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 나보다 나를 잘 아는 당신
그 전집은 왜 까칠한 내가 무급 아르바이트생이 되게 했을까
내가 풋풋한 대학생 시절 학교 앞에는 노부부가 하는 전집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전집의 주 메뉴인 녹두전, 파전을 시키지 않고 닭도리탕에 막걸리 한 주전자를 시키곤 했다. 한 번은 때마침 조금 이른 저녁시간이라 식사를 하시려고 방금 밥을 지었다면서 한 공기를 퍼 주셨는데 내가 좋아하는 콩이 빽빽한 콩밥이었다. 술 마시러 가서 밥을 든든히 먹고 나오니 이후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그득 배가 부른 느낌이 들었다. 학과 모임, 동아리 모임을 하러 그곳에 갈 때면, 가방 내려놓기 무섭게 수저, 물컵, 앞 접시를 손수 미리 가져다가 놓고 주변 테이블에 부족한 반찬이 있으면 직접 가지러 가기도 하였다. 하도 왔다 갔다 하니 다른 손님이 아르바이트생인 줄 알고 내게 주문을 할 정도였다.
이제는 문을 닫고 사라진 그 전집이 그립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담백한 손맛으로 끓여내던 그 닭도리탕 맛이 아직도 선하다. 몇 년 지나 들렀는데도 알아봐 주시면서 아들 친구가 정말 괜찮다고 소개 한번받아 보라며 진지하게 손을 잡아주시기도 했었는데... 하는 기억도 함께 올라온다. 그 전집은 왜 까칠한 내가 엉덩이 가볍게 무급 아르바이트생이 되게 했을까.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신촌에서 일을 할 때였는데, 함께 일을 하던 직원이 ‘그건 비로소 답지 않아요!’라는 말을 한 것이다. 몇 가지 기획을 하며 숨 가쁘게 달려오다가 이제는 수익을 좀 쉽게 내보겠다는 심산으로 새로운 기획을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직원은 그 기획이 '문화 속에서 일상이 풍요로워진다'는 비로소의 기존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평소 사장이랍시고 주야장천 그런 비전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에는 쉽게 수익이 될 만한 것을 해볼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왜 이 직원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조금 전 발견한 이야기도 하나 추가한다. 최근 독립 출판 서점을 열게 된 한 사람이 쓴 글인데, 오랜 숙원이던 가게를 계약하고 가구를 들이고 책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일기처럼 인터넷에 공유한 것이다. 하루하루 마감 일기를 쓰듯 그날의 일과를 소소하게 써 내렸는데, 글 속에는 처음 사업을 꾸리는 초보 사장의 설렘과 두려움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읽는 사람들이 응원을 보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로고도 없고 책이 아직 구색도 마련되지 않은 그 공간을 물어물어 다녀간 모양이다. 그러다가 솜씨 좋은 손님은 로고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책을 팔아준 손님은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고 주인이 일기에 쓴 걸 보고 친절히 연락을 해주어 확인해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왜 그곳을 찾아가서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했을까.
작은 가게라도 비전과 철학을 꾸준히 공유한다면 그것에 동감하는 고객들은 그 모습 그대로의 것을 사랑하게 된다.
작은 가게라도 비전과 철학을 꾸준히 공유하면 그것에 동감하는 고객들은 그 모습 그대로의 것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친밀한 관계의 고객은 가게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힘을 주는 한편,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한다. 작은 가게 혹은 주인장이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 직접 나서서 변호하거나 단점을 장점이라 변명해주면서 호위무사처럼 힘을 모아주는 것이다. 때론 골수 단골 덕에 몸이 힘들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도 가게를 계속해야 하는 촌극도 종종 벌어지지만 그 속에서 일하는 주인장은 어깨가 으쓱하고 든든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시골 친척집 같은 푸근한 전집이 좋았다. 손주들 먹이는 음식처럼 양념이 자극적이지 않았고 양도 푸짐했다. 그런 인정이 나를 친절한 아가씨로 바꾼 것이다. 오래오래 그런 친척집 같은 공간이 지속되라고, 단체손님 때문에 두 노인이 힘들지 말라고 자진해서 거들게 된 것이다. 또 신촌시절의 그 직원도 처음으로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어보는 작업에서 공간과 우리가 하는 일에 애정이 생겼으리라. 그래서 본래 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이루지도 않고 샛길로 빠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한다.
