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리스본을 떠났다. 세상의 끝 '카보다 호카'(Cabo da Roca)로 가기 위해. 바람이 찰 거야, 내가 말했다. 아내는 대답 대신 속에 껴입은 얇은 패딩을 슬쩍 보여줬다.
길이 만만찮을걸, 이번엔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렸다. 좁고 구부러진 산길을 달릴 거라는 귀띔이었다. 새로 빌린 르노가 걱정 말라는 듯 "부르릉" 거렸다. 나는, 점심 전엔 도착해야 해, 하며 앞 좌석 밑 가속 페달을 슬쩍 밟았다가 놓았다. 당황한 르노는 속도계의 바늘을 쭈욱 밀었다가 황급히 되돌렸다. 마치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리스본에서 41km, 차로 40분 거리. 북위 38도 47분, 동경 9도 30분. 구글 맵에 지명 대신 위도와 경도를 넣었다. 세상의 끝 답게 이름보다 좌표가 더 잘 어울렸다.
유럽이란 말엔 '해가 지는 서쪽'이란 뜻이 숨어있다. 그리스 사람들 눈엔 늘 오리엔스(Oriens)에서 해가 떠 에우로파(Europa)로 졌으니까. 14세기 카보다 호카는 해 지는 유럽에서도 가장 서쪽이었다. 나는 차를 달려 마침내 서쪽 끝에 도착했다. 문을 열기가 무섭게 와락 바람이 달려 들었다.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뒷좌석에서 꺼낸 재킷을 입고 지퍼 올리는 손조차 놔두질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호카(Roca)의 'R' 을 목구멍 깊은 곳에서 가래 끓는 '히옿' 으로 발음한다. 그게 다 거친 바람과 파도를 흉내 내는 거였다.
세상은 여기서 다시 시작했다. 당시 유럽인들이 아는 바다라곤 지브롤터 해협 아래 보자드르곶까지였다. 1434년 포르투갈 엔히크 왕자의 명령을 받은 질 이아네스는 뱃머리를 먼 바다로 돌렸다. 그는 하루동안 오른쪽으로 간 후 이번엔 반대편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남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처음으로 보자드르 곶을 넘었다. 어디에도 불을 뿜는 바다 괴물은 없었다. 1488년 바르톨로메 디아스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도착했다. 얼마 후 바스쿠 다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마침내 인도 켈리컷에 닿았다. 평평했던 지구는 둥근 공으로 바뀌었다. 다 좌회전 덕분이었다.
오른손잡이 세상에서 왼쪽을 시도하는 건 쉽지 않다. 그건 질서를 거스르는 짓이다. 왼쪽으로 도는 건 듣기도 우스꽝스러운 '시계반대방향'이라 불렀다. 라틴어에선 왼쪽을 sinister라고 한다. 이 건 '불길하다'라는 뜻. 반면 오른쪽은 '능숙하다'라는 dextros를 썼다. 프랑스는 왼쪽을 gauche, 오른쪽을 droit라 부른다. gauche는 '비뚤어진', droit는 '올바른' 이다. 영어도 마찬가지. left는 '약한', right는 '곧은' 이다. 왼쪽은 늘 이런 대접을 받았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더하다. '오른손'은 '옳은 손'이고, '왼손'은 '그른 손'이란 뜻이다. '왼'은 '그르다'의 옛말 '외다'에서 왔다. 이처럼 왼쪽은 푸대접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심한 건 '길을 가는 방법'이다. 우리나라 교통은 좌회전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다. 좌회전은 '반드시 좌회전해도 좋다'라는 신호가 켜져야 가능하다. '비보호 좌회전'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경고 표식이다. 중앙선을 넘어 반대 차선을 가로지르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는 엄포 말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죄다 직진만 한다.
나도 그랬다. 여태 살면서 초록색 신호만 쫓았다. 남들이 서면 나도 섰고, 남들이 움직이면 그제야 꽁무니를 따라 나섰다. 일탈이라야 기껏 '갓길 주차'였다. 그렇게 살았고, 스스로를 길들였다. 오죽하면 좌회전보다 유턴이 맘 편했을까. 유턴할 때는 반대 차선이 텅 비어있다. 시스템이 만든 완벽한 통제. 그 안에서만 안도했다. '비보호 좌회전'은 꿈도 꾸지 않았다.
이제야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편안했는지. 모든 게 순조로웠는지. 글쎄. 코앞의 과속 방지턱도 알아차리지 못해 노상 덜컹대는 삶이었다.
포르투갈은 작은 나라다. 크기는 남한만 할까. 인구는 천만 명 수준. 게다가 유럽 대륙의 끝. 여러모로 무언가의 중심이 되기는 힘든 곳이다. 나라의 반은 스페인과 붙어있고, 나머지 반은 거친 대서양과 맞닿아 있다. 작가 최경화는 이렇게 썼다. "조용하면서도 꿋꿋한 이곳 사람들은 그들만의 길을 개척해야 했다."고. 이들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남쪽 바닷길을 개척했다. 지금의 남아프리카를 왼쪽으로 돌아 인도에 다다랐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가 파손됐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페소아는 '바다는 포르투갈의 눈물'이라고 울먹였다. 조금씩 발길을 넓히자 바닷길이 익숙해졌다. 이들이 지나간 '폭풍의 언덕'은 어느새 '희망봉'이 됐다. 인도에 멈추지 않고 더 왼쪽으로 가서 드디어 중국과 일본에 닿았다. 포르투갈은 유럽의 변방으로 머무는 대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 세계로 나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나는 호카곶에서 이들의 선택을 생각했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저지른 '비보호 좌회전' 그들이 달려간 '시계반대방향'. 발견은 '꿈꾸는 자'가 아니라 결국 왼쪽으로 '떠난 사람'이 맞닥뜨린 운명인 거였다.
바닷바람이 세차게 내 의식의 뺨을 때렸다. 정말이지 '세상의 끝' 다웠다.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