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효진 Jul 07. 2020

다섯살 화분을 키우며

식물과의 관계를 생각하다

4년전 이맘 때 아이를 낳고 조리원에 들어갔다. 출산 예정일보다 닷새 늦게 나온 아이는 막판 체중이 한껏 불어서 3.7kg가 넘는 우량아였고 빨갛고 쭈글쭈글해도 엄마 아빠를 빼닮았다.비교적 순한 아이는 수유할 때 잠깐 깨었다가 신생아실에서 잠만 자고 그냥 꼬물꼬물 눈만 꿈뻑이면서 엄마 아빠가 부르는 자기 이름을 신기하게 듣기만 하는 것 같았다.


영양사가 챙겨주는 고른 식단도 좋았고 1인실에 이런저런 케어를 받는 기분은 사실 처음 1주는 얼떨떨했고 다음 1주는 조금 아쉬운 느낌이었다. 조리원을 나가는 순간 찾아올 말로만 듣던 육아전쟁이 아득했기 때문이다. 한 간호사 선생님은 '행복한 감금'이라는 표현을 썼다만.


조리원에서 산모의 몸상태에 대한 체크도 하지만 이런저런 프로그램도 있었다. 꿀이나 바나나 키위 딸기처럼 자잘한 씨앗을 함께 먹는 과일이 돌전에 먹이면 안되는 음식이라는 것과 신생아의 신체, 인지 등의 발달 단계에 대한 개괄하는 수업이 유익했다.


작은 조리원이었고 먼저온 다른 산모들이 우루루 퇴원하는 바람에 딱 나만 조리원에 있었던 날이있었는데 근처 꽃가게 사장님이 작은 화분 심기 프로그램을 하러 방문했다. 모처럼 1:1 수업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아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사장님 아이가 그 해 대학에 진학했다고 했다. 엊그제 아이를 낳은 나와 대학을 보낸 엄마가 마주 앉아서 화분을 만들고 있다니. 아이가 대학 갈 때쯤 내 나이를 계산해보니 실소가 생각을 비집고 나왔다.  


작은 화분에 작은 뿌리 한두개를 옮겨 담았다. 원래 산모당 한개씩 주어지는 데, 그날 선생님이 기분이 좋으셨는지 견본 화분까지 나에게 선물로 주셔서 두개의 화분이 생겼다. 왠지 모르지만 마치 둘째 세째라도 되듯 잘 키워야겠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취미로 꽃꽂이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는 화려한 절화(絶花)를 화병이나 폼에 멋진 형태로 구성하는 것이 작업이었고 그래서 꽃은 며칠 가지 않고 시들었기에 매주 수업에 가면서 집에 꽃장식은 계속해서 교체 되었다. 그 때는 그 아름다운 꽃들은 그저 하나의 소재였고 나는 그 꽃들 하나하나보다 전체 어우러져 다른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었다.


그런데 이 화분들은 달랐다. 꽃 한봉오리 없는 길쭉한 잎사귀가 전부인 이 화분에 애착이 생겼다. 내 아이를 낳고 맞은 식물이라 그런지 식물을 소홀히 해서 시들어버린다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았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기저귀를 채우거나 이유식거리 설거지를 할 때 한번씩 식물들을 바라보았다. 생각날때마다 물을 주면서 갓난 아기가 자라는 속도와 견주기도 하고 화분 속 아빠가 '사랑한다 우리딸'이라고 처음 고백한 조리원 꽃바구니 메모가 적혀있던 나무조각을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마치 화분은 아이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아우르는 수호신이나 되듯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꽃집 사장님이 시범으로 만들었던, 잘 자라서 화분이 작아져버린 녀석은 앞집에서 내놓은 코끼리 화분을 주워다가 옮겨주었고 제법  커다랗고 진한 녹색을 뽐내면서 자란 적도 있다. 반면 내가 따라 만들었던 화분은 비실비실 줄기도 가늘고 연녹색으로 아슬아슬 기운이 없어 보였다. 영양분이 될까싶어 비스킷 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비타민 물을 조금 부어보기도 했다. 앞 동산 흙을 조금 가져다가 얹어보기도 하면서 이제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 아빠 응아 맘마 밖에 모르던 아이는 이제 과거형과 가정형, 부정형의 문장을 구사하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가속도를 붙여가며 달리는 용감한 어린이가 되었다. 그에 비하면 이 화분들은 처음 만난 날과 달라진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이가 호기심에 잎사귀를 뜯어내지 않도록 말귀를 알아들을 때에는 거실에 더 예쁜 화분에 옮겨 내놓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아이의 생일즈음에 실행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한결같기. 시작일 때의 마음을 잊지 않기.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이 화분들이 계속해서 푸른 잎으로 나를 반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로소 소장 장효진.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줄넘기 300개 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