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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스터 Chester Feb 24. 2022

백반증

새하얀 피부



어릴 때 미술시간을 좋아했었다. 그림 그리기에 소질이 있었는지 담임선생님이 대표로 뽑아주기도 하셨고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청주 시내의 중앙공원에서 했었던 사생대회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 공원 가운데 아주 오래된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기에 그림으로 그리기에 적절할 곳이었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사람도 그려야 했는데 그 시절엔 피부에 해당하는 색상을 살색이라고 불렀다.  분홍색과 비슷한 그 색상을 살색이라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국이 다문화/다인종 국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들은 듯 하다. 피부를 대표한 이름을 살색이라고 붙이는 건 나에게도 맞지 않는다. 내 피부에는 새하얀, 흰색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내 왼손. 오른손의 흰 부분은 왼손과 거의 대칭이다.


피부가 하얗게 되는 현상을 백반증이라고 부른다. 백납이라고 하기도 하고 영어로는 Vitiligo라고 한다. 

인간의 모든 부분을 속속들이 꽤차고 있는 듯한 현대의학에도 미지의 세계가 많다. 백반증도 그 중의 하나. 백반증은 피부의 멜라토닌 색소가 이상을 일으킨 것으로 면역체계, 가족력, 스트레스 등등 원인이 추정될 뿐 아직 정확한 원인도, 확실한 치료 방법이 있지 않다. 기능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단지 피부색깔이 다르다는 시각적, 미용적 문제만 있는 증상이다.


내게 가장 먼저 백반증이 생겼던 건 20대 초반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였는데 오른손의 손가락 한 부위에 어느날인가 콩알만한 크기의 흰 점이 생겼다. 그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 준비를 하던 몇 달과 분위기 더러웠던 90년대 대한항공 조종실 시절, 이민 후 적응하고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을 할 때 흰 부분이 조금씩 넓어져 갔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지나고 보니 그랬었다.


백반증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쫓아다녔다. 90년대의 한국 피부과 병원에선 흰 부분에 약을 바르고 햇볓을 쬐 색을 변하게 하는 방법을 썼었다. 피부가 재생되면 흰 색으로 다시 변하기에 효과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피부 이식수술을 하라는 병원도 있었고. 언젠가는 강원도 산골에 백반 치료에 용한 사람이 있다고 하여 그 분을 만나러 갔던 적도 있다. 시키는대로 해 보았지만 별로 였지.

카바마크라는 화장품을 알게 되었고 흰 피부를 보이기 싫어 바르고 다녔다. 오리리라는 일본 회사에서 만든 백반증용 화장품을 한국의 동성제약(기억이 맞다면)에서 라이센스 생산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제품명을 메디커버로 바꿨더라고.. UAE에서 일할 때 만났던 회사 동료도 백반증이 있어 카바마크를 소개해줬고 그 후 남미의 그 친구 집으로 구매대행을 여러 번 해줬었네.


언젠가 미국 샌프란시스코(SFO)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민국 심사대 앞의 긴 줄에서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순서가 되었고 손을 드는 심사관이 있기에 그 쪽으로 갔다. 심사관은 흑인이었다. 경험상 미국 입국할 때 흑인 심사관은 대부분 까다롭게 구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날도 그러지 않을까 찜찜했었다. 심사관에게 다가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내 손을 보더니 '너 Vitiligo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는다. 으잉?? 이게 뭔 소리? 그 흑인 심사관 친구는 작심한 듯, 심사대 부스를 닫고 나랑 얘기를 시작했다. 대기자 줄이 길건 별 관계가 없나 보다.

자기도 백반증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끔히 다 사라졌다. 흑인들에게 백반증은 아주 치명적인데, 아무래도 자기는 자극적인 음식이 문제였던 듯 하단다. 한국인들은 많이 먹는 김치가 자극적인 음식이니 피해 봐라 등등 한참 동안 자기 경험을 늘어 놓았다. 비타민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며 내가 알지 못했던 내용도 알려줬다. 

백반증이 생기는 흑인에 대해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집에 도착 후 SFO 공항에서 들은 얘기를 구글로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에미상(Emmy Award)을 4번 받은 극작가인 Lee Thomas의 책을 알게 되었다. Turning White, A Momoir of Change.

