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입술색.

나는 당신이 두려워요.

by 조효진


"효진선생님 어디 갔어??"

"그러게요? 좀 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고객님 받아야 되는데 어딜 간 거야! 그냥 선생님이 할래?"

"저야 좋죠~"


나는 기둥 뒤에 숨어 저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가 숨은 이유는 나름 타당했다. 몇 분 전으로 거슬러올라, 매장으로 들어오는 여자 고객의 모습을 봤는데 정말 너무 세 보였다. 눈매에 옷차림까지 온몸으로 기가 강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인턴생활 도합 4년이었지만, 선생님 옆에서 고객을 볼 때랑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건 완전히 다른 시선이었다. 예를 들면 고객을 배정받고, 여유 있는 디자이너 역할을 연기하며 인사를 한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상담을 해야 하는데 거울로 고객의 눈을 마주치는 게 너무 두려웠다. 멘탈 강화 연습은 개뿔, 고객 앞에만 서면 멘탈이 저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다.


혹시 디자이너가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뭔지 아는가? 상담할 때 고객의 머리를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는, 쓸데없이 만지작거리는 것이다. 만약 저 행동에 대해 등수를 매겼다면 내가 일등이었을지도 모른다. 거울로 전체적인 모습을 보며 어떤 머리가 예쁠지 추천하고 의논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계속 애꿎은 머리만 들춘다.


하루를 어영부영 날린 내 모습이 한심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배워놓고 정작 무섭다며 숨은 꼴이라니. 나의 변함없는 사고의 고착성 때문에 스스로 움츠려 들고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그 기 세 보였던 여자도 약한 내면을 감추려 눈을 부릅뜨고, 화려한 치장을 했을지 모르지 않는가. 이 생각은 내가 미용학원에 처음 갔을 적을 상기시켜 주었다. 6000원의 아이라이너 하나로 자신감을 채우고, 무리에 스며들던 그때를 말이다.


화장대에 앉아 이미 진하게 그린 아이라이너에 뭘 더 할까 고민하는 내가 우스웠다. 그러면서도 자연스레 손과 눈은 자신감으로 쓸만한 무기를 찾았다. 그 순간, 선물을 받아 서랍 깊숙이 봉인해둔 립스틱이 떠올랐다. 그 립스틱은 맥(MAC)이라는 브랜드 제품 중 레드 립의 대명사 '루비우'였다. 처음 발라봤을 때 새빨간 내 입술에 놀라 후다닥 뚜껑을 닫고 봉인된 루비우. 이제는 그 새빨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고객을 위험 대상으로 보고 있나?' 하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다. 복어는 바닷물을 흡입하여 몸을 팽창시켜서 포식자를 물리친다. 코브라는 머리를 치켜들고 앞가슴 쪽의 갈빗대 부분을 넓혀서 목 주변을 넓게 펼친다. 개구리나 두꺼비들도 그렇다. 이렇듯 위험한 상황에 몸을 부풀리는 동물들이 있는데, 그게 마치 세 보이려 치장하는 내 모습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고객 앞에 잘 서는 게 중요하지 않겠냐며 다시 민망한 웃음을 짓는다. 지금도 나는 스스로 우습더라도 일단, 잘 살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 우스움은 오직 나만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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