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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Dec 16. 2019

독일에는 매미가 없다

독일




슈투트가르트(Stuttgart)를 막 지났다. 운전 중에 졸까 봐 틈틈이 하리보(Haribo)를 건네던 옆자리 아내가 불쑥 물었다. "독일에 매미가 없다는 게 진짜일까?" 평소엔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실과 어 순간 마주해야 할 경우가 있다. 지금 같은 때다. 그렇다. 독일에 매미 없다. 매미아니라 은행나무도 찾아보기 힘들다. 근에는 딱정벌레마저 사라지고 있다. 정말 그럴까.


파브르 곤충기 총 5권은 모두 22장으로 채워졌다. 그중 13-17장이 매미에 관한 내용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미는 그리스인에게 진귀한 음식"이라고 말한 기록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본인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이걸 보면 프랑스나 그리스에는 매미가 있는 모양이다. 영어로는 매미를 '시카'(Cicade)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 사람이 이 단어를 쓰는 걸 들어보진 못했다. 라틴어에서 온 어원으로 봐서 생물학자나 쓴다는 얘기지 싶다.

 


뮌헨 공항 렌터카는 내비가 장착되어 있었다. Global에서 빌린 Ford Ecosport는 어설픈 SUV를 닮았는데 뒷 트렁크가 미닫이 문처럼 옆으로 열렸다.


매미는 북위 50도 아래에서만 산다. 위도선을 그으면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경계다. 쉽게 말해 알프스 위쪽에선 매미 소리가 귀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동안 살았던 스코틀랜드나 뉴욕의 센트럴 팍에서 매미 소리를 들은 기억이 딱히 다. 파브르는 프랑스 남부 생레옹에서 자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출신이니 매미를 봤던 모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책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 드라마는 여름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반드시 매미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드라마를 해외에 수출할 때는 이 소리를 지운다. 매미를 모르는 유럽 사람이 들으면 지-익 대는 게 텔레비전이 고장 났나 오해를 하기 때문이다"라고.


독일 사람들이 급 안타까워졌다. 에도시대 <마쓰오 바쇼>의 기막힌 하이쿠를 감상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려서 나는 경주 외갓집 넓은 과수원에서 자랐다. 여름이면 동네 사람들이 사과나무 둥치에 붙은 매미 허물을 약에 쓴다며 구하러 왔다. 나이 차가 많았던 사촌 형은 이걸 선퇴(蟬退)라 부른다고 알려줬고, '날개가 돋는다'는 우화(羽化)라는 단어도 함께 가르쳐줬다. 과수원 오두막에서 '마쓰오 바쇼'의 <매미>라는 하이쿠를 처음 읽던 날, 나는 초여름 빗줄기 사이 퍼지던 사과꽃 냄새와 이명(耳鳴) 같은 매미 소리취해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하이쿠와의 아찔한 첫 만남이었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매미> 마쓰오 바쇼  



과수원 오두막엔 허리 높이의 벽도 있었다. 기타를 배우고 책도 읽다가 삶은 감자나 수박을 나눠먹던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은행나무는 별명이 '살아있는 화석'이다. 2억 7천만 년 전 흔적까지 발견한 마당이니 그럴 수밖에. 고생대에 생겨나 지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에선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나무는 유럽에선 250만 년 전, 북미에선 700만 년 전에 멸종됐다. 그 후 은행나무는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에만 살아남았다. 신기했다. 그러다 보니 은행나무는 제대로 된 영어 이름 하나 갖지 못했다. 


독일 의사 엥겔베르트 캠페르(Engelbert Kaemper)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고용되어 1690년부터 2년 간 일본 나가사키에 머물렀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일본에서  내용을 정리해 1712년 <Amoenitates Exotic>라는 박물지(博物誌)를 출간했다. 그는 일본 사람이 은행을 '긴꼬'(バンク)라고 부르는 걸 기억하고 은행나무를 Gingko Tree(징코 트리)라고 소개했다. 나중에 식물학자 린네마저 같은 이름으로 분류해 은행나무는 느닷없이 일본식 이름을 갖게 됐다.  



은행나무의 은행과 돈놀이하는 은행(bank)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둘의 관계가 궁금해 오랫동안 궁리를 해보곤 했었다.


