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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현정그레이스 Aug 12. 2024

상담심리사 차현정

나는 내담자 출신 상담사다. 나의 학창시절에는 학교 안에 위클래스가 없었다. 학교에 위클래스가 있어서 조금 안정적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내 청소년기도 조금 수월했을까? 사춘기의 불안으로 처음 찾아갔던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의 팀장님은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소개해줬었다. 당시의 병명은 노이로제. 약을 지어줬지만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 된다는 엄마의 신념에 따라 약도 못 먹었다. 엄마와 아버지는 나의 불안을 수용하지 못했고 그 이후 점집을 비롯한 매우 미신적인 곳들에 끌려다녔다. 부모님이 조금만 더 학식이 있고 사춘기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면 나는 덜 고생했을까?



부모님의 미신적 이해와는 별개로 나는 상담과 상담 비슷한 것들에 계속 노출되었다. 교회 사모님이 자행한 비윤리적 상담을 비롯하여 대학교 상담센터, 아는 간사님의 교회 후배인 상담사분의 상담등. 이런 저런 상담 장면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 상담은 상담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으로까지 이어졌다. 300시간 가량 되는 집단원 경험과 100시간 가까이 되는 개인분석 시간들이 내가 내담자로 투자한 시간들이다. 상담자로의 시간도 꽤나 쌓았지만, 내담자로의 시간도 절반 가량 된다. 이런 나는 아직 상담자일까? 여전히 내담자일까?



상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상담사로 일하는걸 뜯어말리는 입장이 되긴 했지만, 나도 이 학문에 중독되었다. 누가 누굴 말리는지. 상담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는 돈을 벌긴 커녕 점점 가난해졌다. 자격증은 하나 둘 늘어가고 있지만 있던 재산은 점점 줄어만 갔다. 그래도 약간의 공부 중독인 나는 여전히 각종 워크샵과 공부 모임으로 일상을 채우고 있다. 늘 공부해야 하는 학문에 그나마 할줄 아는게 공부인 나는 좋은 짝궁인 셈이다. 



석사를 졸업했고, 상담심리사2급과 청소년상담사2급 사회복지사1급을 가졌으니 그래도 공인된 자격을 가진 상담사가 되긴했다. 어쩌면 이제 시작점이고 본격적인 레이스는 지금부터인지도 모르지만. 생존에 급급해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첫 마음에서 다소 멀어진건지도 모르지만 직업인으로서의 상담사에는 좀 더 가까워진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제는 환상은 걷히고 현실에 발 붙인 상태다. 멋진 상담사는 못되도 꽤 괜찮은 상담사 정도는 되고 싶다. 내담자들이 상담을 신청하고 싶은. 



내가 내담자 출신이기 때문에 상담이 절실한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상담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직업인으로 상담사가 되지 않을 것이라면 먼저 상담을 받는 경험부터 하면 좋겠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임용에 통과된다면 나는 상담교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된다. 완전한 상담사라기 보다 상담사 절반, 교사 절반의 반인반수같은 위치가 되는 셈이지만 그래도 자라나는 청소년기 아이들의 곁이 되어주고 싶다. 내가 청소년 시절 상담을 처음 접했기 때문에 나도 결국 청소년 상담사로 귀결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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