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은 결국 바람과 볕

포르투갈, 몬산토

by 서해



"제 이름은 안토니오. 앙골라 사람이에요. 푸훗"


머리에 까치집을 얹고 단추가 다 풀린 후줄근한 셔츠를 입은 마른 몸집의 사내가 어색한 웃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앙골라란 말에 내가 어리둥절해 하자 '놀라긴?' 하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정확는요. 포르투갈계 앙골라 사람이죠." 나는 다음 말을 찾지 못했다. 머릿속에는 '피부색이 하얀 백인이 어떻게 아프리카 사람이지?' 하는 의문과 '근데 앙골라 사람이 여기 포르투갈 시골엔 왜 와 있지?' 하는 궁금증이 서로 풀어달라고 똬리를 꿈틀거렸다. 나는 눈앞에서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백인 외모의 아프리카 사람에게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혹은 '그게 물어봐도 되는 건지'가 헛갈려 마구 생각이 복잡해졌다.



몬산토 사람들은 이 땅의 주인이 바위라 여겨 함부로 돌덩이를 옮기거나 부수지 않았다.


여기는 카사 데이비드(Casa de David). 아내와 나는 투마르(Tomar)에서 2시간 넘게 차를 달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국경, 산악지대에 숨은 몬산토(Monsanto)에 막 도착했다. 주민이래야 늙은 말까지 포함해서 2백 명 남짓. 마을 이름 몬산토는 '성스러운 산' 이란 뜻이라 했다. 안주인 스텔라는 집을 비웠고, 혼자 있던 안토니오가 우릴 맞았다. 그와 나눈 몇 마디에 여기서 보낼 사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몬산토는 소라껍데기 모양을 한 바위산을 휘휘 돌아 올라가면 길이 끝나는 8분 능선부터 시작되는 마을이다. 해발 6백 미터. 서울 남산이 265미터니 몬산토는 남산을 두 개 붙인 것보다 더 높은 곳에 터를 잡았다.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 12세기 포르투갈 왕 아폰소 1세 때 무어족을 내쫓고 정식으로 포르투갈 땅이 됐다. 병사들은 바위산 꼭대기에 몬산토성(Muralhas de Monsanto)을 쌓고 이웃 나라 레온 왕국의 침략에 맞섰다.

그러나 지금 성터에는 감옥과 망루, 교회와 종탑이 세월에 제 살을 다 발라주고 뼈대만 남아 다. 이 황량한 모습이 1983년 '가장 포르투갈다운 마을'(most Portuguese village)로 뽑혔다. 포르투갈에서 제일 을씨년스럽거나 또는 가장 심드렁하단 뜻인 듯했다. 나는 이 쓸쓸하고 거친 풍경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서 산 정상까진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마침내 성곽에 오르면 아득한 평원 너머로 스페인 영토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돌덩이엔 양보해도 침략자들 앞에선 물러서지 않았다.


루즈 핏 옷으로 갈아 입고 마을 구경에 나섰다. 아이들이라곤 없는 마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분명한 예감. 낮잠에 빠진 마을을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아내와 나의 그림자만 아웅다웅 키재기를 하다가 담벼락을 만나 벌떡 일어서곤 했다. 멈춰 선 아내의 종아리 위로 하얀 무릎뼈가 싱긋 웃었다. 햇살에 몸서리치는 덧창의 거미줄. 어찌나 침묵이 깊던지 늙은 말이 파리 떼를 쫒으려 꼬리를 휘젓거나, 늦둥이 옥수수가 뽀드득 여무는 소리까지 들렸다.

한때 북적거렸을 마을 교회는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들어올 때만 문을 열었다. 버스에서 내린 무리는 금세 사라졌다. 다시 이어지는 경이로운 침묵. 마을 시계탑의 수탉은 절대 울지 않고, 한사코 복판을 피해 길가에 핀 개망초는 밟힐까 몸을 사렸다. 손바닥만 한 공터. 여기서 자라 종이봉투 속에서 익어가는 파라과야(paraguaya) 복숭아. 담보 가치가 전혀 없는 집들 사이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렇게나 침대에 누워 환풍기가 웅웅대는 소리를 듣다가 최면에 빠지듯 잠이 들었다.



나는 돌덩어리를 툭툭 발로 차며 온 마을을 헤매고 다녔다. 저 초록색 문 뒤로 공간이 있긴 할까.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이 많았는지 문가엔 얼룩덜룩 발자국 투성이었다


안토니오가 걱정스레 우릴 깨웠다. 이 마을엔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딱 세 군데 있는데, 그것도 순번을 지켜 하나씩 연다며. 오늘 저녁을 거르지 않으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말끝에 "푸훗"하고 웃는 표정이 하도 순박해 그와 얘기 나누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마침 창가에서 "배배종 배배종"하고 새가 울길래 이름이 뭐냐고 괜한 물음도 던졌다. "아. 그건 나이팅게일이야. 여기 말로 호시노우(rouxinol)" 하고는 또 "푸훗" 웃었다. 나는 그 계면쩍은 웃음에서 안토니오가 들려준 앙골라의 역사와 그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포르투갈계 아프리카인들의 모습이 보여 마음이 영 난처했다.



