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은 말이야,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차고 나왔다.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내가 원했던 세련된 디자이너는 어떤 근거로 나온 걸까. 일단 외형적으로는 깔끔한 정장 한 벌을 입고 싶었다. 스타일에 대해 조리 있게 설명하고, 센스 있게 대화하며,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나는 그런 부분을 세련됐다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이번에는 꼭 이상에 닿을 각오로 샵에 들어갔다. 널찍한 카운터와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바닥에는 대리석이 펼쳐졌다. 프라이빗한 시술 자리에 케어룸까지 있는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인턴은 열명도 넘었다. 무엇보다 일곱 명의 디자이너 전부 진한 남색의 정장 차림이었다. 압구정은 멋진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조효진입니다. 22살이고, 인턴경력은 1년 반정도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침 조회시간, 몇십 개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니 어질 했다. 빨개지는 얼굴은 감출 수 없었지만, 크게 내지른 목소리에 떨리는 마음은 감춰진 듯했다.
교육은 정말 체계적이었다. 샴푸부터 남자 커트까지, 매장에서 통과해야 할 시험만 스물한 가지였다. 디자이너가 고객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면, 그에 맞는 대답을 해야 하는 인성시험도 있었다. 거기다 몇 개월에 한 번씩 본사에서 하는 시험도 봐야 했다. 전부 통과가 되면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디자이너 시험을 볼 수 있었다.
많은 교육과 시험에 연습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하루의 끝은 삼각대를 펼쳐 마네킹 머리를 꽂는 것이 일과였다. 결과물이 만족스러워 좋아하다가, 정말 뭘 해도 안 되는 날에는 머리를 뽑아 땅에 던졌다. 인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의욕을 불태우며 연습일지를 채워나갔다. 11시가 넘어 집에 가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집에 가도 쉼이 허락되지는 않았다. 그날 시술한 고객들 중 한 명을 선택해서 일지를 쓰는 과제를 해야 했다. 어떤 상담을 하고 시술을 했는지, 질문과 느끼는 바가 무엇인지 상세히 적어 내려갔다.
속된 말로 빡센 곳이었다. 힘들었지만, 해내야 했다. 압구정은 뜨거웠고, 나는 나날이 성장했다.
한 번은, 몇백만 원의 회원권을 보유한 고객의 클리닉 시술을 하던 중이었다. 그녀는 중년의 여성이었고, 편안히 누워 나의 마사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불이 꺼진 고요한 케어룸에서는 거슬리지 않게 서비스하려는 필사적인 내 움직임만 느껴졌다. 나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고객의 손을 감싸며 마사지를 하고, 찰랑거리는 물에 담겨있던 발을 닦았다. 뽀송해진 발을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히 올려두고 몸을 일으켜 두피와 어깨 마사지를 위해 손을 올린 순간, 거울에 어스름이 비치는 그녀가 보였다. 편안히 눈을 감고 내 손길에 온전히 몸을 맡긴 아주머니의 모습. 그 모습은 아침에 나눴던 엄마와의 대화를 상기시켰고, 금세 내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엄마 파마해야겠지? 머리 다 풀어져가지고."
"그러네, 어디서 하게?"
"지난번에 갔던데 있는데 거기나 갈까.. 근데 거기는 완전 공장이야 공장."
"왜? 사람이 많았어?"
"파마 후딱 말고 앉아있으니까 앞으로, 옆으로 계속 쭈르르 앉더라."
"뭔 사람이 그렇게 많아? 머리는 마음에 들었어?"
"그래도 나쁘진 않았어. 거기 파마가 가격이 엄청 싸!"
엄마는 공장 같은 곳에서 파마를 하고, 가격이 싸다며 웃었다. 어느새 눈물이 조용히 볼을 타고 마음으로 흘러내렸다. 엄마의 잔상이 계속 맴도는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치없는 내 손은 계속해서 지압점을 찾았다. 그날의 압구정은 서러웠다.
고된 연습과, 때때로 찾아드는 박탈감은 견딜만했다. 정말 지긋지긋 한 건, 텃세와 미움이었다. 떡하니 내놓은 다리에 걸린 사람은 난데, 감히 선배의 발을 밟은 사람이 되어있었다. 경력이 낮은 디자이너와 팀을 이뤄 일을 할 때면 경력직 디자이너들이 어찌나 눈치를 주는지 밥도 5분 컷이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텃세가 있었지만, 유치해서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넌 너무 교과서 같아서 싫어."
나는 정석대로 일 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다고 일머리가 없다거나, 직장생활에 센스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이 글에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그랬다. 내가 싫다던 그 사람은 꽤 높은 직급의 디자이너였다. 밑에 직원들을 좌지우지하는 게 수준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괴롭힘의 순서가 그냥 내 차례였던 건지도 모르겠다.
온 직원이 다 밥을 먹어도 나는 못 먹을 때가 있었다. 퇴근 후 티끌하나 보이지 않게 박박 닦느라 11시를 넘긴 적도 있었다. 소리 지르는 건 기본이고, 많은 직원 앞에서 면박주기 일 쑤였다. 다른 선생님들이 효진이는 이번 시험 과목 무조건 붙겠다 해도 그 사람 때문에 삼수, 사수를 했다. 나를 흘겨보던 눈초리가 아직도 선하다. 지쳐서, 억울해서, 미워서, 울고 또 울었다. 압구정은 괴로웠다.
그 시간을 견뎠기에, 지금까지 잘 해내고 있는 걸까? 그러한 배움의 시기를 겪고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며, 뜨거웠던 압구정으로 기억하기엔 내가 너무 닳고 닳았다. 이 글을 빌려 내게 전하고 싶다.
"참 많이 고생했어, 대견하다 효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