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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Nov 25. 2019

특별열차가 되돌아간 까닭은?

독일




독일 '검은 숲'에서 맞는 사흘째, 오늘은 골프를 치기로 한 날이다. 여행까지 와서 굳이 골프 라운딩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라고 대답다. 나는 한 곳에 도착하면 짧아도 사흘은 머문다. 가방도 풀지 않고 다음날 또 옮겨가는 '최대한 많이 그리고 멀리' 하는 여행은 이제 그만두었다. 잠깐 머 거미는 집을 짓지 않는다는데, 그 느낌이 싫었다. 대신 나름 '깊고 또 낯설게' 여행하는데 빠져들었다.


사흘쯤 머물다 보면 처음엔 볼거리를 찾아다닌다. 그러다 음식에 눈이 가고 나중엔 동네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된다. 잘난 척 포장하면 '지리'에서 '인문'으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점점 보는 재미, 먹는 재미보다 이웃들과 이야기하는 기쁨과 머무는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이 커진다. 마을 축제도 참가하고, 와인 테이스팅이나 체험 클래스, 축구 경기도 줄을 선다. 골프도 그중 하나다.





잔디 상태에 따라 전동카트 운행은 페어웨이 출입금지(Cart Path Only) 또는 최단거리 들고나기(90 Degree)로 나뉜다. 그러나 푸시카트는 아무데나 끌고 가도 된다


여행에서 치는 골프는 현지인의 생활 속으로 불쑥 뛰어들어 낯선 사람과 나누는 악수 같다. 유럽이나 북미는 경치가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골프장이 있다. 캐네디언 로키 밴프(Banff), 손바닥만 한 언덕을 다듬은 페어웨이에서 페어몬트 고성 호텔을 겨냥해 샷을 날리고 야외 온천에 몸을 담갔을 때 살갗을 스쳐 달아나 까슬까슬한 바람을 기억한다.


스코틀랜드 세인트 앤드류(St. Andrews) 올드코스, '히말라야'란 이름이 붙은 퍼팅 코스에서 아내가 홀인원을 하는 바람에 머니 돈을 몽땅 털렸던 낭패도 잊지 못한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에서 열리는 PGA 마스터스, 갤러리 카드를 목에 걸고 사흘 내내 타이거 우즈를 쫓아다녔던 어느 해 5월은 떠올릴 때마다 흐뭇해진다. 그런데 이곳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숲)에도 골프장이 있단다.



골프의 고향(Home of Golf), 스코틀랜드 St. Andrews 올드코스와 그곳 상징물이 된 Swilcan Bridge. 한동안 살았던 에든버러에서 차로 50분 거리였다.
온통 구겨놨다고 'The Himalaya'란 이름이 붙은 퍼팅코스는 세인트 앤드류 올드코스와 바로 붙어 있다. 시내에서 걸어서 10분. 3파운드만 내면 18홀을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여긴 그린피가 공짜다. 검은 숲 지역에서  2박 이상 머물면 호텔에서 투숙객 이름으로 슈바르츠발트 카드를 발급해 준다. 카드를 들고 다니면 버스 삯이나 박물관 입장료, 공연 관람료를 면제해 주는데 골프장 그린피도 무료다. 내가 머물던 호프굿 스테르넨 호텔 (Hofgut Sternen Hotel)에서 1시간 거리 안으로 골프장이 네 곳이나 있었다. 그중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골프클럽 호슈바르츠발트(Golfclub Hochschwarzwald)를 찾았다.


이곳은 18홀 규모의 아담한 골프장이다. 평일 그린피가 58유로, 우리 돈으로 7만 5천 원 정도. 이걸 안 내도 되었다. 골프장은 우리나라처럼 꼭두새벽부터 개장하는 건 아니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었다. 예약은 전날 호텔에서 하거나 아니면 무작정 찾아가서 빈 타임에 들어가는 워크인(walk-in)도 가능했다. 꼭 네 명을 채워 나가지 않고 두 사람만 나가도 되니 그것도 좋았다. 캐디는 없다. 골프채를 절반만 빌리는 하프 세트 렌털이 12유로, 손으로 끌고 다니는 풀카트 대여비가 4유로라서 총 16유로, 약 2만 원만 내면 더 낼 게 없다. 아내와 나는 나인 만 돌고 클럽하우스에서 맛 걸 먹으며 흐느적대는 오후의 게으름 속으로 빠져볼 생각이었다.



클럽하우스는 동네 결혼식 피로연이나 주민행사가 열리는 파티 장소로 많이 쓰인다. 클럽하우스마다 자랑하는 대표 음식이 보통 따로 있다.


