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위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 사람을 불친절하게 대하지 말라"
서점에 들어서니 흰 벽에 써 붙인 이 글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 우리말로는 '셰익스피어와 친구들'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책과 문학청년이 넘쳐날 듯했다.
그곳을 찾은 건 파리에 온 둘째 날. 비에 젖은 오후였다. 헤밍웨이가 이곳을 처음 발견하고 그랬던 것처럼 나도 구석구석 들여다보았다. 정말이지 책이 빼곡했다. 책꽂이는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천장에 닿을만큼 키가 컸고, 가로 선반마다 책이 어깨동무하듯 오밀조밀 꽂혀 있었다.
통로와 서가 사이 벽면에는 2구용 전기 콘센트와 어디서 본 듯한 작가의 흑백 사진이 자리 잡았다. 책장 옆을 조심조심 움직여 오래된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푹신한 소파를 차지한 사람들이 제집처럼 몸을 뉜 채 책을 읽고 있었다. 옆에는 낡은 피아노, 활자대가 엉킨 수동식 타자기. 그리고 잿빛 고양이 '애지'(Aggie). 나는 고양이에게 끔벅 눈인사를 건넸다. 미동조차 없었다. 타자기 글쇠를 하나 툭 건드리자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었는지 눈동자가 빨갰다.
푹 꺼진 의자에 앉으니 네모난 창으로 젖은 파리가 들어왔다. 이런 걸 차경(借景)이라 하던가. 소유하지 않지만 향유하는 것. 창밖엔 센 강이 흘렀다. 때 묻은 호두나무 책상은 세월을 견디느라 각진 모서리가 뭉툭해졌다. 부스러진 사연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춤추다 문장이 되고, 마침내 단락을 이뤄 한 편의 글이 되지 싶었다.
까만 재킷을 걸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의자를 세우며 분주하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다섯 시부터 독서 모임이 있다며 나 보고도 참석하란다. 나눠주는 유인물 제목이 <Coffee, Books & ....> 이다. '커피와 책과 뭐든지' 라니. 나는 주섬주섬 부러움과 아쉬움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오전에 다녀온 퓌프가 생각났다.
퓌프(PUF)는 프랑스대학출판연합(Le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이 운영하는 미래 서점이다. 2016년 3월 문을 연 책방에는 놀랍게도 책이 없다. 대신 커다란 복사기를 닮은 기계가 한 대 떡하니 자리 잡았다. 이름하여 '에스프레소 북 머신'(Espresso Book Machine).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책 한 권을 만들어 준다는 기계다. 태블릿 PC의 책 리스트를 보고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인쇄부터 제본까지 "차르륵 차르륵" 해치운다.
직원 에밀리(Emillee)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종이책 서점이 문을 닫고, 얼마 후 전자책 서점으로 부활한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1921년 문을 연 퓌프는 파리 지식인과 젊은이에게 허파 같은 곳이었다. 소르본 대학 옆이라 학술교재와 인문사회 서적이라면 없는 게 없었다. 하지만 책은 갈수록 덜 팔리고, 반대로 임대료는 치솟아 10여 년 전 문을 닫고 말았다. 그 자리에 나이키 매장이 들어섰다고 했다.
퓌프는 '유서 깊은' '전통' 같은 클리셰 대신 '첨단' '미래'라는 수식어를 선택했다. 프랑스에는 존재하지 않던 출력 기술. 미국 제록스로부터 특허를 사고, 이름부터 폼 나는 'd75 로봇 출력' 프로그램을 들여왔다. 이것을 앉히고, 재고와 대량 생산 부담에서 벗어났다. 기곗값은 한 대 6만 유로. 저작권을 미리 산 300만 가지 책을 기억시켜 놓았다가 주문받는 대로 즉석에서 뚝딱 찍어내는 프린트 온 디맨드 (Print-on-Demand)가 가능해졌다.
책을 진열할 이유가 없으니 공간도 크게 필요치 않았다. 당연히 재고도 사라졌다. 에밀리는 "하루에 스무 권 위아래로 주문 받는다."면서 "기계를 설치한 지 반년 만에 수익이 났다."고 했다. 생 텍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한 권에 15유로를 받았다. 컬러 인쇄도 가능했다. 겉표지는 책마다 서너 종류를 샘플로 보여주고, 그중에서 고를 수 있다. 나는 신기하면서도 슬퍼졌다. 이게 과연 서점의 미래일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서점에서 책을 산다. 인터넷을 통해 책을 사는 건 사야 할 책이 미리 정해졌을 때뿐이다. 미리 살 책을 알고 서점에 가는 일은 드물다. 그저 매장을 왔다 갔다 하면 번쩍하고 어떤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그 책을 집는다.
