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와 바르셀루스의 "꼬끼오"

포르투갈

by 서해



카미노는 '길'이다. 따라서 '카미노 포르투기스'(Camino Portuguese)는 '포르투갈 길'이란 뜻이 된다.

818년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 지역에 테오데미르 주교가 살았다. 어느날 밤, 그는 목동의 귀띔을 받고 유난히 밝은 별빛을 쫓아 성인 야고보의 무덤을 찾는다. 이곳은 나중에 '야고보가 있는 별의 들판'이란 뜻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Santiago de Compostella)'라는 이름을 얻는다.

산티아고는 야고보(St. James)를 스페인 식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야고보는 44년 예루살렘에서 열 두 제자 중 가장 먼저 처형됐다. 그의 머리는 예루살렘에서 수습됐고, 몸은 따로 배에 실린 채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파드론(Padron)까지 떠내려왔다. 젊은 시절 야고보가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던 곳이다. 야고보의 시신은 동네사람들에 의해 바닷가에서 20km 떨어진 곳에 묻혔다.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후 그의 무덤은 목동과 주교에 의해 발견됐다. 무덤 위에 지은 교회가 바로 산티아고 성당이다. 표류해 온 배의 밧줄을 묶어 두었던 기둥을 뜻하는 '오페드론'이 마을 이름 '파드론'이 됐다. 배를 묶은 기둥은 산티아고 성당에 모셔졌다. 곧 산티아고는 중요한 성지가 됐다.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순례자가 야고보의 무덤 위에 세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성당으로 모여들었다.



왼쪽 초록색 땅을 올라가는 게 포르투갈 길이다. Oporto부터 '포르투길'이라 부른다


순례길 하면 가장 많이 알려진 게 피레네 산맥의 프랑스 국경도시 생장 피드 포르(Saint-Jean-Pied-de-Port)에서 스페인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 프랑스 길이다. 포르투갈에서 가는 길도 여럿 있다. 포르투갈의 북쪽 도시 포르투(Porto)에서 산티아고까지 240km 길도 그 중 하나다. 이를 '포르투 길'이라 부른다.

나는 이곳을 가보기로 했다. 지난 열흘 동안 아내와 나는 리스본에서 자동차를 타고 느릿느릿 운전하여 포르투까지 올라왔다. 내일은 렌터카를 돌려줄 생각이다. 포르투는 작은 도시라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다니면 된다. 이미 도우루강 건너 Taylor 와이너리는 차로 다녀왔다. 포르투공항까지는 우버택시로 12유로면 되니 주차료 물어가며 일부러 차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전에 할 일은 없을까. 포르투에 머무는 중 하루 짬을 내 순례길이 거쳐 가는 북쪽 작은 도시, 바르셀루스를 찾았다. 뭐 꼭 순례길을 걸을 생각은 아니었다.



참수된 야고보가 표류하던 배에서 발견되었을 때 노란 조가비가 더덕더덕 붙어 시신을 보호했다. 그 후 조가비는 순례자와 순례길을 상징하게 됐다.


포르투 주변에 가볼 만 한 도시로는 바르셀루스, 브라가, 기마랑이스가 있다. 셋 다 포르투보다 북쪽에 있으며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챗살처럼 흩어져 있다. 세 도시는 모두 포르투갈 역사, 종교와 관련이 깊다.

기마랑이스(Guimaraes)는 포르투갈을 세운 초대 국왕 아폰수 엔리코의 탄생지다. 브라가(Braga)는 산 전체가 성당인 '봉 제수스 두몬테'(Bom JesuS Do Monte산 위의 예수)가 유명하다. 도시에 성당이 70개가 넘어 별명이 '기도하는 도시'다. 바르셀루스는 이 셋 중에서 가장 작고 소박하다. 포르투에서 60km, 차로 50분 거리. 마을 곳곳에서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가비를 배낭에 매단 여행자를 만날 수 있다.



