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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Apr 14. 2020

그 꼬치집, 세트메뉴 없어요.

작은가게 상품 구성에 대한 단상

 신혼시절 동네에는 단골집이 몇 있었다. 치킨집 김치찌개집 등갈비집 뿐만 아니라 남편과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던 꼬치집이 있었다. 노출식 천정으로 탁 트인 길쭉한 가게였는데 입구쪽에 초벌한 꼬치구이를 굽는 공간이 있고 그곳을 지나치면 테이블이 나타나는 구조였다. 메뉴판에는 닭고기, 돼지고기, 소세지, 야채 등 다양한 꼬치구이 이름이 적혀있었고 개당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비싼 것은 하나에 3천원 정도였고 싼 것은 천원대도 있었는데 둘이 같이 가면 두세개씩 골라서 시키고 맥주를 마셨다.


 예전 일본 동생네 들렀을 때 역전의 작은 선술집에서 먹었던 일본 꼬치집이 생각나고 운치도 있고 맛도 좋았다. 그곳보다 닭꼬치는 크기가 조금 더 크고 양이 많았고 공간도 더 쾌적했는데 메뉴만큼은 그곳에서처럼 하나하나의 여러 메뉴가 단일가격으로 적혀있었다. 나는 그 중에서도 불고기소스맛이 나는 닭고기꼬치를 좋아했다.


 나름 단골이라고 생각하고 몇번을 연이어 방문했을 때였다. 세트메뉴가 있다면 이것저것 골고루 먹어보고싶은 손님들 심리도 채울 수 있고, 세트에 들어간 재료들을 중심으로 재료준비를 하게 되면 식재료 관리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어떤 걸 얼만큼 먹어야 할지 모를때는 적당한 세트메뉴를 시키면 가격도 조금 할인되면서 안전한 선택이 되는 일이 많으니까.


 그래서 오지랖 지수가 최고점에 다다랐을 때 참지못하고 그 가게 주인에게 참견을 했던 것 같다. 신혼초라서 신랑은 나를 억세게 뜯어말리지 못했던 것도 한몫했다. 그 때 신랑이 좀 더 적극적으로 막아줬더라면 지금의 이불킥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장님 여기 세트메뉴하나 만들어주세요. 그러면 서너개 시킬 거 대여섯개 시키고 골고루 자신있는 꼬치 많이 파실 수도 있잖아요.'

  

 손님으로 북적이는 그 바쁜 시간에 오지랖부리는 젊은 여자말에 사장은 나름 친절하게 응대를 하고 숯불 앞으로 돌아갔다.


 '재료가 그때 그때 달라서 소진되고 없을 때가 많아서 세트로 팔지 않고 있어요. 한두개씩 드셔도 괜찮아요.'


 이런저런 마케팅 전략이 많이 있다. 작은가게들도 나름의 전략을 가지고 제품을 어필하고 판매를 촉진한다. 그 와중에 그 가게는 자기 상품의 본질을 최대한 유지하고 다른 것에 끼워팔기를 거부했다. 세트로 묶이는 순간 각각의 꼬치의 개성이 사라지기라도 하는 것 처럼 사장의 진지한 대답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좀더 합리적 판단을 한 것같은 소비자의 심리를 이용하거나 이런저런 고민의 시간을 줄여준다는 나름의 큐레이션 전략은 어쩌면 상품의 본질에 대한 자부심이 없음을 포장하는 속임수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좋은 것들을 잘 꿰어 더 좋은 것으로 만들어 낸다는 점, 그것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언제나 찬성하는바이다.


 지금도 가끔씩 이런저런 판매 전략에 머리를 쓰기보다 상품 본질에 대해 집중하는 그 꼬치집 사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나를 주의시키곤 한다.


 '그 집에는 세트메뉴 없어요.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운 경험이 될거에요.'


비로소 소장,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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