독일도 요즘은 골프가 인기다. ESPN과 골프 채널에서 마틴 카이머(Martin Keymer), 산드라 갈(Sandra Gal) 같은 독일 선수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예전에는 영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독일 골프는 그리 뛰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1936년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나치 정권을 막 세운 히틀러는 득달같은 명령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목의 경기가 빠짐없이 치러지도록 하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치 정권의 정당성을 과시하고 싶어 했다. 덕분에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후 자취를 감춘 골프가 32년 만에 반짝 등장하였다. 경기는 개인전이 아니고 국가별 팀전으로 열렸다. 한 나라에서 2명이 짝을 이뤄 출전해 상대 팀과 겨루는 방식이었다. 장소는 검은 숲의 휴양도시 바덴바덴(Baden Baden). 36개국을 초청했으나 갑자기 결정된 탓에 유럽 7개국만 출전하였다.



나치 깃발과 올림픽 깃발이 가득한 1936년 베를린 시내
히틀러는 올림픽을 나치 정권의 선전무대로 활용했다.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


히틀러는 골프가 귀족이 즐기는 스포츠라는 이미지 때문에 관심이 컸다. 메달 외에도 큰 은쟁반에 골프공을 본뜬 8개의 호박(珀)을 박아 우승 트로피를 따로 만들었다. 바덴바덴에 모인 각국 선수는 이틀간의 연습 라운드를 마치고 추첨으로 두 팀, 4명을 한 조로 묶어 경기에 나섰다. 8월 26일부터 이틀간 하루 36홀 씩 총 72홀을 도는 스트로크 플레이였다. 주최국 독일은 19세의 레오나드 베커라트와 CA 헬머가 첫날 영국 팀 아놀드 벤틀리, 토미 터스크에 3타 차로 앞서 선두를 달렸다. 은 영국에서 골프를 배운 말하자면 조기 유학생이었다.


흥분한 리벤트롭 외무상이 이를 베를린알렸다. 올림픽을 취재하던 전 세계 언론이 '검은 숲'으로 집중되자 히틀러는 이때야 말로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선전할 절호의 기회라고 여겼다. 히틀러는 우승 트로피를 직접 시상하겠다고 바덴바덴으로 가는 특별열차를 준비시켰다. 하지만 베를린을 출발한 지 얼마 못 가서 외무상으로부터 “9번 홀을 마친 현재 영국과 비기고 있다” 는 전문을 받았다. 히틀러는 달리던 열차를 글린트하겐(Glinthagen) 역에 멈추경기가 끝날 때까지 역 구내를 하염없이 서성거렸다. 장갑을 벗기 전까지는 승부를 알 수 없는 게 골프였으므로.



(왼쪽)히틀러 트로피 (오른쪽)금메달을 차지한 영국 팀 아놀드 벤틀리 선수와 토미 터스크 선수


결국 독일이 5타 차로 졌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실망한 히틀러는 폰헨켈 독일골프협회 회장에게 트로피를 대신 수여하라고 명령한 뒤 워 놓은 열차를 베를린으로 돌렸다. 골프는 영국이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은메달은 프랑스, 독일은 3위 동메달에 그쳤다. 히틀러가 중간에 돌아갔다는 소문에 골프는 베를린 올림픽의 웃음거리로 전락하였다. 서방 언론은 '히틀러 씻을 수 없는 굴욕적인 후퇴를 했다'라고 썼다.


히틀러는 올림픽에서 골프가 다시 사라지게 만든 일등공신이 되고 말았다. 특별 제작된 '히틀러 트로피'는 잉글랜드 골프협회에 진열되었다가 2012년 런던 체스터 백화점에서 경매로 나왔다. 영국 골프선수 벤틀리와 터스크가 소속되었던 잉글랜드 사우스포트의 헤스켓 골프 클럽이 이를 1만 8750파운드에 사들여 지금도 클럽하우스에 보관하고 있다. 영문 모르는 호박은 노란빛이 영롱하다고 한다. 호박은 나무의 송진이 굳어 100만 년 정도 지나 만들어 보석이다. 유럽에서는 amber라 부르며 좋아한다.  



Club은 골프채를 말한다. stick도 아니고 racket도 아니고 bat도 아니라. 스코틀랜드 양치기가 들고 다녔던 끝이 뭉툭한 지팡이를 club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프로 숍에서 렌털 클럽을 고르는데  매니저 한스(Hans)가 여 벙커가 깊다며 샌드웨지를 챙겨었다. 로프트 몇 도 짜리인가 싶어 솔(sole)을 뒤집어 보는  다. "골프 역사상 벙커에서 제일 헤맨 사람이 누군 줄 알아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웃었다.


"최악의 벙커 플레이어는 히틀러죠. 그는 평생 벙커 밖으로  않았답니다" (He never got out of the bunker.)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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