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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해 Oct 29. 2019

어느 날 독일이 말을 걸었다

독일




루프트한자를 탔다. 이번 가을은 뮌헨에서 시작할 거라서. 프랑크푸르트나 함부르크, 쾰른, 퓌센, 하이델베르그를 방문했지만 독일만 따로 떼어 여행한 적이 없었다. 요즘은 '한 나라 들여다보기'에 빠져있는 터라 독일을 반으로 접어 위로 갈까 아래로 갈까 아니면 왼쪽 오른쪽을 놓고 고민하는 중이었다. 마침 독일에서 오래 머물던 친구가 "한 군데만 꼽으라면 뮌헨이지"라며 몇 가지 이유를 댔다. 나는 여행지를 그런 합리적인 논리로 선택하지 않기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이 일어서며 툭 말을 뱉었다. "9월이면 중세 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려. 고성가도를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 " 오래된 소도시를 렌터카로 찾아가 타임 슬립(time slip)에 빠지곤 하는 나를 확 낚아채는 말이었다. 나는 귀가 쫑긋해져 그를 눌러 앉혔다. 어쩌면 '자기 복제'와 '동어 반복'의 글쓰에서 도망칠 수 있을 듯했다. 술을 더 시켰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특별한 친구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루프트한자. 한자(hansa)는 '친구'라는 뜻이다. 루프트(luft)는 '하늘'이고.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할 때 본 그 '한자' 말이다.



뮌헨은 제2차 세계대전 때 거의 잿가루로 변했다. 융단폭격을 맞아 도시의 3%만 남고 모두 파괴되었다. 지금은 인구 140만 명이 사는 독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다.


독일은 '도이칠란트'를 한문으로 쓴 말이다. 일본이 도이쓰(独逸)라고 부르던 걸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에는 중국 따라 '덕국'(德國)이라고 쓴 적도 있다. 도이칠란트는 뜯어놓으면 '도이치' (Deutsch)의 '나라'(Land)다. 여기서 도이치는 고대 독일어로 '인민'(Dituisc) 이란 뜻이다. 독일이 가진 전쟁 이미지와 달리 '인민의 나라' 라니. 생뚱맞다. 영어 저머니(Germany)는 라틴어 게르마니아 (Germania)에서 왔다. 고대 로마인이 갈리아 지역 동쪽을 이렇게 부른 데서 유래했다.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독일을 '알레마니아'(Alemania)라고 한다. 중세 바이에른 지방에는 Alamanni라는 힘센 부족이 살았다. 뜻은 '모든'(Alle) '사람들' (Man). 두 나라는 독일을 아직도 이렇게 부른다. 힘으로 따지면 중세 독일에서 가장 센 부족은 작센족(Sachsen)이었다. 영어로 색슨족(Sazons). 샤를마뉴 대제에 종종 반기를 들어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들었던 부족이다.



매년 9월 마지막 주에 시작해 10월 첫번째 주말까지 열리는 맥주축제 뮌헨 옥토버페스트. 전 세계에서 관광객 600여만 명이 찾아온다.


뮌헨은 달랐다. 힘이 셌니 거친 부족이니 하는 것과는 관련이 덜 하다. 이곳은 '수도사의 거주지'였다. 뮌헨의 독일 이름은 '뮌셴'(Munchen) 또는 '무니히' (Munich). 라틴어에서 '수도사'를 Mönchen, '수도원'은 Monachium이라 했는데 이 두 단어가 기원이 되었다.


1158년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아우크스부르크 판결(Augsburger Schied)에 '무니헨' (Munichen)이라고 썼던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뮌헨 구시가지에 있는 미카엘 교회가 베네딕도 수도원이었다. 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수사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마을이 생겼다. 뮌헨의 문장(紋章)에 수도사가 등장하는 이유다. 맥주와 축구, 자동차로 알려졌지만 뮌헨은 들여다보면 수도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꽤 많다.



뮌헨이 내세우는 구호는 ‘뮌헨은 당신을 좋아합니다'(München mag Dich)이다.


손터링(Sauntering)이라는 말이 있다. '한가롭게 산책하듯 걷는다'는 뜻의 손터(saunter)는 '성스러운'(saint) '땅' (terre)으로 들어간다는 어원을 가졌다. 자연주의자 존 뮤어(John Muir)는 산길을 걷는 것을 손터링이라 했다. 단순히 온 힘을 다해 걷는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몸과 정신이 결합하는 순례와 같은 것. 뮌헨은 수도사의 거주지였으니 뜻으로 보면 뮌헨에 도착하는 게 바로 손터링이다.


그러고 보니 독일은 길의 나라다. 로만틱 가도, 고성 가도, 동화 가도, 알펜 가도, 루터 가도. 신영복 선생은 길(道)이란 낱말을 이렇게 설명했다. “받침 辶(착)은 辵(착)과 같다. 이는 사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걷는 모습이다. 또 首(수)는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한다. 따라서 ‘길’이란 곧 사람이 걸으며 생각하는 행위다”라고. 나는 '뮌헨 =손터링 =걷기 =사유하기' 란 등식을 떠올렸다.



