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목적지는 파티마로 정했다. 누구나 아는 가톨릭 성지, 관광보다 순례하는 마음으로 들르는 곳. 숙소로 잡은 호텔 산타마리아는 파티마 대성당과 걸어서 3분 거리였다. 아내와 나는 짐 가방을 풀었다. 가능하면 미사를 보고, 성모 마리아를 만난 아이들의 돌집에 들럴 생각이었다. 긴 여행 동안 나도 모르게 긴장했던 감각을 느슨하게 푸는 시간이길 바랬다.
그러나 이곳은 포르투갈 윗쪽으로 올라가는 단체 여행팀이 하룻밤 머무르기 위해 짐을 푸는 중간 기착지였다. 저녁에 도착하는 단체는 대부분 한국 아니면 중국팀. 그들은 풍성한 일정표를 만들기 위해 호텔 로비와 성물 가게, 코바 다 이라아광장과 파티마 성당을 줄지어 행군하다가 식사 시간에 맞춰 거리를 떠들썩하게 점령했다. 아내와 나는 이들에게 쫒겨 몸을 피하다 성당 한구석, 포르투갈 신부가 집전하는 밤 미사로 숨어 들었다. 서른 명이나 될까. 아주 작은 규모였다.
도시의 공기는 종교색이 짙지만 거리는 단체 여행팀이 실어온 지갑 덕분에 반짝거렸다. 반듯함이 되레 아쉬운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아직 버스 행렬이 신실한 개인 순례자들의 숨결을 마저 흐트러뜨리진 못했다. 나는 안도했다. 나지막한 성당 종소리와 기도 소리. 아내와 나는 어두워진 파티마 대성당 건물, 더 안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어둠과 촛불이 사이좋게 너울댔다.
포르투갈 중부의 작은 도시. 파티마는 ‘파티마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모 발현’으로 유명해졌다. 성모 발현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뜻이다. 1917년 5월 13일. 인구 1만 명 남짓 작은 마을 풀밭에서 양치기하는 열 살 루치아(Lucia dos Santos), 일곱 살 자신타(Jacinta Marto), 아홉 살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앞에 번개 같은 섬광이 내려치면서 어린 나무 위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파티마의 비밀'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얘기를 들려주었다. 또 아이들에게 기도와 고행을 바치라고 당부했다. 성모 마리아는 그 후 여섯차례 매월 13일에 나타났다. 10월 13일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믿도록 커다란 기적을 보이겠노라 약속했다. 루치아가 이를 마을사람들에게 전했다. 그날은 신문기자를 포함해 7만여 명이 모였다. 사람들은 태양이 땅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다가 갑자기 회전하고 빛을 쏟아내는 괴이한 자연현상을 수십 분간 목격했다.
아이들 세 명 중 프란치스코와 자신타는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독감에 걸려 이듬해 죽었다. 혼자 남은 루치아는 포르투갈 가르멜회 수녀가 되어 97세가 되던 2005년까지 살았다. 가르멜회란 스스로를 세상과 엄격하게 분리시켜 죽을 때까지 수도에 정진하는 곳이다. 세 사람 유해는 모두 파티마 성당에 안치됐다. 매년 5월 13일과 10월 13일이 되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파티마를 찾는다.
포르투갈 신부님은 이렇게 얘기를 마무리했다. 성모 마리아가 이곳 파티마에 나타났던 이유를 되새기고, 아이들에게 남긴 당부를 잊지 말자고. 나는 포르투갈어를 한 마디도 모르지만 내용은 다 알아들었다. 희한하게도 감동은 몇 배나 컸다. 신부님이 영성체를 나눠주자 신도들은 손으로 받지 않고 직접 입으로 받아 삼켰다. 그사이 아내는 장궤를 내리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기도했다. 오늘은 사실, 일찍 돌아가신 내 어머니 기일. 여러가지 생각에 혼자 가슴이 저렸다.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첫째 비밀은 거대한 불의 바다로 표현된 지옥에 대한 계시. 둘째 비밀은 2차대전 발발과 소련 공산주의 몰락을 예언했다. 셋째 비밀은 루치아가 공개하지 않아 온갖 억측을 불러 일으켰다. 결국 2000년에 알려졌는데 내용은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르2세의 피격으로 해석됐다.
집 현관에 작은 성모상이 있다. 아내가 미국 뉴저지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구한 것이다. 아내는 성모상에도 몇 가지 종류가 있다며 알려주었다. 파티마의 성모(Our Lady of Fatima)는 세 아이에게 나타났을 때 모습을 하고 있다. 구름을 밟고 나무 위에 서 있는 자세다.
루르드 성모상은 1858년 프랑스 남부 루르드 출신이다. 눈여겨 보면 허리에 '푸른 띠'를 둘렀다. 발 아래 장미가 있으며 샘물이 흐른다. 명동성당 앞에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 루르드 발현을 본뜬 것이라 했다. 아내가 아끼는 집 현관의 성모상은 루르드가 고향이었다.
1830년 프랑스 파리 뤼드박(Rue de Bac)에서 나타난 성모상도 인기가 있다. 지구 위에 뱀을 밟고 서서 손을 아래쪽으로 벌리고 있다. 또 보스니아 메주고리예 성모상, 바뇌의 성모상, 갈색 피부를 가진 멕시코 과달루페의 성모상도 있다. 성모상이 왕관을 쓴 건 교황이 대관식을 치르고 씌워드렸기 때문이란다. 파티마 성모상, 루르드 성모상이 왕관을 썼다.
나는 '빠띠마'란 말을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처음 들었다. 경북 경주시 탑동 539번지 '현실댁'. 시골에서 밭일하다 허리를 삐끗하신 현실댁, 내 할머니는 마실 오는 이웃들을 붙잡고 "대구 동산병원에서 몬 낫수는 걸 빠띠마병원 갔더니 용케 고쳐줬다."는 이야길 수도 없이 하셨다. 초등학생이던 나는 아플 땐 빠띠마병원에 가야 하는 모양이라고 믿게 됐다. 대구 삼촌과 숙모님이 한동안 할머니를 빠띠마병원으로 모시고 다녔다. 그 '빠띠마'가 이 '파티마'인 거다.
성모 발현을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사람들이 예언을 굳게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실현된다는 주장이다. 이 심리학 연구를 오래전 나는 할머니를 통해 이해한 셈이었다. 할머니에게 빠띠마는 '의료' 보다 '믿음'이었던 게다.
촛불 봉헌을 마친 아내에게 물었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오래 했어?"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내 어머니를 위해 기도했다는 아내의 대답에.
파티마가 먹먹해졌다.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