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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Feb 14. 2022

다시 가고 싶은 가고시마

피치항공을 떠난 후 즐겼던 남쪽 큐슈

피치항공의 시뮬레이터 첫째날 훈련을 마치고 무지무지 자괴심이 들었다.. 

지금 일본에 와서 뭐하고 있는거지? 이 사람들의 비행 방식은 내가 지금껏 경험해 온 것과 너무나 달랐다. 필요하지도 않은 자료를 몇 페이지씩 만들어 강조를 하고, 조종사가 속도 0.25kts를 따지고 등등등의 일본 이외에서의 비행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졌음은 Observation 비행때나 APT(시뮬레이터 전에 하는 절차 훈련) 과정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첫 시뮬레이터 훈련을 마친 후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해도해도 너무하다랄까? 

일본으로 가기 전부터 일본 항공운항에 문제가 많다고는 들어왔고, 피치항공에 입사해 지상교육을 받던 몇 달 동안 일본 항공운항의 문제에 대한 별의별 스토리를 다 들어오며 나는 견뎌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왔었다. 일본식 문화에 거부반응이 있었으면 애초에 일본 항공사에서 일해 볼 생각을 하질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첫번째 시뮬레이터 훈련부터 지금까지의 예상을 뛰어 넘는 거대한 철벽에 부딪혀 벼렸다. 긴 밤이 하얗게 느껴지도록 지새우며 아지매와 함께 고민에 고민을 했다. 결론은 여기서 멈추자였다. 더 이상 진행했다가는 내가 미쳐버릴지도 모르겠기에..


피치항공에 이 내용을 알렸더니 부사장이 이유를 알려달란다..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일본 항공사에 지원할 때 긍정적 마인드가 강했었는데 일본의 항공 운항을 직접 겪어 보니 매우 낙후된 수준이고 내가 감당할 수 없기에 중단을 결심했다고 알려주니 곧바로 답이 왔다. 얼마 전에도 시뮬레이터 훈련 첫날 중단한 케이스가 있었고 그 외에도 꽤 여러 건이 있었기에 피치항공에서도 아주 익숙한가 보다.. 

며칠 후 운항본부장인 사토상이 오사카에서 토쿄 카마타의 토큐스테이 호텔로 날아 왔다.. 자기들도 일본 항공운항의 문제를 잘 아는데 관료가 바뀌지 않는다며 별 투정을 다 늘어 놓기 시작하더라고.. 결정을 번복해 달라는 투로... 그렇게 한참 대화 후 서류를 작성하고, 1개월 후를 사직일로 정했다.

시뮬레이터 훈련 과정 10번을 끝낸 경우엔, 일본항공국(JCAB) 시험 당락에 관계없이, 피치항공이 엄청 매달렸다. 조종사보고 남아 달라고.. 친구인 재키만 해도, 12월에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사정사정을 해가며 급여를 5월까지 계속 줘 받았다고 한다. 5월이 되니 계약은 자동해지 되었고.. 조종사를 잡기 위해 큰 돈이 지출됨에도 개의치 않는 피치.. 비용을 아끼기 위해 본사 화장실에 종이티슈 대신 일반 수건을 걸어 놓고, 급여가 낮아 승무원들은 투잡을 뛰어야 하건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일본 항공사들은 공무원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


카마타에 1주일 정도 더 머물며 아지매와 토쿄 관광을 했다. 요코하마를 거쳐 덜컹거리는 한 칸 짜리 기차를 타고 만화영화로 유명한 가마쿠라 해변가를 돌아봤다. 기차 그림이 멋있어 몇 장 산게 지금도 집의 액자에 끼워져 있다..

그리곤 일본의 서남단 큐슈 가고시마, 미야자키 지역으로 향했다. 처음엔, 자동차를 렌트해 아오모리 쪽으로 북상해 니카타 쪽을 거쳐 쿄토, 오사카로 하려고 계획했는데 12월이고 눈이 오기 시작해서 변경하게 되었다..


전 일정동안 토요코인에서 머물 계획이었기에, 첫째날은 가고시마 공항 근처의 토요코인으로 예약했다. 사쓰마센다이인데,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도시라고 했다. 원자력발전소는 내 첫 직장이었으니 여기서 보았던 전기회사 직원들에게 친근한 느낌이 들더라고..

그리고 사쓰마를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아 검색해보니 일본의 메이지 유신 전단계에서 영국과 전쟁을 했던 번이었다.. 책으로 많이 읽었던 근대 일본의 한 가운데 들어와 있던거지..


사쓰마센다이에서 시작해 서쪽 해안을 따라 죽 내려오며 절경을 즐겼고, 시골마을에서 (유일한 외국인인 듯) 정겨로운 음식도 즐겼다..

