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어떤 공범

포르투갈

by 서해


이제 포르투다.

2년이 넘는된 도. 기원전 1세기 로마인들은 도루(Douro) 강어귀를 점령하고, '서쪽(Cale) 땅의 항구'(Portus)라는 뜻으로 '포르투스 칼레'라 불렀다. 앞엣 말 '포르투'가 도시 이름이 됐다. '포르투스 칼레'는 나라 이름 '포르투갈'로 변했다.



건너편 빌라노바드 가이아에서 바라 본 포르투 도루 강변 히베이라 지역


이 나라 사람들은 포르투를 리스본보다 훨씬 더 '포르투갈스러운 곳'이라고 말한다. 역사 때문이다. 11세기 이곳은 이슬람 왕국과 기독교 세력의 각축장이었다. 이슬람교도 무어인을 물리치기 위해 프랑스 보르공야의 귀족 엔리끄가 군사를 끌고 내려왔다.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고, 근처 까스띠야 왕국의 공주 떼레자와 결혼했다. 둘 사이에 아들, 아폰수 엔리끄(Afonso Henriques)가 태어났다. 엔리끄는 나중에 커서 까스띠야 왕국의 간섭을 물리치고 1140년 포르투갈의 첫 번째 국왕이 되었다. 외갓집 까스띠야 왕국은 후에 스페인을 세웠다.



멀리 칼레리구스 탑이 보인다. 강까지는 가파른 경사길이라 나플레옹 군대도 스페인 병사도 포르투를 함부로 하지 못했다


포르투는 여러 가지 별명이 있다. 와인과 야경이 최고로 어울리는 도시, 은퇴 후 가장 살만한 도시, 유럽에서 제일 힙(hip)한 도시, 해리포터의 도시, FC Porto와 축구의 도시, 산티아고로 가는 관문 등등. 아내와 나는 나흘 동안 포르투에 머물렀다. 만약 포르투에서 뭘 해야 하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정말이지 다음 세 가지는 꼭 알려주고 싶었다.


포르투에서 제일 먼저 할 건 일단 도 강으로 가는 일이다. 도루 강은 포르투의 젖줄이라 시내 어디서든 쉽게 닿는다. 모든 골목은 마치 생선의 빗금 가시처럼 도루 강으로 경사져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낡은 건물들 사이 내리막 길을 걸었다. 골목마다 선원과 군인, 상인과 일꾼, 청소부와 걸인, 사제와 도둑의 부산한 발걸음 자욱이 남아있다. 도시의 역사가 강에서 언덕으로 또 언덕에서 강으로 오르내리며 얼마나 중첩되고 반복되었는지 짐작된다.



포르투에서 강 건너를 잇는 동 루이스 다리. 아래는 자동차가 다니고 위로는 트램이 다닌다. 오른쪽은 동 루이스 다리 2층에서 내려다 본 히베이라 지역


이곳 사람들은 도시와 강이 만나는 지역히베이라(Ribeira)라고 부른다. ‘강변’이란 뜻이다. 예전에는 생선을 사고팔거나 짐을 싣고 부리던 삶의 현장, 부두였다. 지금은 노천카페, 레스토랑, 유람선, 마술사, 버스킹 가수, 갈매기가 진을 치고 있다. 강 위로 둥근 아치를 그리며 동 루이스(Ponte de Dom Luis) 다리가 반긴다. 동(Dom)은 동쪽이 아니라 귀족에게 붙는 경칭이다. 모양새가 낯익다 했더니 에펠탑을 세운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 테오필레 세리그(Theophile Seyrig)가 만들었다고 한다. "철제 교량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바로 "물론이지"(Certainly)라는 혼잣말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만큼 절색이다.


달달한 목청으로 거리공연을 하는 무명 가수. 동전을 넣으면 꼼짝하지 않던 구두 수선공이 돌연 내려치는 망치. 입으로 불을 뿜는 마술사. 동 루이스 다리를 배경으로 찍는 셀카. 끊임없는 웃음소리. 강변에서 서성이면 이런 장면들이 떠들썩하게 달려든다. 안전하고 유쾌한 경험이다. 다 닳아 가물가물하던 생체 배터리가 금방 다시 충전됐다. 그 힘으로 나는 시내로 돌아왔다. 도루 강변은 또 오게 되므로 떠나는 걸 서운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로써 첫 번째 할 일은 "네, 해치웠죠."(Ya. We've done.)가 된다.



왼쪽 포르투시내 거리 마술사. 오른쪽 도루강변의 명물인 구두수선공. 돈을 넣으면 벼락같이 망치질을 해준다
그녀의 노래는 히베이라지역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는 시내 탐방. 찾아갈 곳은 렐루 (Livraria Lello)이다. 클레리구스탑 근처에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다면 바로 그곳이 해리포터로 유명한 렐루서점이다. 1906년 렐루형제가 네오고딕 흰 석조 건물에서 서점을 열었다. 조앤 롤링은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움직이는 계단을 이 서점의 계단에서 본떴다했다. 1층과 2층서가에는 희귀한 고서부터 정치, 역사서와 세계 각국의 소설, 영어로 출간된 포르투갈 소설과 포르투 가이드 북까지 빽빽하게 꼽혀 있다.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 붉은 계단 참과 함께 읽지 못하는 철자로 쓰인 책들이 이곳을 더 궁금하게 만든다.


