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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Jun 30. 2020

매일 줄넘기 300개 하기

하루 십분 내 몸 생각하기

지난 주말 빅매치가 있었다. 바로 남편과 마늘보쌈 내기 줄넘기 경기를 치른것이다. 이때 난 운동 욕구가 솟을대로 솟아서 왕년에 운동 좀 했던 나의 실력을 몰라보는 남편을 속으로 비웃으며 지난 주말부터 땡겼던 마늘 보쌈을 걸고 내기를 성사시켰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모든 일상은 일시정지 상태가 되어서 최소한의 것만 하고 나머지는 대충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요 몇달 스트레스는 심신을 못생겨지게 만들고 말았었다. 조카 입학 선물로 좋은 책가방을 선물했는데 매장직원이 줄넘기를 서비스로 두개나 주셔서 집에 줄넘기가 생겼는데 헬스장도 문을 닫은 김에 아이와 놀이터 갈 때 몇번씩 줄넘기를 하고 나니 속 더부룩함도 없어지고 개운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몇번 줄넘기를 하는 것을 지켜본 남편이 줄넘기 내기를 걸어왔을 때는 나름 자신이 있었다. 허우대는 멀쩡해도 농구축구 잘하지도 않았던 평범한 남자랑 그래도 운동 좀 잘한다는 소리 들었던 여자랑 얼추 경기가 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매달 각자 용돈을 지급하고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그 안에서 소소하게 쓰고 있는데, 남편은 용돈을 받기 시작한 이후로 나름의 취미활동을 하거나 유료 결재 서비스를 이용해서 콘텐츠도 보고 안입는 옷을 중고장터에 팔아서 부수입도 만들면서 소소한 재미가 들렸다. 이번 내기 건은 모처럼 내 용돈으로 포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그동안 갈고 닦은 자전거 출퇴근러의 위용을 드러낼 큰 그림이 있었던 것이었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짱짱한 줄넘기는 야무지게 잔디밭을 훑었다. 가위바위보로 순번을 정해서 삼세번 총합으로 승자를 가리는 방식으로 내기는 진행되었다. 다섯살배기 딸래미는 내기에 눈 멀은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해 옆에서 울쌍이었지만 모른채 했다.


'내가 이기면 쟁반국수도 먹자고 해야지'


가위바위보를 이겨서 내가 나중에 하겠다고 하자 남편은 자신만만하게 줄넘기를 넘기 시작했다. 속으로 하나둘셋넷 세면서 삐끗하기를 바랐다. 남편은 안정된 자세로 열스물서른마흔을 지나 백을 넘어섰다. 운동화까지 고쳐매고 나왔는데 자칫하다가는 질 것 같은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 때, 딸램이 아빠를 향해 돌진했다. 뒤돌아 줄넘기를 넘던 남편은 무방비로 방해를 받았고 그대로 첫번째 줄넘기는 끝이나고 말았다. '백열다섯' 남편은 그마저도 세고 있지 않았던 듯 내게 방해받아서 멈추게 된 것에 아쉬움과 짜증을 섞어내며 몇개인지 물었다. 모른채 하려다가 스포츠정신이 있는 여자로서 정직하게 백열다섯이라고 말해줬다. 처음부터 내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려고 했던 남편으로서는 많이 아쉬운 1라운드였지만 내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스코어가 아닐 수 없었다.


나의 첫 라운드는 예상외로 백서른두개에서 멈췄다. 백열다섯이 넘는 순간 조금 느슨해진 탓에 더 넘을 수도 있었는데 운동화에 줄이 걸리고 말았다. 남편은 내 의외의 선전에 더 초조해졌는지 바로 이어 2라운드를 시작했고 긴장한탓인지 이번에는 일흔개 남짓밖에 넘지 못했다. 승리의 여신은 점점 내게 돌아서고 있었다. 나는 2라운드도 가뿐하게 여든일곱개를 넘었고 합산 남편보다 넉넉히 앞서고 있었다.


미끄럼틀을 한번 타고 온 딸래미는 놀이터에서 혼자 놀아본 경험이 없어서인지 자꾸 엄마아빠의 내기를 빨리 끝내라고 보채는 중이었지만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라운드라며 잠시 양해를 부탁했다. 남편은 국가대표나 된듯 경건한 마음으로 자세를 고쳐잡고는 양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줄넘기의 첫 점프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지루하게도 삼백하고도 두개를 넘었다. 나는 속으로 이백번이 넘는 순간 이게임에서 진 것을 예감했고 이 이후에는 숫자 세는 것이 빈정이 상할 지경이었다. 꽤 힘들어보이던 남편은 운동중독인 사람들이 빠져든다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의 각성상태에 다다른 것인지 말리지 않으면 천번은 넘겠다는 듯 신나게 줄넘기를 넘고 있었고 나는 마늘보쌈을 사러가야한다는 생각으로 3라운드 마지막을 넘기도 전에 바닥에 나앉고 말았다.


'그래도 그정도면 잘넘는거야'


승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칭찬은 달갑지 않았다.


헉헉대면서도 싱글벙글 표정관리 안되는 남편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딸아이를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미끄럼틀로 향하며 내게 얼른 마늘보쌈을 사와서 세팅해놓으라고 명령했다.


 '아 분위기 좋았는데... 얄미워'


하루 300개 줄넘기를 넘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십번 못넘어도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해서 정해놓은 숫자를 넘길 때의 성취감은 생각보다 컸다. 꽤 큰 운동량이라 잠깐만에도 땀이 흥건하게 나는데, 그 다음에 찾아오는 개운함이 괜찮다.


부리나케 사온 보쌈은 잡내없이 야들야들하니 맛이 괜찮았다. 내가 산 보쌈 가족과 함께 음미하며 천천히 먹는데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아침밥을 챙겨주기 시작한 아내가 간단하게라도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 대견했는지 남편은 나름의 응원법으로 나의 운동 욕구를 더욱 불살라주었다고 생각할란다. 그게 몸이 건강해지는 것만큼이나 정신에도 유익할테다.


다음엔 행운의 딸램 찬스도 없을것이니 전략을 잘 짜서 다시한번 리벤지매치를 해봐야하겠다. 이겨서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지!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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