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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효진 Aug 25. 2020

지뢰찾기 인생

때론 단순하고 과감하게

공부하는 열정이 남다른 지인이 있다. 타국에 몇년씩 머물면서 정말 시간을 쪼개가면서 공부하고 있다. 가끔 한국에 들어올 때면 병원이나 은행업무나 밀린 일을 처리하고는 다시 훌쩍 떠나곤 한다. 그 짧은 기간에 어떻게 시간을 쪼개서 만나면 문화가 다른 친구들 이야기나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한보따리 이야기를 풀어주기도 하였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는지, 나같으면 한가지도 힘들었을 일을 한번에 여러가지를 해내는 것이 정말 존경스럽다고 이야기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스위치를 끄고 켜듯이 하고 있어요.'


스스로 하고자하는 셀프 동기부여도 있고 그과정에서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지만, 멋지게 인생을 살아가는 지인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머물러있는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된다. 


'스위치를 끄고 켜면 정말 일도 그렇게 딱딱 될까'


학창시절 국영수 과목이 50분씩 연달아 있는데 책을 덮고 다음 책을 펴면 또 그 과목 공부가 되었던 것 처럼, 우리도 괜한 고민이나 게으름은 딱 접어두고 다음의 것을 펼치면 된다는 심플한 발상이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작은 습관의 힘을 이야기했던 베스트셀러 작가가 한 말처럼 뭐든지 전후 맥락을 만들어 둔다면 행복도 습관이 될 수 있다는 게 떠오르기도.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게 있다. 그 스위치를 켜고 끄는 사람이 바로 자기자신이고 그걸 켜고 끄려면 일단 스위치부터 존재해야 한다. 스위치란 전기가 지나갈 길을 미리 만들어 두고 어디에 전기가 통하게 할지 결정해주는 것인데, 애시당초 길도 만들어두지 않고 스위치를 켜네끄네 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아마도 복잡하고 허무하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뒤엉켜 있다면 나름의 계획으로 자기 길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그 스위치는 어디있는지 모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어렵고 복잡하고 힘이 빠지는데, 일단 그 일을 어떻게든지 해내고 나면 그다음은 쉬워진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을 하고싶은지 가야할 길을 소신있게 정하고 계획을 세워보고(나중에 고쳐도 괜찮다.) 스위치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게 중요하겠다.


지뢰찾기라는 게임이 있는데, 스위치를 만들어 두지 않은 내가 즐겨하던 딴짓이다. 그만큼 중요한 논문을 쓰는데 스위치를 켜기가 힘들었다는 소리다. 

게임소개를 하자면, 게임룰은 정말 간단하다. 초-중-고급으로 설정된 게임을 시작하면 수많은 격자 속에 폭탄이 숨어있고 커서를 클릭하면 그 상자 주변에 몇개의 폭탄이 숨겨져있는 지 숫자가 나타나는데 그걸 힌트로 격자속에 숨겨진 폭탄을 모두 찾아내면 게임의 승자가 되는 것이다. 

한번 성공하고나면 그다음에는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성공하는 지의 싸움이 되기도 하지만, 그 성공을 얻기까지는 번거롭고 무의미한 클릭의 연속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확률게임처럼 몇개 상자를 클릭해보고 운이 좋아 큼직하게 빈 격자들이 쫙 열리게 되면 일종의 쾌감같은것도 생긴다. 그때부터 심호흡을 하고 숨어있는 폭탄들을 1-8의 숫자들을 힌트삼아 열기 시작한다. 하나 둘씩 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바로 옆 숫자와 견주어 폭탄이 어디 들었을 지 깃발로 표시하면서 하나씩 땅을 넓혀나가게 된다. 숫자에 따라 주변 폭탄이 들어있는 패턴이 익숙해지면 클릭하는 속도는 빨라지면서 일종의 몰입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제일 기분이 다운 될때는 마지막 두개의 상자 중에 한개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잘못 선택했을 때다. 


펑!

 



이 단순한 게임이 뭐라고 몇십분씩 하고 있는지, 하다보면 손목이 저리는 게임을 하는 것에 가끔 죄책감도 들지만, 이것 나름의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하면서 열어보는 상자들처럼 내 삶 속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가능성을 위해 마구 모험을 저지르는 일탈을 경험하기도 하고 실수로 폭탄을 터뜨렸어도 다시 시작하면 되는것에 위안이 되기도 한다. 정말 세상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는데도 게임은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1초 전에 허무함에 소리를 꽥 질렀어도 다시 클릭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면 참 어이없기도 하다. 우리 인생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지뢰찾기처럼 가능성을 열어가면서 즐기면 어떨까. 금수저처럼 운좋게 커다랗게 공백을 열어펼쳐낼 때도, 흙수저처럼 조그마한 웅덩이부터 하나하나 폭탄을 찾아낼 때도 다 나름의 재미와 감동이 있었다. 


오늘도 게임을 신나게 하다가 그 지인의 스위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시험공부할 때 책상을 정리하는 것과 논문을 쓰면서 쓸데없는 게임을 의미부여 해가면서 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스위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유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몇십번의 분주한 클릭으로 하나의 게임에서 성취감을 느끼거나 지난한 실패의 연속을 맛보더라도 결국 게임을 시작하기만 하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쓸데 없이 고민만 늘어놓는 내게는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것은 결국 내가 정하고 나갈 일이다.  


그러니 이제 내게 주어진 일들과 해야할 것과 하고 싶은것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스위치하나 만들어두려고 한다. 시간을 들여 회로를 만들고 스위치를 켜고 끄면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 하나 이루어 내는데 인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지뢰찾기게임은 지뢰가 터지는 공포보다는 내 앞의 리스크를 하나씩 없애는 게 목적인 게임이지 않을까 싶기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도 스위치를 잘 켜고 꺼서 마침내 모든 지뢰를 다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컴퓨터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남편의 리니지m을 흘겨보며.

비로소 소장 장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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