역시 사쓰마번이 일본 근대 해군의 시작였듯이, 서해안을 따라서 해군의 흔적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러일전쟁의 영웅 도고제독도 싸스마번 출신이라고 읽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주만 공습을 준비했던 지역도 바로 그 서해였다고 한다.. 진주만으로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들이 출발한 후에도, 가고시마 서해에서는 계속 항공훈련을 했다고 한다. 주력부대가 출정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사쓰마 쪽은 일본 근대/현대 해군과 뗄레야 뗄 수 없다니 그래서 해군 위령비가 그렇게 많았나 보다.


가고시마 시내의 물가는 토쿄나 오사카에 비하면 너무너무 저렴했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을지??

인심도 너무 훈훈했다. 아지매를 영어회관에 태워다 주고 거기에 차를 주차한 후 한 칸짜리 전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내가 외국인인걸 알아보고 이것저것 설명해 주신다. 그러더니 내 전차비를 대신 내주시고 내리시네.. 조금 전에 처음 본 외국인한테.. 일본말을 하지 못해 영어로 대답을 했건만 차비를 대신 내주겠다고 하신 말씀이셨나 보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토쿄나 오사카에 비하면 인구도 적고 경제가 힘겹게 돌아간다는게 느껴졌지만 인심이 풍부하고 물가가 싼 참 좋은 도시였다. 심지어 토요코인에서 제공되는 아침식사도 가고시마 토요코인이 제일 푸짐했다.. 울 아지매도, 다음에 일본을 오면 이런데로 오자고 하네..


가고시마 공항의 북쪽 키리시마 온천마을을 돌아보고 족욕을 즐기며 돌아오다 우연히 들른 작은 온천이 지금껏 들렸었던 온천 중 최고였다. 일본의 근대개화기 선구자이며 풍류아인 사카모토 료마가 신혼여행을 했던 길에 있는 아주 작은 온천인데, 경치며, 물이며, 카페, 빵, 커피, 서비스 등등 최고로 좋았다. 

그 온천에서 커피를 내왔는데 커피잔이 세트로 된 눈에 띄는 거였다. 도자기에 관심이 높은 울 아지매가 눈독을 팍팍 들였지.. 미야자키 다음에 쿄토에 들러 다운타운 쇼핑을 다니다 다시 눈에 띈 그 커피잔.. 알고보니 비틀즈(Beatles)가 일본 공연을 왔을 때 기념으로 발매된 거였고 그 60주년을 기념해 새로 판매되고 있는 거란다.. 예쁜 잔을 모으는 울 아지매가 바로 사버렸지..


미야자키에서 가고시마로 넘어 오는 길은 숲속의 오솔길을 통과했었는데 뇌리에 남을 정도로 멋있었다.

돌아가는 길을 네비게이션으로 찍으니 두 길이 나왔고, 시간이 적게 걸리는 길은 우리가 올 때 지났던 길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길로 선택했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지 좀 지나, 길은 점점 좁아들더니 왕복 1차선 길로 되며 산 속으로 들어갔다..

어찌되나 보자고 계속 그 길을 탔는데 높은 산 속을 꼬불꼬불 돌며 절벽 옆, 개울을 지나고, 히노끼나무로 빽빽한 숲속으로 지났다.. 쓰러진 나무로 길이 거의 막혀버린 곳도 많았네.. 인가는 하나도 없고..

아지매는 차가 굴러버릴까봐 걱정하고.. 모험삼아 계속 진행.. 고고싱하자~ 그 구간에서 차를 딱 2대 보았고 민가는 한 채를 본 것 같았다.. 나무가 빽빽하고 나무의 자연향을 느끼려 중간중산 차를 세우고 밖에 나와 쉼호흡을 했다..

한참을 숲 속 길을 빙빙 돌고하다가 큰 도로로 나왔더니 문명의 세계로 돌아온 듯 했다..


아, 가고시마에서 모래찜질 하는 곳도 들렀었지. 

유명한 곳이라고 해서 찾아갔더니 개보수 중이라 근처의 호텔을 소개받아 갔었다. 12월이라 추워서인지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지만 따뜻해서 좋았다.


아지매가 가자고 해서 갔던 식초 담그는 집도 멋있었네.. 그 많은 장독들...

아지매가 여러병 샀었는데 다 캐나다로 가져간건가???


미야자키에선 그 이스타섬 석상이 있는 곳도 멋있었지만(유료), 해안가의 피닉스(Phoenix) 전망대가 절경이었다. 해상절리 그 암석하며, 탁 트인 바다.. 수평선... 정말 멋있었다.