일본 고베대학 불문학자,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교수는 이런 상황을 '책과 눈이 맞는다'라고 표현했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내용도 깜깜하고 더구나 서평도 읽지 않았는데 서점을 어슬렁거리다가 책과 부딪치는 경우 말이다. 책을 집어 들고 페이지를 휘리릭 넘기다가 뜻밖에 읽고 싶었던 내용을 발견한다. 나뿐만 아니다. 그런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종종 일어난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게 책이 가진 물성(物性) 때문임을 안다. 물성이란 '물리적 성질'을 말한다. 즉 밀도, 녹는점, 끓는점, 열전도율, 점성도, 색, 결정의 쪼개짐, 빛 흡수 스펙트럼, 자기적 성질을 모두 가리키는 용어다. 책은 단순히 텍스트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게, 표지 촉감, 종이 질감, 냄새, 종이 넘기는 소리가 다 책을 이룬다. 종이책은 좋은 책일수록 책이 가지는 물성이 세다. 작가가 온 힘을 다해 글을 쓰고, 에디터가 눈을 부라려 편집한다. 영업사원이 맨발로 뛰어 세일즈를 하고, 서점 직원이 머리를 쥐어짜 진열한다. 좋은 책은 서점에 나올 때까지 손을 보탰던 모든 사람의 정성이 각별하게 담겨있다. 그런 책일수록 밖으로 쏘아붙이는 물성 즉 아우라가 강한 법이다.
책을 손에 넣는 건 책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행위다. 여기서 운명이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전자책과는 이런 우연한 만남이 일어나기 어렵다. 전자책은 '어떤 책을 읽겠다'라고 미리 내린 결정에 따라 구입한다. 내 생각에 책은 그런 식으로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책은 읽을 필요에 따라 구입한다기보다 '부름에 끌려' 만나는 물건이다. 사람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지 모르는 채 읽어야 할 책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책과 운명적으로 만나는 순간 '맞아. 이 책을 읽고 싶었어' 하고 깨닫는 것이 아닐까. 서로 읽어달라고 아우성치는 책더미 속에서 내게로 오는 눈빛 하나. 나는 한 번도 그 눈길을 피한 적이 없었다.
셰익스피어 서점 1층으로 내려왔다. 한쪽 구석에 메모와 편지가 잔뜩 붙어 있었다. 나도 그곳에 앉아 노란색 포스트잇에 "책 고르는 안목이 훌륭하군요." 라고 인쇄체로 꾹꾹 눌러썼다. 그렇게 쓴 포스트잇 쪽지를 옆에 놓인 책 중간에 끼워 넣었다. 언젠가 이 책을 읽을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미소를 선사할 생각에서였다. 우연찮게도 책은 헤밍웨이가 쓴 'A Moveable Feast' 였다. 뜻은 '매일 날짜가 바뀌는 축제' 정도. 서울에선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고 번역됐다.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이곳은 미국에서 태어나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온 실비아 비치(Sylvia Beach)가 첫 주인이었다. 1919년에 문을 열고, 1921년 오데옹(Odeon)거리 12번지로 옮겼는데 마침 그때 스물두 살 젊은 헤밍웨이도 파리에 막 도착했다. 처음엔 <토론토 스타> 특파원 자격이었으나 작가의 삶을 결심하고 신문사를 그만 뒀다. 수입은 곧 바닥났다. 허기진 헤밍웨이는 이곳 창가에 앉아 글이 미사여구로 빠질 때마다 진실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되돌아가자고 다짐하곤 했었다.
구하기 어려운 영어로 된 책. 따뜻한 수프.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그것만으로도 이곳은 고국을 떠나온 가난한 작가에게 안식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지친 실비아가 문을 닫고 은퇴해 버려 서점은 이야깃거리로만 남는가 싶었다. 그런데 10년 후 미국 작가 조지 휘트먼이 오데옹 거리에서 멀지 않은 이곳, 노트르담 성당 근처 뷔셰리(Bucherie) 거리 37번지에 서점을 다시 열었다.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었던 이름을 1964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바꿔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2011년 휘트먼도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딸 실비아 휘트먼이 서점을 운영한다. 여전히 침대 열세 개를 두고 누구라도 머물 수 있도록 한다. 에세이 한 편 쓰기, 매일 책 한 권 읽기, 서점 일 돕기 따위가 머무는 조건이란다. 그렇게 지냈던 사람이 어느새 4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조지 휘트먼은 미국의 유명한 시인 월트 휘트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쯤 되면 이곳은 그저 오래된 서점이 아니다. 휘트먼이 서점을 가리켜 말한 대로 '세 단어(shakespeare and company)로 된 소설' 또는 '위장한 천사의 아지트'(hideout for angels in disguise)가 분명하다.
누군가 종이책과 전통 서점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나는 이곳을 보여주고 싶다. 눈치채지 않게 천사가 드나드는 곳. 고양이가 책 읽다 늦잠 자는 곳. 그러니 함부로 깨우지 말라는 메모가 붙어 있는 곳. 나는 발소리를 죽여 그녀를 지나쳤다. 보들레르는 고양이를 '학문과 향락의 벗'이라 노래했다. 거미줄과 곰팡이마저 낭만적인 곳. 어떻게 수지를 맞추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곳이야 말로 '종이책과 서점의 아름다운 미래'가 아닐까.
이게 아니라면 책이라는 물건의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posted by c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