로만틱가도는 사실 '로마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그러나 게르만족이 아직 야만스럽던 시절, 로마 문화는 충분히 낭만적이어서 '로만틱'은 낭만적이란 말과 동의어였다


독일은 '게르만족의 이동'을 한 후예답게 도보 여행의 전통이 깊다. 정처 없이 어디론가 걷고 싶은 욕망을 독일어로 ‘반더루스트’(Wanderlust)라 한다. 직역하면 '방랑의 기쁨'이지만 주로 '먼 곳까지 떠나는 도보 여행'을 일컫는다. 중세 독일 남자는 성인이 되기 전 직업을 배우기 위한 방랑 여행을 해야 했다. 이는 1800년대 ‘반더포겔'(Wandervogel) 이라는 국토 순례 운동으로 이어졌다. 독일에 유스호스텔 제도가 잘 갖춰진 것도 아디다스니 퓨마 같은 세계적인 운동화 회사가 자리 잡은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나는 여행을 가리키는 표현 가운데 저니 (journey)란 말을 가장 아낀다. 관광 (sightseeing)이니 또는 여행(travel) 이니 하 줄을 달리 세우지만 사실 '나의 여행'은 '남의 관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류는 탐험을 어느새 여행으로 만들었고, 여행은 다시 관광이 되고 있다.  단어 대신 나는 순례처럼 고단한 여정을 뜻하journey 란 말의 묵직함에 사로잡혔다. 기약도 없고 돌아올지 여부도 불확실한 채 떠나는 발길. '나그네'를 가리키wayfarer라는 말도 있다. 이런 단어를 만날 마다 렌터카를 버리고 운동화 끈을 졸라맬 날 다. 마침 뮌헨은 처음이다. 나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진 '텐션' 마음을 빼앗긴다. 낯선 공항에 막 내렸을 때의 서늘함. 성경도 '맨 처음에' 라는 팽팽한 철자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괴테는 '이대로 그냥 살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젊었고 무턱대고 모험에 나서기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었다'고 자주 한탄했다.


중세 독일인이 꿈꾸는 마지막 발길은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로 가는 것이었다. 철학자 괴테는 서른일곱 생일을 맞아 자신을 축하해주러 온 친구들을 남겨두고 몰래 길을 나선다. 그게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다. 호기롭게 사두었다가 5년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한 무거운 책. 첫 줄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새벽 3시, 아무도 모르게 칼스바트를 빠져나왔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테니까’


북마크로 끼워놓았던 독일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의 그림엽서가 여전했다. 1818년에 그린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다. 나는 이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 '반더루스트'니 '페른베' 같은 용어를 섭렵하였다. 또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에 대한 동경을 품었으며, 독일 단편 <곰스크로 가는 기차> 따위를 끼고 다녔다.



함부르크 쿤스트할레에 소장된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걷기의 원시적 욕망을 표현하였다.


그렇게 만난 단어, 페른베(Fernweh). Fern은 '멀리 떨어져 있는', weh은 '통증'이란 말이다. 풀어쓰면 '머나먼 곳을 향한 멈출 수 없는 그리움'이란 뜻이다. 그곳에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도 모르며, 낯선 곳에서 병이 나지나 않을지, 사람들이 쌀쌀맞거나 텃세를 부리면 어떨지, 걱정이 피어오르지만 그래도 떠나고 싶은 여행자의 마음을 독일어에선 이렇게 부른다.


이 말은 전혜린이 '먼 곳에의 그리움'이란 글에서 처음 소개했다. 나는 그녀의 문장을 떠올릴 때면 괜히 빗방울이라도 후드득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전혜린은 뮌헨에 도착하는 날 첫인상을 이렇게 썼다.

"하늘은 회색이었고 불투명하게 두꺼웠다. 공기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이나 나를 괴롭힐 물기에 가득 차 있었고 무겁고 척척했다"

 


"여행은 도시와 도시,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이음'이다" 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 가장 좋았던 여행은 그 '이음'이 툭 끊어져 다시 이어지기 전까지의 느닷없는 시간들이었다.


비행기가 에어 포켓에 들어갔는지 요동을 쳤다. 안전벨트를 매라는 경고등이 켜졌다. 사람들은 한두 번 잠에서 깨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모니터는 뮌헨까지 남은 거리가 3,654km라고 다. 상념에서  나는 휴대전화 앱에 저장해 온 전혜린의 글을 끄집어냈다. 입김을 불어 화면을 닦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페른베가 보였다. 뮌헨에 도착하면 무엇 무엇부터 하라고 친구가 일러준 듯한데 어느새 나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전혜린의 글만 '또르륵' 눈에 들어왔다.



"공기에서는 서리와 안개와 낙엽 냄새가 섞여져 났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공원에 가는 일도 드물어졌다. 눈이 내리는 소리, 그리고 난로의 석탄이 타오르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한국서 가져온 낡은 천으로 된 학생용 검은 오우버를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 학교에 다녔다. 점심은 커피 대신 그록크와 수프로 했다. 그래도 추웠다"







posted by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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