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거나 평론을 하고 싶었다. 시는 좋아하고 평론은 가끔 상을 받아 인정받기도 했다. 마흔에 등단한 박완서 선생님처럼 마흔 전에 문예비평이나 영화 비평으로 신춘문예에 도전해 당선되고픈 꿈이 있었다. 이창동 감동의 영화 시에 나오는 양미자 할머니도 예쁜 옷을 입고, 과거 국어 선생님이 시를 쓰면 좋겠다는 얘기를 빌어 다시 문화센터 시쓰기 강좌에 나간다.
할머니의 손자는 친구들과 더불어 또래 여학생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했고 그 소녀는 결국 자살을 한다. 양미자 할머니는 자신의 피붙이인 손자를 위해 다른 아이들 학부형과 함께 문제해결에 나선다. 할머니가 맞선 문제해결의 과정은 만만치 않다. 이성으로 대변되는 남성적 질서로 가득찬 그곳은 할머니의 모든 것들을 조금씩 대상화하고 자본화하며 착취한다.
합의의 과정에서 여학생의 엄마를 만날 때 할머니가 같은 여성이란 합리적인 이유로 동원되고 눈물을 흘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일종의 시나리오도 짜진다. 성폭행과 합의라는 사건만이 남았을 뿐 자살한 여학생의 마음은 실종된다. 아이들이 왜 성폭행에 가담했는지, 그 아이가 죽기까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양미자 할머니만이 그 여학생의 마음을 따라간다.
여학생의 장례에 간 할머니. 여학생은 아네스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었다. 죽음 이후를 위한 장례란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겠냐마는 신부님은 그녀가 고통 없는 세상에 가기를 축복한다. 할머니는 가만히 피해 여학생의 삶을 추적하면서 또 다른 한 여성인 자신의 삶과 만나고 조우하며 시를 쓰는 용기를 낸다.
할머니에게 시를 쓰는 행동은 그녀가 처한 제국적 질서에 균열을 내는 작지만 큰 저항이다. “시는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요?‘ 시를 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온 한 남성은 마이크를 들고 음담패설을 시라고 풀어낸다. 할머니가 보호사로 일하는 곳의 할아버지는 그녀와 성관계를 하고 돈 만원을 준다.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할머니에게 들러붙어 정보를 캐려고 한다.
문학반 마지막 교실, 떠득썩한 자리 가운데 양미자 할머니만이 시를 남긴다. ‘아네스의 노래’
‘아네스의 노래’ - 양미자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한가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 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 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래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용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볕 맑은 아침
다시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 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양미자 할머니가 ‘아네스의 노래’를 남기고 간 시교실에서 선생은 말한다. “아니에요, 시를 쓰는 게 어려온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시를 쓰겠다는 마음. 어쨌든” 일상을 살면서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일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시에 나오는 두명의 그녀들도 자살했는데......
나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다가 장애인이 되었는데. 봄처럼 복닥이고 울렁이는 마음과 불편한 몸으로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죽지 않고 생존해내기! 지금 내가 당면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