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욕망.
나는 운동으로 흘리는 땀을 좋아했다. 내 안에 안 좋은 것들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랄까? 수영, 태권도, 검도, 합기도, 우슈 산타, 헬스, 줌바, 요가, 필라테스, 폴댄스까지. 종목 상관없이 하고 싶은 운동이 있다면 열심히 경험했다. 운동이 좋아서 한 때는 경호원을 꿈꿀 때도 있었지만, 당시에 경호원은 비전이 없어 보였기에 좀 더 미래를 책임질만한 일을 해야 했다. 그 선택은 미용이었고, 다행히 서른셋이 된 지금까지 잘 책임져 주고 있다.
권태로움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다. 디자이너 3년 차가 되었을 때, 굉장한 피로감과 무기력증이 몰려왔다. 그나마 퇴근 후 필라테스를 하며 기분전환을 했었는데 하필 그 운동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매일 구부정한 자세로 일하는 나를 보다가, 건강하게 돈을 버는 다부진 몸의 선생님이 멋져 보인 이유였다. 왜 여즉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메마른 마음에 일렁인 불꽃은 걷잡을 수 없었고,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잘해오던 직업을 왜 그만두냐며 질책했다. 하지만 '잘해오던'이란 말부터가 오류였다. 열심히 달려온 그 길에 행복이 있었나 싶을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미용을 아예 놓을 수는 없었다. 적은 수입이라도 꾸준히 있어야 했기에 평일에는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토요일에는 디자이너 스페어로 돈을 벌었다. 그렇게 인생의 주가 되던 미용을 매주 작은 이벤트로 만들었다.
푹신한 운동화를 신고 필라테스 수업을 가는 발걸음이 설레었다. 수강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론과 실습을 배우는 시간도 즐거웠다. 몸의 뼈와 근육은 왜 이리 많은지 명칭을 외우느라 머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코칭을 하는 내 어색한 모습에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했지만, 나의 2막이 열린다는 기대감에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뒷전으로 밀어버린 주말의 이벤트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흥미였다. 새로운 일의 설렘과, 본래 해오던 일의 즐거움이 더해져 모든 날이 완벽했다.
"효진아, 잘 지내지?"
"아 대표님, 안녕하세요. 네네 잘 지내고 있어요."
"그래, 미용 안 하고 있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다. 실력 아깝게 미용 안 하고 왜 딴 걸 하려고 하냐~"
"그냥 다른 일이 하고 싶어졌어요. 하하"
"강남구청 지점에 실장 자리가 비었는데.. 생각은 없고?"
".. 네 죄송해요."
인턴 시절 대표님의 전화는 나를 흔들었다. 다만, 다시 그 브랜드숍에 발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나는 이미 너무 닳아버렸다. 내가 나약한 게 아닐까? 하는 자존감 약한 생각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게 나쁜 사람들이었고 가치가 없는 곳이었다. 마음이 시끄러웠다. 미용과 필라테스가 내 저울대에 올라 시소를 탔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이라 재밌는 게 아닐까? 매일 하면 또 똑같은 꼴 나는 거 아니야!? 근데.. 내가 강사로서 다른 사람 몸을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미용에 발 담근 지 10년이 가까워도 아직 모르는 게 많은데, 필라테스는 뼈랑 근육 명칭을 외운 정도잖아.. 좋다고 직업 삼았다가 업이 되면 싫어질 수도 있어.. 미용은 열심히 해오던 실력이 있으니, 지금의 흥미와 열정이 더해져서 무적이 되겠지!? 아악- 결정해라!! 나 자신!!'
스스로 질문을 하고, 의문을 품었다. 현실에 자책을 했다가 합리화도 했다. 인생만큼 소란스러운 건 없었다.
고민 끝에 나의 결정은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두고,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자.'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시작하는 중이었다. 다시 마주한 고객 앞의 나는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디자이너가 되어있었다. 지루하던 삶에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었던 건강한 욕망이 잠시 방황하게 만들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즐거워지는 행운을 얻게 된 스물일곱의 새빨간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