그 전집은 나 같은 손주 녀석들 덕분에 몇 년을 더 영업을 하였고, 내 회사 비로소도 그 당찬 직원 덕분에 상상하던 일을 씩씩하게 실행시켜나갈 수 있었다.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그 작은 서점도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한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의 응원을 양분 삼아 든든히, 천천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열렬한 팬을 갖고 싶다면 일단 먼저 그들에게 팬이 되고 친구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좋은 것을 내어주려는 기꺼움이나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은 순수함같은 인간적 매력이 있어야 한다. 고객이 아닌 친구라 부르는 손님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손님의 취향을 기억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공간이 가진 베네핏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챙겨주자. 깜짝 선물을 무심히 건네 보자.
나쁜 고객을 해고하라!
이어서 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쁜 고객에 대한 것이다. 마이크 미칼로위츠의 <펌프킨 플랜>에서는 ‘나쁜 고객을 해고하라!’는 다소 과격한 주문 등장한다. 아마도 공간을 열고 누구나 진상까지는 아니어도 요구도 많고 간섭도 많은 손님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작은 가게를 열 예정이라면 이런 고객을 염두하도록 하자. 나조차도 그때마다 진땀을 흘리며 SNS에 블랙리스트로 올릴까 싶어 신경이 곤두섰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야 했다. 더 이상 그런 노파심에 신경 쓰지 않고 원칙대로 묵묵히 공간을 가꾸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수 백 가지도 더 되는 그들의 불만을 들어줄 시간에 오히려 좋은 고객들에게 어떻게 하나라도 더 혜택을 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아마도 열 번 응대하다가 한 번 잘못하게 되면 오히려 처음부터 하지 않았던 것보다 더 실랄한 비난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 미칼로위츠는 이어서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나쁜 고객을 삭제할 뿐만 아니라 기존 고객 리스트를 만들고 상위 5위 안에 드는 고객에게 더 많은 에너지를 붓고 거기에서 기회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그들 고객에게 맞춤하여 오히려 평범함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다. 작은 가게라도 그 가게를 찾는 목적은 물건을 사러 온 사람, 그저 구경하러 온 사람, 파티나 워크숍에 참여하러 온 사람이나 강의나 전시를 진행하러 온 사람 등 한 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덧붙이자면, 또 이들 리스트는 다시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수익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에 도움을 주는 리스트와 당장에는 수익이 되지 않지만 미래 가치를 만들어줄 수 있는 리스트로 나누어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장 가게에 돈을 주는 고객은 아니지만, 장차 작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 고객이라면 상위 리스트에 속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들어온 고객을 나쁜 고객이라고 판단하여 문전박대하라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그들을 상대하며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도록, 그들과 실랑이는 최소화하도록 처음부터 정책을 정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편의점이 아르바이트생에게 근무수칙을 공개했는데, ‘식사로 폐기 상품을 먹지 말 것, 5분 이상 지각하면 앞 타임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시급을 양도할 것, 부당한 고객에겐 절대 머리를 숙이지 말 것’ 등의 내용이었다. 이 근무 수칙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도 활력이 되었지만, 오히려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입소문을 타면서 타 지역에서도 그 편의점을 방문하도록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편의점 매출에 도움이 되었다. 앞에서 내가 겪은 고객과 직원이 어떻게 팬이 되는 지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나쁜 고객들에게 쩔쩔매다가 착한 고객들을 돌려보내지는 않았나. 지금 후회스럽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하며 몇몇 얼굴이 스친다.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