파두가 애환을 부른다면, 코임브라 파두는 기쁨을 노래합니다. 코임브라 파두는 남자들만 부를 수 있어요. 코임브라 대학생이 마음에 둔 여학생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 기숙사 창문 아래서 부르던 세레나데가 시작이었어요. 지금도 코임브라 학생들은 보컬 한 명, 기타 두 명 이렇게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사랑 노래를 부릅니다. 파두를 들은 여학생이 침실 불을 세 번 깜빡이면 승낙한다는 표시가 되죠.” 사랑을 고백하는 세레나데 형식의 파두가 끝나자 공연장의 불이 세 번 꺼졌다 켜졌다 했다. 그 위트에 환호와 박수가 저절로 터졌다.
코임브라 파두의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리스본에서 왔다. 브라질 유학생이 불렀다. 아니다. 중세 시대부터 불렀다 등등. 의견이 분분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기원이야 어떻든 '파두 다 코임브라'라고 불리며 독창적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코임브라대학이 처음으로 파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정리한 공도 컸다. 그 때문에 재학생이나 졸업생, 교수들이 주로 파두를 불렀다. 꼭 음악이나 예술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코임브라대학 학생이라면 누구나 파두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된다고 했다.
오늘 공연은 기타리스트 두 명, 가수 두 명이 번갈아 또는 합창으로 파두를 불렀다. 이들은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코임브라의 노래>, 살라자르 독재 시절 젊은 학생들이 부르던 <저항의 노래>,1957년 의과대학 졸업생들이 학위를 받으며 불렀던 <이별의 코임브라>를 들려줬다. 현란한 파두 기타와 클래식 기타를 반주로 망토를 두른 건장한 남자들이 묵직한 성대를 눌러 짜내는 노래는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더구나 네 다섯 발자국 앞에서 불러대니 공기층을 뚧고 훅 들이닥치는 그들의 거친 육성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아내는 리스본 골목길에서 들은 여인의 파두를 최고로 쳤지만 나는 덩치 큰 남자들이 부르는 이곳 코임브라 파두에 훨씬 더 매료됐다.
공연이 끝났다. 무대 뒤편에서 포트와인과 비스켓을 들며 파두 가수들과 잠깐 얘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둘 중 젊은 가수, 페드로(Pedro)에게 전공이 뭐냐고 물으니 '컴퓨터 엔지니어링' 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파두는 취미냐 아니면 전문 가수가 될 거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페드로는 잠깐 머뭇대더니 컴퓨터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며, 파두는 평생 함께 할 삶의 일부라며 멋적게 웃었다. 코임브라 젊은이의 생각에 내심 놀랐다. 파두를 대하는 태도는 진지하면서도 시장논리나 이해타산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움을 지키려는 자세. 그의 순수한 프로패셔널 아마추어리즘이 빛나는 저녁이었다.
불이 꺼졌다. 아쉬운 작별에 나는 아내가 내려놓은 와인까지 거푸 두 잔을 들이켰다. 알코올 함량이 20도나 되어 금방 입 안이 얼얼해졌다. 그 저녁 파두에 축축해진 내 가슴을 혹시나 데워줄까 해서였다.
어두워진 골목을 걸어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나는 코임브라에서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더니.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