바르셀루스 거리를 걸으면 5분마다 닭의 동상과 마주친다


포르투갈의 상징은 닭이다. 리스본은 물론 포르투갈 전역에 닭 모양의 상징물이 판을 친다. 마을 시계탑 꼭대기에는 언제나 닭이 앉아 있다. 그런데 이 닭이 바르셀루스라는 곳에서 비롯했다. 바로 '바르셀루스의 닭'(Galo de Barcelos)이다. 이야기는 구시가지 한복판, 성 앞 안내판에 자세하게 적혀 있다. 아내가 휴대폰으로 찍은 후 '파파고'를 돌려 보여주었다.


14세기 산티아고로 가던 젊은 순례자가 날이 저물어 바르셀루스에 묵기로 했다. 홀로된 숙소 안주인이 잘생긴 순례자에게 마음빼앗겨 하룻밤 인연을 했다. 그러나 신앙으로 무장한 순례자는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시당한 안주인은 복수를 결심하고, 순례자의 등짐에 은쟁반을 몰래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안주인은 은쟁반이 없어졌다고 신고했다. 도둑으로 몰린 순례자는 마을 재판정에 끌려가 교수형을 언도 받았다.



바르셀루스의 닭과 성당을 한 프레임에 담았다


순례자에게 마지막으로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순례자는 신앙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다. 순례자는 연회석에 차려진 삶은 닭을 가리키며 마음 내키는 대로 말했다. 신은 은쟁반을 훔치지 않았으며, 그 사실을 저 삶은 닭이 크게 울어 증명해줄 거라고. 그리고 순례자는 형장으로 끌려나갔다. 순례자의 목에 밧줄이 걸린 순간 푹 삶겨진 닭이 식탁에서 일어나 울었다. 재판관이 놀라 급히 형장으로 달려갔다. 희한하게도 순례자의 목을 맨 밧줄이 느슨하게 늘어지면서 순례자는 목숨을 구하게 됐다.


순례자는 나중에 바르셀루스로 돌아와 자신을 구한 닭의 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 후 포르투갈 사람들은 닭을 정의와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집에 두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어 병마개, 자수, 접시문양으로 만들어용했다. 요란게 볏을 부풀린 바르셀루스의 은 어느새 포르투갈 전역으로 퍼졌으며 이젠 여행자들로부터까지 듬뿍 사랑을 받고 있다.



전 구간을 걷지 않아도 된다. 나흘 정도에 100km이상 걸으면 인증서를 준다.


아내도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찌어찌 여행을 하다 보니 몇 군데 성모 발현지나 이름난 성당을 방문하기는 했다. 그때마다 적은 돈을 내고 촛불을 켜는 아내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런 소박한 도에 만족했다. 순례길을 걸을 정도의 용기나 준비는 영 부족했다.

순례자를 좋아하지만 사실 어찌 그것만 순례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순례의 길일텐데. 우리는 모두 삶이란 길을 걷는 순례자가 아닐까. 더구나 나의 삶에는 산티아고 같은 뚜렷한 목적지가 없다. 나는 시간다툼하고 싶지 않아 아무 처마 밑에서 한참을 쉬기도 했다.



눈 앞의 다리를 건너면 바르셀루스 구 시가지가 시작된다.


포르투로 돌아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날드로 꼽히는 시청 앞 임페리얼 맥도날드. 바르셀루스의 닭을 보고 왔는데 하필 치킨텐더를 주문했다. 무슨 말 끝에 아내가 물었다. "인생이 순례라고? 그동안 순례길에서 얻은 게 뭐 있지?" 내 대답은 궁색하다.

"글쎄. 뭘 꼭 얻어야 할까?"


아내는 얻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을 뿐 잃은 것들에 관해선 묻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이제 어렴풋이 깨닫는다. 인생이란 가진 것들을 조금씩 잃어버리면서 천천히 비워내는 것이 아닐까 하고.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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