포르투는 조앤 롤링과 인연이 깊다. 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예이트에서 태어난 조앤 롤링은 1991년 6월 포르투에 왔다. 저녁에는 이곳 인카운터 영어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낮에는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곡을 들으며 글을 썼다. 1992년 10월 TV기자 조르즈 아란테스(Jorge Arantes)와 결혼했다. 이듬해 7월 그녀는 딸을 낳았다. 그러나 둘은 성격 차이로 불화를 겪다가 1993년 11월 갈라섰다. 그해 12월, 조앤 롤링은 젖먹이 딸과 쓰다만 해리포터 원고를 들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돌아갔다. 그녀가 글을 썼다는 마제스틱 카페는 서점과 딱 8백 미터 떨어져 있다. 포르투 곳곳에 조앤 롤링과 해리포터 흔적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왼쪽 렐루서점. 오른쪽 마제스틱카페. 늙은 웨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JK롤랭은 가끔 커피를 마시는 동안 냅킨에 메모를 하긴 했지요. 그게 단초가 되었을 거예요"


조앤 롤링의 개인사와 달리 포르투갈과 영국은 사이가 꽤 좋다. 두 나라는 오래전부터 동맹을 맺고, 귀족의 딸을 서로 왕비로 들이기도 했다. 영국 웰링턴 장군은 원군을 끌고 와서 포르투갈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쳤다. 또 포르투갈 독립전쟁에 힘을 보태 스페인과 싸우기도 했다. 대신 포르투갈은 먹고 사는 일, '경제'를 영국에 기대었다. 덕분에 포트 와인이 태어났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영국은 프랑스와 백년전쟁을 벌였다. 전쟁으로 영국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을 들여오지 못하게 되자 포르투갈 도루 강 상류에 포도밭을 일구었다. 그러나 여기서 만든 와인은 영국에 도착하여 뚜껑을 연 순간 식초가 되어 있었다. 뱃길로 나르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려 운송 중에 다 변질되고 만 것이다. 고민 끝에 양조업자들은 발효 중인 와인통을 열고 독한 브랜디를 들이부었다. 77도나 되는 브랜디는 포도의 당분이 더 발효되지 못하도록 꽁꽁 묶었다. 알코올 도수는 높고 포도 단맛이 그대로 남은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 탄생했다. 포트와인은 영국의 입맛을 사잡으며 인기를 얻었다. 와인에 브랜디를 넣고 숙성하는 작업이 빌라노바드 가이아(Vila Nova de Gaia)에서 이루어졌다.



왼쪽 도루 강에서 와인을 실어나르던 운반선. 오른쪽은 빌라노바드 가이아 지역의 칼렘 와이너리


동 루이스 다리 오른편으로 와이너리가 모였다. Offley, Sandeman, Taylor, CALEM 등등. 이곳엔 포트와인의 역사를 듣고 숙성과정을 살펴본 후 와인을 맛보는 투어가 있다. 나는 포트와인의 '롤스로이스'로 불리는 타일러(Taylor)를 방문했다. 이게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이다. 누군가 포르투를 여행한 기억이 단꿈 같다면 그건 달달한 포트와인 때문임에 틀림없다.

와이너리로 갈 때는 동 루이스 다리 2층 트램길을 걸어서 가면 된다. 돌아올 땐 일부러라도 시간을 쪼개 다리 오른편의 수도원, 세하 두 필라르(Serra do Pilar)에 들러야 한다. 수도원에서 동 루이스 다리와 강변 히베이라에 저녁이 오는 것을 내려다보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까짓 와인 몇 잔에 취해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수도원에 올랐다.



세하두 필라르 수도원에서 히베이라 지역과 도루강에 해가 지는 걸 바라보았다. 말을 잃었다


도루 강에 어둠이 노크를 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달려온 강물은 대서양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잠자리를 찾을 요량으로 눈에 띄게 속도를 늦췼다. 낮동안 관광객을 상대하느라 피곤해진 히베이라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하품에 전염된 듯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혔다. 동 루이스 다리 위로 천천히 트램이 굴러왔다. 저걸 타면 꿈속으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포르투가 왜 와인과 야경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또 어떻게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가 되었는지, 속도를 늦추는 트램에 오르면 누군가가 설명해 줄 것 같았다.

불쑥 아내가 말했다. "포르투는 더 이상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주위를 살피며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남이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맞아. 누가 물으면 한 마디도 얘기하지 말자고." 아내가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공범이 되었다.







posted by chi


keyword
이전 09화순례자와 바르셀루스의 "꼬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