그의 책을 주문하여 읽어 보았다. 백반증이 생기며 일어난 삶의 변화에 대한 기록이었다. 백반증을 갖고 있는 흑인은 흑백 대조가 가장 심할텐데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되었다. 그것도 얼굴에..

백인들에게 백반증 증세가 가장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정보를 얻었었는지 백반증과 비타민(어떤 비타민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의 상호관계에 대한 내용을 접하게 되었고 그 비타민을 미국의 작은 회사에서 구입하고 복용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내겐 별 효과가 없더라고..


어느 날인가 엑시머(Excimer) 레이저에 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예전에 했었던 햇빛 치료와 비슷하지만 효과가 훨씬 좋다고 했다. 캐나다 집 주위에 그 장비가 있나 알아보니 없더라고. 그러다 대한백반증협회를 통해 엑시머 레이저 장비를 보유한 한국 병원들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 들릴 때마다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엑시머 레이저 장비


청주의 피부과 병원에서 처음 엑시머 레이저 효과를 본 후, 중국과 일본에서 일할 때 그 곳 병원들을 이용했다. 중국은 쿤밍의 제1인민병원. 일본은 토쿄 카마타의 개인병원. 

엑시머 레이저 치료를 한, 중, 일 3군데 나라에서 받아 보았는데 나라별 국민성과 치료 방법이 신기하게도 똑같았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하는 건 일본, 대충대충은 중국. 한국은 그 중간. 

한국과 중국에서는 의사가 치료를 직접해야 했지만 일본은 전담사가 따로 있기도 했다. 의사가 진찰 후 오늘은 얼마의 강도로 하자고 결정하면 전담사가 레이저 치료를 하는 방식. 내 의견도 냈더니 의사는 항상 그랬다. '킴상은 닥타입니다~!' 

중국 쿤밍의 병원에선 의사가 왕이었다. 외국인을 좋아하는 여의사는 진선생(金先生)이 오면 항상 긴 줄을 바이패스하고 곧바로 치료를 해주었다. 중국 병원에선 치료비가 엑시머 레이저 버튼을 누르는 횟수에 따라 달라졌다. 10번 눌렀으면 10번 값을 내는. 물론 이것도 의사 맘이었지. 한국 화장품을 갖다 주니 공짜로 해주기도 했다.

김해에 정착한 후 김해의 피부과병원에서 엑시머 레이저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백반증이 있다보니, 한국에서 살았던 젊었을 때는 만나는 사람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였었다. 그 후 여러 나라에 살았지만 백반증이 있는 내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단 한 나라를 빼 놓고. 바로 한국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타인의 이상한 부분을 빤히 쳐다보는 희한한 습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습성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당사자는 기분이 매우 나빠지게 된다. 캐나다에서 가게를 할 때 꼬마 손님이 이게 뭐냐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 있던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고, 아이에게도 주의를 주더라고. 호기심 많아 보이던 그 꼬마에게는 내가 답을 해 주었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많은 한국인들은 타인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자신은 얼마나 완벽한 신체상태인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모습과 다르면 그런 행동을 한다. 물론 이는 신체 뿐만이 아니라 패션 등에도 적용될 때가 많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는건 아니지만, 한국 이외의 나라에 비하면 너무나도 뚜렸하게 차이가 난다. 왜 그럴까?


마이클잭슨 때문에 유명해졌던 백반증. 내 몸의 일부에 이 증상이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고치려 노력하지 않는다. 내 신체 특징 중 하나라고 여기고 같이 살아간다고나 할까? 백반증 덕택에 내 몸이 스트레스에 약한지 알게 되었다. 피부의 흰 부분은 내 몸의 스트레스 정도를 보여주는 인디케이터(Indicator)이다.

발전소에서 일하던 촌놈 공돌이가 항공이란 새로운 분야에 발을 담그며 지구촌으로 시야가 넓어졌다. 그리곤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동안 가급적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나라에서 살아보는 꿈을 꾸고 행동에 옮겨왔다. 평범하지 않은 그 삶 동안 몇 배로 힘들었고 신경을 곤두세운 날들이 많았으리라. 열심히 살았건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 듯 하다. 미안하다 몸아..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딸내미 똥깡님에게 같은 증상이 생기지 않도록 스트레스 관리를 하라고 꾸준히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인생을 즐기라고.. 

하얀 피부 백반증, 나의 트레이드마크이다.


https://www.youtube.com/@allonboard7654/vid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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