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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l 21. 2020

마감을 지키는 것이 완벽을 이긴다

불완전한 마감을 통해 성장하기

대학원은 대학과는 달라서 자기 연구를 스스로 개척하고 나름의 정의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과 문과 전공마다 자기 주장을 설득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연구자가 자기 연구를 책임지고 일정 기간 안에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은 같다. 그래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노력에 따라 그 발판이 좀 더 튼튼하고 널찍한 것이 될수는 있겠지만 좀 더 두툼하고 널찍하고 누가 봐도 멋진 발판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뜸을 들인다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은 점점 더디게 된다. 


정말 혁신적인 논문이 아니고서야 논문에도 시기적절성이라는 것이 있다. 다양한 학계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에는 조금 설익은 가설과 연구 방법론이라 할 지라도 다양한 의견을 붙여가며 조금씩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포석이 된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논문인라는 것은 오히려 논문의 매력을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지도 선생님은 내가 흥미를 가지고 거칠게 그려오는 논문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주셨다. 조금은 엉성하고 부족한 구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코멘트를 주시면서 어쨌든 하나의 논문으로 완성시킬 수 있도록 북돋아주셨다. 


다소 뻔한 결말이 되더라도 연구하려는 대상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선행연구를 찾아가면서 그 키워드에 공부를 많이 하게 되었고 나의 의견을 아주 사소하게라도 덧붙여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려는 시도가 거듭될 수록 다음 논문을 쓰는데 힘이 덜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학회에 따라 논문 접수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상시 접수되는 곳이 있는데, 몇번 투고했던 학회의 논문 마감일이 바로 어제까지였다. 올해 들이닥친 팬데믹에 의해 대학교 강의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고 그 여파로 교수, 강사, 연구자들의 일상이 변화가 있다보니 정기적으로 열리던 학회는 연기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되고 논문의 발표도 조금씩 연기되는 등의 부침이 있은 터였다. 지난달 흥미가 생긴 키워드가 있어서 관련 연구를 찾아보면서 논문을 준비해보고 있었는데 이번은 힘이 들것 같고 가을쯤 완성을 해서 투고하려고 마음 먹었었다. 그런데 마감기한이 연장이 되면서 이왕이면 이번참에 투고를 해볼 욕심이 들었다.


매일 학교 연구실에 출퇴근하듯 선행연구와 사례연구분석을 진행하면서 마침내 주제나 연구 방법에 대해 구상을 할 수는 있었다. 레퍼런스가 될만한 논문들을 찾아 인용할만한 부분도 정리를 좀 해두고 관련 해외논문이나 키워드 관련 다른 분야의 논문을 검토하였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문화콘텐츠는 문화원형이나 스토리텔링같은 인문학 기반의 연구도 포함되지만 미디어, 디바이스, 정책이나 문화산업, 기술과 같이 연결되는 지점이 많이 있다. 게다가 이러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하는 향유자들에 대한 연구까지 더한다면 기존 연구분야들의 업적과 아이디어를 잘 컨버전스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막판에 스퍼트를 좀 내기는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번에는 논문 투고를 하지 못하였다. 신랑은 주말동안 아이를 데리고 긴 외출을 하면서 내게 시간을 벌어다 주기도 하고 저녁시간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등 신경을 써주기도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00% 집중하지도 못했지만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처럼 촉박하게 마감을 맞추는 식으로 제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좀 더 세심하게 문장을 가다듬고 다른 연구들을 좀 더 검토하고 사례로 찾은 콘텐츠들을 좀 더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써보자고 오히려 마지막 날인 어제 하루를 공으로 보내고야 말았다. 


하루 딱 정해서 해야하는 일이 정해져 있지 않다보니 연구를 하고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하나의 논문으로 마무리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팀이나 랩 단위로 연구가 진행되는 연구가 아니면 내가 과연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일쑤다. 이렇게 막연하게 마감을 미루고 나니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시험공부를 밤새서 하던 그 긴장감이 풀어지고 보니 막상 새로운 것을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는 것 같지도 않고 좀 더 시간을 벌었다 해서 더 나은 논문이 써질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연구자는 하루, 한주 그리고 한달을 보내는 시간에 대한 노동의 가치를 하나로 정리한 작은 연구 논문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본다면 결국 이번달 아웃풋은 없는 셈이 된 것이다. 


D+1이 되었고 또다시 D-N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억지로라도 소논문을 완성할 껄 그랬다. 하는 생각이 좀 드는 것을 보니 완벽을 위해 시간을 들인다는 생각은 사실 치열하게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게으른 변명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정이 있을지라도 어쨌거나 마감을 지켜내는 그 습관이 조금이라도 발전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닐까. 완벽보다 마감을 지켜내는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끼는 시간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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