은행나무는 높은 산에서 자라지 않는다. 또 자연 군락 없다. 식물이 번성하려면 자신의 씨앗을 가능한 멀리 보내야 엄마 나무의 방해를 받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은 바람이 날르기엔 너무 무겁다. 또 냄새가 고약해 새가 물어 옮기거나, 동물이 열매를 먹고 씨를 배설하는 경우가 없다. 인간을 빼고는 아무도 은행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산의 높이 즉 수목한계선(timberline)은 딱 절 마당까지다. 스님이 지팡이로 가져가서 심지 않으면 더는 못 올라간다는 얘기다. 용문사가 그렇고 수종사, 전등사, 부석사 은행나무가 죄다 절 마당에 있는 게 그 이유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정림사(定林寺)에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산다. 중국이 원산지인 은행나무는 우리나라로 유교가 전해질 때 따라 들어왔다. 지방 향교와 서원에 예외 없이 은행나무가 서 있다. 공자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은행 알이 살구를 닮아 '은빛(銀) 살구(杏)'라고 불렀다. 그런데 괴테가 이 은행나무를 두고 시를 썼다. 그즈음 독일에 은행나무가 다시 나타난 거다.  



독일 소도시 이른 아침 길거리에서 만나는 풍경들이 재미있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괴테는 66살 때 사랑에 빠진 30살 연인에게 시를 보내면서 은행잎 두 장을 넣었다. 노란 잎을 책갈피에 끼워 떠나는 계절을 아쉬워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잖던가. 1700년대 후반 은행나무가 유럽으로 건너갈 때 까만 머리 동양인이 지닌 정서도 뒤따라간 모양이었다. 당시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을 지녔으며 식물분류학자로서도 이해가 깊었다.


1815년 바이마르 정원사 요한 콘라드 스켈(Johann Conrad Sckell)은 괴테의 지시에 따라 궁중 저택 뒤 푸쉬킨로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네덜란드인 하멜은 1653년 조선에 표류하여 16년 동안 감금 생활을 했다. 그가 돌아가 쓴 <하멜 표류기>에 '병영 한쪽 은행나무 밑에 앉아 고향을 그리워했다'는 내용이 있다. 괴테도 하멜도 은행나무를 일부러 언급할 정도로 그 존재가 신기했음이 틀림없다. 하긴 나도 바오밥 나무를 처음 봤을 때 물구나무를 선 엉뚱 모습에 몇 번을 뒤돌아 봤으니까. 괴테가 연인 마리안네에게 보낸 시를 찾아보았다. 절절했다.



 동방에서 건너와 정원에 뿌리내린
 나뭇잎에는
 비밀스러운 의미가 담겨
 뜻을 아는 이를 기쁘게 하네.
 둘로 나뉜 생동하는 잎은
 본래 한 몸인가
 아니면
 서로 어우러진 두 존재를
 하나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일까.
 의문에 답을 찾다
 마침내 참뜻을 알게 되니
 그대여,
 나의 노래에서 느끼지 못하는가
 내가 하나이면서 또 둘임을

<은행나무 잎> 괴테(1817)




폴크스바겐 소형차 ‘비틀’이 멕시코 푸에블라 공장에서 단종되었다. ‘고마워, 비틀’이라고 적힌 노란색 셔츠를 입은 임직원들이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폴크스바겐 '딱정벌레'(Beetle) 생산을 멈췄다. 이렇게 쓰 딱정벌레가 곤충이 아니라 독일의 소형차라는 걸 눈치겠다. 독일의 자동차 비틀은 1938년 탄생해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폴크스바겐의 아이콘이었다. 나치 정권을 거쳐 전후 세대엔 '소형차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전 세계에서 2250만 대 이상이 팔려 도요타 코롤라, 포드 픽업트럭, 폴크스바겐 골프에 이어 세계에서 넷째로 많이 팔린 차종. 하지만 2012년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인기가 식때부터 단종설에 시달려 왔다. 결국 2019년 7월 멕시코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되고 중단되었다. 길거리에서 굴러다니는 모습을 아직 볼 수 있으니 사라졌다는 표현은 안 맞으려나.


(왼쪽) 자동차 앞 보닛을 열면 이렇게 텅 빈 트렁크가 나온다. (오른쪽) 자동차 뒤쪽 트렁크를 열면 엔진룸이 있다.
오래된 구형 오리지널 폭스바겐 비틀


비틀은 초기에 자동차 엔진이 앞이 아니라 뒤에 있었다. 대신 앞에는 짐 싣는 트렁크가 있고 뒤쪽 트렁크에 엔진이 들어있었다.  때문에 생긴 오래된 농담 하나.


딱정벌레 차를 사서 집 앞에 세워놓았다가 엔진 구조가 궁금해 앞 보닛을 열어 본 차알못 . 보닛 뚜껑을 열자 엔진 룸이 텅 빈 것을 알았다. 자동차 엔진을 누가 통째로 훔쳐 갔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그가 혹시나 해서 뒷 트렁크를 열었다. 거기에 떡하니 엔진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하는 말. "역시 독일 놈들이야. 트렁크에 여분의 엔진을 하나 더 넣어 뒀다니."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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