지붕 위에 코끼리만 한 바위를 얹고 있는 돌집은 몬산토의 흔한 풍경이다.


앙골라는 1482년부터 470년간 포르투갈 식민지였다가 1975년 독립했다. 그 후 30년간 내전을 치르더니 갑자기 부자라로 떠올랐다. 원유를 비롯해 다이아몬드, 금, 구리 같은 풍부한 자원 덕택이었다. 앙골라는 2002년 이후 6년간 경제성장률이 15%를 웃돌았다.


반면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 포르투갈은 2011년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2010년 이후 실업률이 15%를 넘었는데 특히 청년 실업률은 36%까지 치솟았다. 포르투갈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그나마 인연이 있는 앙골라로 달려갔다. 앙골라에 사는 포르투갈인이 2003년 2만 명 수준에서 2017년 30만 명까지 늘어났다.



몬산토와 친해지려면 일단 걸어야 한다. 마을 어귀의 시계탑 꼭대기엔 독재자 살라자르가 내려줬던 수탉상이 앉아있다. 돌십자가를 지나면 햇볕을 피해나온 마을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앙골라는 한동안 자원 수출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지만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 차로 대부분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2015년부터 원유와 광물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중국이 넌즈시 내놓은 차이나 머니를 덥석 들여놓아 '부채의 함정'에 빠져버렸다.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해 원금이 자꾸 늘어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앙골라의 자원을 싼 값에 차지할 심보였다. 뒤늦게 깨달은 앙골라 정부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해 놓고 처분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앙골라 인구 2천만 명 중 유럽계는 3%. 그중 절반이 포르투갈 사람이다. 안토니오는 일자리를 찾아 앙골라로 갔다가 허탕만 치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와 이곳 몬산토에서 숙소 지기를 하는 것이다. 참 얄궂은 인생이다.



왼쪽은 우리가 묵었던 카사 데이비드. 주저앉은 포드 몬데오를 들어 옮기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모였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소리에 잠을 깼다. 우리만 유독 '새가 운다'고 한다는 이어령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나이팅게일이 우리나라에도 산면 '새가 노래한다'고 썼겠다 싶을 만큼 우는 소리가 명랑했다. 그런데 우는 게 새뿐만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가 길가에 주저앉아 꺽꺽대며 울고 있었다. 아침나절, 윗 길에서 차를 몰고 'ㅅ'자 비탈길을 내려오다 너편에 세워 둔 관광객용 밴 때문에 와이드 턴을 못하고 핸들을 일찍 꺾는 바람에 사달이 났다. 낡은 포드 몬데오(Ford Mondeo) 앞바퀴는 허리 높이 축대 밑에 무릎 꿇듯 주저앉았고, 차 꽁무니는 축대 위에 얹혀 버렸다. 뒷바퀴는 허공에서 맴돌 뿐 맨땅에 코를 박은 차가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이장 격인 동네 아저씨가 트랙터를 몰고 왔지만 차를 끌어올릴 수도 밀어 내릴 수도 없었다. 결국 원인을 제공한 외지인 밴 기사, 동네사람 트랙터 아저씨, 안토니오, 그리고 나까지 나서 몬데오 뒤를 들어 두세 발짝 옆으로 옮기고서야 구출이 마무리됐다. 그동안 아내는 흐느끼는 '마팔다'(Mafalda) 아줌마의 등을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었다. 이런 소동이 맘에 안 드는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드는 안토니오. 몬산토에서 지낸 사흘 동안 내가 겪은 가장 큰 사건이었다.





몬산토에선 이런 게 다 구경거리가 된다. 그런데 심심치 않았다. 여태까지 나는 '쓸모'와 '필요'로만 채워진 관계에 익숙했다. 언제부턴가 그런 셈법이 싫어졌다. 물건에서 기능을 뺀 나머지, 삶에서 성공을 뺀 나머지, 직장에서 월급을 뺀 나머지, 또 여행에서 볼거리를 뺀 나머지가 궁금했다.


몬산토에서 볼거리를 뺐더니 바람과 볕이 남았다. 그 둘을 나란히 놓자 풍경(風景)이 되었다. 그랬구나. 우리가 감탄하는 장관이 결국 '바람과 볕'이었구나. 그래서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쐬고 또 쫴야 하는 거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이 교로워졌다. “무언가를 볼 때 마음으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어.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거든.” 마침 아내가 <어린 왕자> 한 구절이라며 들려주었다.


밤이 깊어오자 돌담 위에서 옥신각신하던 나이팅게일 여남은 마리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연유로 티격태격 말다툼을 벌였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또 어떻게 화해했는지도. 어디선가 안토니오가 "푸훗"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 듯도 했다. 앙골라도 살림살이가 어서 나아져야 할 텐데. 가장 포르투갈다운 사흘이 그렇게 완성됐다.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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