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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Dec 09. 2019

사제를 구한 안덱스의 '산양'

독일




"뿌우~"

뿔고둥을 부는 소년이 깃발을 나부끼며 나타났다. 오늘은 장이 서는 날. 뒤따르던 말 탄 사내가 외쳤다. “여러분,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연옥(燃獄)불길 속에서 고통받고 있습니다” 대주교가 앞장세운 입심 좋은 수사였다. 숨진 가족 생각에 어쩔 줄 모르사람들은 다투어 면죄부를 샀다.



"교회에 기부금을 낸다고 해서 어떻게 죄가 용서되는가. 죄를 용서하는 자비의 힘과 구속은 신의 영역이 아닌가" 마틴 루터는 고뇌하였다.


면죄부(indulgence)는 가지각색이었다. 몇 가지 죄만 덜어주는 '부분 면죄부'. 모든 죄를 용서하는 '일괄 면죄부'. 제일 비싼 건 앞으로 지을 죄까지 미리 없애주는 '선불 면죄부'였다. 독일은 ‘교황청의 젖소’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수탈과 착취에 시달렸다.  



루터는 1521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게시판이기도 했던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교황이 판매하는 면죄부와 교황청의 정책을 비판하는 95개 조의 반박문을 내걸었다.


마틴 루터(1483~1546)는 분노하였다. ‘인간은 오직 신앙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을 뿐 다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며 비텐베르크(Wittenberg) 교회에 95가지 반박문(Luther’s 95 Theses)을 내걸었다. 부패한 교황에 대한 최초의 저항이었다. 루터는 밤마다 주교와 수도원장, 제후, 교수에게 편지를 썼다. 날이 밝으면 하루에 열 군데가 넘는 거리 집회를 돌며 가톨릭의 부정 고발하였다.


루터의 목소리는 교황의 폭압에 엎드려 있던 제후와 시민을 흔들어 깨웠다. 작은 도시 비텐베르크에서 시작촛불은 삽시간에 들불이 되어 유럽 전역 퍼졌다. 당황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는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Reichstag zu Worms)를 소집하였다. 루터를 파문하고 로마로 압송하려는 재판이었다.  



안톤 폰 베르네의 <브롬스제국회의의 루터>. 1877년 황제 카를 5세가 루터를 소환해 그의 주장을 묻는 장면이다.


재판정에 도착한 루터는 목이 탄다며 맥주 한 잔을 주십사 요했다. 후원자 칼렌베르크 공작이 아인베크(Einbeck) 맥주를 가득 따라 건넸다. 루터는 1리터들이 맥주잔을 단숨에 들이키고 입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훔쳤다. 그러자 불안에 떨던 사제 루터는 사라지고 사자처럼 담대한 종교개혁가 루터가 나타났다. 회의장으로 들어루터는 입장을 철회하라는 요구에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외엔 아무도 되돌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루터의 당당함에 제후들은 수군거렸다. 잠시 정회가 선포되었다. 회의 재개고 표결에 부쳤으나 배석한 제후들은 아무도 루터를 반대하지 못했다. 기사회생한 루터. 어쩌면 맥주 덕분일 수도 있었다. 루터를 구 아인베크 맥주. 나는 그 맥주를 마셔보고 싶어 안덱스 수도원(Kloster Andechs)으로 차를 몰았다. 막바지에 접어든 독일 여행, 시월의 어느 주말 아침이었다.



루터가 마셨던 도플복(Doppel Bock) 맥주와 멀리 보이는 안덱스 수도원. 석양에 경계선이 무너진 수도원 모습이 마치 맥주를 마신 후 취한 눈으로 보는 세상 느낌이다.


안덱스 수도원은 뮌헨에서 남서쪽으로 44킬로, 차로 40분 거리인 안덱스라는 작은 마을에 있다. 소박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이다. 중세 베네딕도회는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는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수도사들은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였다. 틈틈이 곡물을 재배하고 빻고 걸러 빵과 와인, 맥주를 만들었다.


사순절(Lent)이 돌아오면 40일 동안 금식을 해야 했다. 사순의 사(四)는 4, 순(旬)은 10이라는 뜻이므로. 금식기간 중엔 '흐르는 것'만 먹는 게 겨우 허락되었다. 수도원은 맥주를 '액체 빵'이라 부르며 한 사람에게 하루 5리터씩 배급하였다. 수도사는 맥주에 의지하여 사순과 부활을 지켰다. 수도원이 처음 맥주를 만든 게 이렇게 시작하였다.


맥주를 빚는 수도사에 관한 기록과 그림이 곳곳에 남아있다. 오른쪽은 <포도주 저장고의 수사들, 1873> 요제프 하이어


11세기부터 순례자가 늘어났다. 순례자는 수도원을 방문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았다. 맥주는 수도원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는 효자로 떠올랐다. 중세 수도원은 지식을 얻고 축적하는 대학이나 도서관 역할 했는데 맥주 제조는 수도원마다 소중한 전래 지식이 되었다. 가톨릭 먹고 마시는 성찬(聖餐)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례 덕분이기도 했다.


수도사는 맥주가 너무 맛있던 나머지 자신들이 사순의 의미를 어기고 있는 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었다. 교황에게 묻기로 하고 로마로 가 마차는 더운 날씨로 인해 실은 맥주가 쉬어버렸다. 시금하게 상한 맥주를 마신 교황은 미간을 찡그리며 맥주야말로 사순의 고통으로 충만하다고 인정했다. 죄의식을 떨친 수도원은 맥주 제조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로마로 보냈던 파울라너 살바토르(Pulaner Salvator), 루터가 마신 아인베크가 대표 주자였다. 수도원은 저마다 차별화된 맥주를 빚내놓으며 '중세의 스타벅스'로 떠올랐다.



