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다채로워지는 중.
기억은, 관심의 표현이다. 내가 고객과 친밀해지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도 그것이었다. 상담과 시술 내용은 물론, 나누었던 대화, 무의식 중 그들이 머리를 만지는 습관까지 사소하게 메모했다. 꾸준히 하다 보니 나중에는 얼굴만 봐도 그 사람과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누가 나를 기억해 준 다는 건 상당히 유쾌한 일이기에 고객들도 내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기억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다양한 사람들과 하는 삶의 대화는 즐거운 일이었다.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직업에 대해 듣는 것도 새로웠다. 하루는 30대 초반의 고객이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이번주 소개팅해요!"
"와 드디어 다시 연애하시는 건가요!?"
"오늘 머리 잘해주시는 거에 달렸죠 뭐. 하하"
"막중하네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이별에 오랜 시간 힘들어하던 고객이었다. 소개팅이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만남은 성공적이었고, 몇 개월 후 결혼식 날을 잡았다는 따끈한 소식도 들려왔다. 그 뒤로 상견례, 스튜디오 촬영, 결혼식까지 행사가 있을 때면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방문했다. 나는 그녀와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 준비를 함께했다.
또 어떤 날은 고객에게 재미있는 부탁을 받은 적도 있었다.
"선생님!! 제가 우울하다고 머리길이 확 자른다고 하면 꼭 말려주셔야 돼요!!"
스무 살의 귀여운 고객이었는데, 남자친구와 다툴 때마다 단발로 자르고 싶어 했다. 나는 부탁을 들어주려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싹둑 자르고 만족의 미소를 지으며 나가던 그 고객을 잊을 수 없다.
미용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의지를 받는 직업이었다. 입학식과 졸업식, 회사 면접, 거래처 미팅, 소개팅, 상견례, 결혼식 등 중요한 날에는 꼭 머리를 한다. 그 외에도 '비가 오니 왠지 우울해서. 기분전환이 필요해서.'라는 감정을 내세워 스타일을 바꾼다. 감사하게도 나한테 머리를 받고 가면 기분이 좋아서 온다는 분도 계셨다. 그 모든 것에 함께하니 매일매일이 다채로웠다.
때때로 마음에 여유가 없고 지칠 때면,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기분에 버거웠다. 하지만 고객과 나의 사이는 쌍방이었다. 머리가 마음에 쏙 든다며 엄지를 치켜주고, 선생님한테는 편하게 머리를 맡길 수 있다며 신뢰해 주었다. 그런 말과 행동들은 어느새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고객이 두렵다며 숨기 급했던 내가, 이제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한 때 스쳐 지나가는 인연 일 수 있겠지만, 그 순간 함께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