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by 조효진


"나는 좀 세련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삐친 단발에 끝동만 빨갛게 물들인, 촌스러운 내 스무 살 다짐이었다. 턱을 괴고 쳐다보던 같은 과 친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디자이너가 세련되면 내 머리도 예뻐질 거 같긴 해. 그럼 2학년 전공과목 헤어로 하겠네?"

"응 그래야지! 너도?"

"헤어는 막상 해보니까 잘 안 맞는 거 같아서 피부 쪽으로 가려고."


대학교 1학년생은 피부, 네일, 메이크업, 헤어를 전부 배웠다. 그중에 적성에 맞는 일, 꾸준히 흥미를 갖는 게 어떤 건지는 경험 해 봐야 알 수 있었다. 피부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마사지를 하는 수업이었는데 한 번만 해도 진이 빠졌다. 네일은 가만히 앉아서 작은 손톱을 들여다보니 멀미가 났고, 메이크업 소질은 꽝이었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고, 힘들어도 집중했던 수업은 역시 헤어였다.


열심히 하니 학점은 저절로 따라왔다. 하지만 어느 날에는, 디자이너가 됨에 있어서 A+받은 성적표가 중요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름지기 미용실 인턴 생활이 훨씬 도움 될 거라 확신하고, 오후 출근이 가능 한 곳에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면접을 본 미용실은 재미있게도 나와 연이 닿았던 곳이다. 시간을 거슬러 몇 개월 전, 파마를 하려고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예약시간은 7시였고, 내가 도착한 시간은 7시 1분. 지각이라면 지각이겠지만, 문전 박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7시 예약했어요!"

"아... 조효진 님 맞으세요? 조금 늦으셨네요. 어쩌죠, 시간이 지나서 오늘은 어려울 거 같아요."

"네????? 지금 7시 1분인데요..?"

"네. 1분 늦으셔서 어려울 거 같아요."


위 대화는 100프로 사실이다. 누군가에게 1분은 정말 중요할 수 있었다. 나는 상가 계단을 두 개씩 올라갔어야 했다. 죄송하다며 사정했지만 매몰찬 대답이 돌아왔고, 그 순간 마음속에는 불꽃이 지펴졌다. 불굴의 조효진, 오늘 무조건 파마를 하고 집에 들어가리라.


뚜루루-- 뚜루루--


"안녕하세요! 혹시 지금 가면 파마 가능 할까요? 단발머리고 그냥 일반 롯드펌 할 거예요!"

수화기 너머 긍정의 말이 오길 바라며, 최대한 간단한 머리를 한다는 듯 줄줄 늘어놓았다.

"네~ 그럼요. 지금 바로 오세요!"

쾌재를 부르며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 시간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 그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나 예전에 약수동에서 축지법 쓰는 사람 봤다? 진짜야."


파마를 예쁘게 말아주셨던 원장님은 내 기억 속에 따뜻하게 남았다. 다음에 미용실에 취업한다면, 꼭 그곳으로 가고 싶을 정도였다. 면접은 화기애애하게 성사되었고, 먼저 일하고 있던 실습생도 내 출근을 적극 지지했다.


나는 아무래도 먼젓번 인턴 경험이 있어서 생각보다 잘해나갔다. 내 생각으로는 그랬다. 많이 혼나긴 했지만, 예전처럼 멘탈이 바삭해질 정도는 아니었다. 학기 중에는 수업을 마치면 오후 출근을 했고, 주말이나 방학에는 아침부터 마감까지 일을 했다. 고객층은 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단가가 낮은 점도 한몫했는지 시장통처럼 요란하긴 했어도, 겨울이 되면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던 사랑방 같은 정겨운 분위기가 참 좋았다.


아쉽게도 교육이 체계적이진 않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질문하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래도 아낌없이 가르쳐 주셨다. 오래도록 매장에 붙어있다 보니, 내 출근을 적극 지지했던 실습생과도 가까워졌다. 그는 나 대신 바닥을 많이 쓸어주고, 샴푸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윙크를 날려댔다. 함께해서 더 힘이 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때 그 윙크는, 지금도 여전히 신혼집 거실 소파에서 날 향해 날아오곤 한다. 하하)


그렇게 매장에서 1년 반의 시간이 흐르고, 원장님은 몇 달만 더 하면 디자이너를 시켜주겠다고 하셨다.

'벌써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니!'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곳이 너무 좋긴 하지만, 왠지 여기서 시작한다면 내가 다짐했던 세련된 디자이너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촉이 강렬했다. 다만 다른 샵에 간다면 1년 반의 인턴 경력을 인정해 준다 해도, 그 매장 스타일에 따라 또다시 새로 배워야 하는 긴 시간이 될 지경이었다.


'아아- 현재에 안주하고 멈출 것인가, 내가 정말 원하는 길로 나아갈 것인가.'

오손도손 정을 나누는 사랑방 선생님도 물론 좋지만, 한참 부족한 내게는 변화가 필요했다. 내 선택은 흔들림이 없었고, 그때의 선택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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