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밥 한 끼 해요.

정중한 거절이 있기는 할까.

by 조효진


“같이 밥 한번 먹기가 왜 이렇게 힘들어요!? “

요란한 클리퍼* 소리를 뚫고,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당당함에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왜 화를 내세요? 따로 밥 먹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따지듯 말하는 저 고객은, 내가 26살의 디자이너 시절 같은 건물 3층에서 일하는 회사원이었다. 매번 능글맞게 행동하며 몇 차례 밥을 먹자 했고, 나는 그때마다 최대한 기분이 상하지 않게 거절했다. 실제로 우리 매장에서는 고객과 사적인 자리를 갖지 말라는 대표님의 당부도 있었다. 과연 정중한 거절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결국 서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기분에 언성이 높아지는 걸 보면, 상대방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는 거절은 효력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달라진 내 어투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벌게진 얼굴로 커트가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한동안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세 달 정도 지났을까, 어둑한 자동문 너머로 그의 걸음걸이가 느껴졌다.


"아~ 요즘 일도 힘들고, 몸도 아프고 죽겠네요."

태연스러운 말투가 썩 별로였지만, 그래도 더 이상 나를 곤란하게 하는 일은 없었다. 예의보다는 날카로운 솔직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헤어디자이너와 고객은 머리를 내어주고, 삶을 나누기에 친해질 기회가 많다. 하지만 정은 주고받아도, 번호는 주고받지 않는 게 좋다. 사적으로 친해지면 멀리 내다보았을 때 일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예약시간에 비일비재하게 늦거나 되려 내가 편하게 생각하여 기다리게 할 수 있다. 또는 파마할 때 머리가 너무 상했는데, 케어를 권유하지 못하고 서비스로 해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꾸만 할인을 해주는 나를 발견한다.


'아닌데? 나는 고객이랑 친해도 공과 사는 구분해서 철저하게 하는데?'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거 참 부럽다. 하하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하기도 싫어하는 탓에 밥 한 끼 하자는 그 따뜻한 문장이 내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한 번은 해드린 커트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며, 고마워서 밥을 사주신다고 했다. 친한 고객이었지만, 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이런 식이었다.


"머리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에요! 늘 방문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마음만으로 충분합니다."

상대방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실제로 받았던 답변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제가 꼭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맛있는 밥 한 끼 해요!"

물론, 좋은 사람인 걸 모르지 않는다. 다만 조심스레 건네는 츄파춥스 딸기맛 하나가 더 반가울 듯하다.


“거 같이 밥 좀 먹을 수 있지, 꽉 막혔네~“라는 생각을 갖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보고, 듣고, 직접 경험한 견해이고 나만의 결론이다.




클리퍼: 머리털을 깎아 다듬는 기계, 이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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