산양이 그려진 아인베크 맥주와 수도사가 그려진 파울라너 살바토레 맥주.


보름스 회의 2년 뒤. 칠흑같이 어두운 사순절 밤이었다. 라이프치히 인근 수녀원을 생선 마차 한 대가 쏜살같이 빠져나왔다. 비린내 나는 궤짝 밑에는 루터를 따르는 12명의 수녀가 숨어 있었다. 마차는 신교도 지역인 비텐베르크에 수녀를 내려놓았다.


1525년 루터는 탈출한 수녀 중 한 사람,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였다. 세상은 들끓었다. 개혁을 부르짖는 신부와 그를 흠모한 수녀가 보란 듯 올린 결혼은 가톨릭에 대한 맹랑한 도전이었다. 교황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러나 루터와 카타리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가 만든 맥주는 지금도 비텐베르크지역에서 Katharinenbier라는 이름으로 라거맥주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수녀원에서 술을 빚던 양조사였던 카타리나는 비텐르크에서 맥줏집을 열어 루터의 생계를 책임졌다. 열여섯 살 연하인 그녀는 집 뜰에 한꺼번에 50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탁자를 놓고 루터를 찾는 사람들에게 맥주를 대접하였다.


루터와 제자, 동료 카타리나가 만든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이를 받아 적은 게 '루터의 탁상담화'(The Table Talk Of Martin Luther)다. 쉬운 말로 쓴 이 책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루터의 사상과 지지기반을 한층 두텁게 만들어 주었다.



일요일 아침 안덱스 수도원 곳곳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마을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다. 오른 쪽은 수도원의 미사가 벌어지는 본당과 본당으로 가는 언덕 돌길이다.


나는 드디어 안덱스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유아세례가 있는 날. 양복을 빼입은 젊은 부모가 아기를 안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나라마다 미사 진행이 조금씩 다른 게 흥미로워 주말이면 여행지의 성당을 일부러 찾기도 하는데 잘됐다 싶었다. 가죽 반바지 '레더호젠'(Lederhosen)에 흰 스타킹, 조끼와 깃털 모자를 쓴 바이에른 전통 복장 사내들이 바깥에서 호른을 닮은 관악기를 연주하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아이들과 함께 라 들어갔다.


그레고리오 성가로 기도가 시작되었다. 성당의 높은 천장으로 솟구치는 성가는 언제 들어도 오금이 저다. 둥근  천장은 몇백 년 동안 흡수하였던 성가를  틈에 금고 있다가 오래된 소리부터 조금씩 되돌려주는 듯했다. 림은 메아리가 되어 돌아 내려왔다. 믿음이 없는 나는 신실한 찬양의 와중에도 미사 후에 벌어질 맥주 잔치가 궁금해 내심 얼른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실제 야외 장소는 사진 크기의 두배 쯤 된다. 또 다른 야외 테라스가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더 있다. 오른쪽 흰 건물 지하엔 겨울에 사용하는 지하 식당이 또 있다.


사람들이 모두 바깥 테이블로 쏟아져 나왔다. 성당 건물과 부속 레스토랑 사이는 호프집에서나 보던 긴 나무 테이블이 겹겹이 자리를 잡았다. 나도 얼른 테이블 하나를 차지했다. 건물 처마 밑에는 아까 봤던 마을 악단이 축제라도 하는 듯 음악을 연주하였다. 간이식당 배식와 비슷하게 생긴 카운터에서는 맥주를 종류별로 10여 가지, 안주는 학센이니 바이어 부스트 같은 걸 대놓고 팔았다.


긴 줄이며 꿍짝 대는 악단 연주, 왁자지껄한 테이블 모습이 일요일 오전의 성당인지 뮌헨의 호프부로이 하우스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나는 더플복 0.5리터와 학센 한 덩어리를 주문했다. 루터가 마신 아인벡 맥주는 나중에 복(Bock)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이게 산양(山羊)이란 뜻이다. 안덱스 수도원은 복 맥주가 싱겁다는 지적에 알콜 도수가 두 배로 강한 더플복(Doppelbock) 새로 만들었다. 거칠고 야생적인 맛을 내는 거품과 바위산을 오르는 산양처럼 끈질기고 단단한 질감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성당 부속건물 1층엔 넓은 기념품 숍이 있다. 맥주와 관련된 기념품이 많은 게 특징이다.


아내가 성당 입구 기념품 숍에서 산 엽서를 꺼냈다. 앞면에 무언가 길게 영어로 씌어 있었다. 들여다보니 '맥주를 축복하는 가톨릭의 공식 기도문'(the Official Catholic Beer Blessing)이란 글이었다.


"프로스트!"

"프로스트!"


옆자리 할아버지가 내민 잔을 기세좋게 부딪혔다. 독일어로 "건배!" 라고 외치며  맥주를 들이켰다. 터처럼. 리고 , 감탄하고 말았다. 종교와 맥주 그리고 인간이 만든 오묘한 조합과 헌사.



주여, 당신께서 기름진 곡식으로 만든 피조물 맥주를 축복하소서. 이것이 인류에게 이로운 약이 되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통한 기도를 허락해주소서. 마시는 이는 누구나 육신의 건강과 정신의 평화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O Lord, this creature beer, which thou hast deigned to produce from the fat of grain: that it may be a salutary remedy to the human race, and grant through the invocation of thy holy name; that, whoever shall drink it, may gain health in body and peace in soul. Through Christ our Lord.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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