일본 운전면허증을 처음 써본 것도 가고시마/미야자키 지역이었다. 왼쪽으로 운전하는게 처음이라 아주아주 어색했다.. 아지매가 옆에서 지적해 줄 때도 많았고, 깜빡이를 켠다고 켜면 와이퍼가 작동될 때가 많았다... 왼쪽 오른쪽이 서로 바뀐 나라다 보니.. ㅎㅎㅎ.. UAE에서 일하던 시절, 말레이시아인 친구 림상이 집엘 갔다와 운전하면 항상 와이퍼를 작동시켰었지.. 그 때마다 '림상 언제 돌아온겨?'라고 묻곤 했었는데 내가 같은 걸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일본처럼 좌측 통행 방식.


다시 간다면, 사쓰마센다이 서쪽 해안가, 히노끼 숲속 길, 그 작은 온천에 들리고 싶다.. 



[사쓰마센다이에서 남쪽으로 향한 도로 주변. 

가고시마의 서해이지..]


[남쪽 해안가를 지나다 점심을 먹었던 JoyFun 레스토랑. 아주 시골마을에 있었는데, 다른 손님들을 둘러보니 토쿄나 오사카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생겼었다. 한국 시골에 사는 분들하고 비슷하다고나 할까?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나타나 점원들이 아주 난감해 했다.. JoyFun은 알고 보니 체인점이었고..]


[키리시마 온천의 뒷 산. 유황온천증기가 어마어마하게 뿜어져 나온다.]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본 일본 온천 중 최고는 바로 이곳이었다.]


[욕실 바로 앞.

코인 라커가 있었는데, 일하는 아가씨가 동전을 주며 라커를 이용하라고 했다. 그 아가씨 혼자서 온천 카운터와 카페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미인이었다.

욕실 안의 욕조가 엄청 작았다. 2~3명 들어갈 수 있는 크기. 욕조에 들어가 창밖의 풍경을 보니 정말 멋지다.

단풍과, 바로 옆의 강물.. 나무, 안개낀 하늘. 내부를 찍지 못해 아쉽다..]



[온천과 카페가 같이 있는 이 집.. 비틀즈의 일본 공연을 기념하여 만들어졌던 커피잔 세트을 여기서 보았었고 쿄토여행 때 다시 만나게 되어 아지매가 구입했다. 이 비싼 잔을 고객 접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신기했다.]


[온천의 전경. 가고시마를 떠나는 날, 다시 들렀더니 주인같아 보이는 부부가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알려주셨다. 벤츠를 타고 오셨던데, 딱 봐도, 경치 좋은 곳에 투자한 부자 부부로 느껴졌었다..]


[사카모토 료마의 신혼여행길을 표시한 지도..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 근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위인으로 메이지 혁명의 발판을 깔아 놓았다. 료마 부부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신혼여행을 했다고 한다. 사무라이였던 칼 찬 료마를 그의 부인이 뒤따르는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네. 이 모습이 어디엔가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했다.]


[식초로 유명한 회사의 뒷마당.]


[미야자키에서 가고시마로 향할 때 통과하였던 산 속..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나오질 않는군.. 아지매가 앉은 곳이 조수석...]


[미야자키 남쪽의 피닉스 전망대..]


[미야자키 인근의 이스타섬 석상 모형들..]


쿄토에선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우리 부부하고는 별로 맞지 않았다. 물가는 엄청 비싸고,, 음식도 별로..

임진왜란 이총에 들리면 묵념을 하려 생각했건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그럴 기분이 들지 않았다. 조상들이 너무 가엽게 여겨져서 눈물만 핑핑 돌았다. 현대의 탈레반과 동급인 조선에서 이씨 왕족과 사대부들은 백성을 위해 무엇을 했던가? 이런데도 조선왕가를 되살리자는 운동이 한국에 있다고 한다. 성리학에 몰입되어 세계 최빈국으로 구성원 절반 정도를 노예로 유지한 조선을 떠받들다니.. 틀림없이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이일 듯 하다..


[쿄토의 임진왜란 이총.

조선인의 코를 잘라 모아 묻은 곳이지만 명칭이 거시기 하다고 귀를 묻은 곳이라고 말을 바꾸었다고 하는 바로 거기.. 이 앞에선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런데 내가 왜 슬퍼하고 있던 건지 그 이유는 모르겠었다.. '민족' 개념을 교육받아서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아님, 이 분들과 내가 어떤 인연으로 얽혀 있던가?]


[사쓰마센다이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마주했던 태평양전쟁 일본 해군비행단 명단.

박물관 바로 앞에 있었다. 박물관은 작은 규모였는데 일본어로만 설명되어 있고 유료라 둘러보지 않았다.

메이지유신에 성공한 일본은 군국주의로 인해 망해버렸었다. 그런데도 그 군국주의를 청산하지 않고, 아니 못하고 이런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시아 공영권 건설인 과거의 영광에 동감하는 일본인들이 아직도 적지 않게 있으리라.]


큐슈의 남쪽과 북쪽 끝인 후쿠오카와 가고시마를 가려고 했건만 코로나가 가로 막은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언제나 예전처럼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을까?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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